중국 성 나자로 수도원에서 익산 나바위성당, 진안 어은공소, 장수 수분공소의 ‘십자가의 길' 만들어 보내줘

박아림의 '한국의 교회미술’에 전동성당의 역사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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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출신 보두네 신부가 외국의 도움 없이 자신이 저축한 돈과 신자들의 헌금만으로 전주 전동성당(사적)을 완공한 지 1년 후 미사 중에 선종한 사연이 소개된다.

그동안 각 성당별로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십자가의 길(14처)’을 체계적으로 연구·분석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과정을 14장면으로 구분해 묵상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성당 내외부에 설치한 미술품이다.

1910~40년대 성당의 십자가의 길 성화는 개화기 성당인 나바위성당(사적)과 강화성당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인쇄된 유럽 성화를 방형 액자에 넣은 것이 첫 번째 형식이다. 두 번째 형식으로는 유럽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는 타원형 형태의 액자에 부조로 14처를 조각했다. 전주 전동성당(사적)과 안성 구포동성당에서 볼 수 있다. 익산 나바위성당, 진안 어은공소(국가등록문화재), 장수 수분공소(국가등록문화재), 서산 상홍리공소, 대구 신광공소에 걸려 있는 ‘십자가의 길’은 모두 같은 곳에서 제작됐다고 한다. 중국 성 나자로 수도원에서 만들어 보내주었다.

독일에서 수출용 다국어로 인쇄한 성화를 중국에서 만든 액자에 넣은 것이 1910년대 전국의 성당을 휩쓸었다는 것을 답사를 통해 확인한 것.

'한국의 교회미술’(지은이는 박아림 숙명여대 교수, 펴낸 곳 학연문화사)은 1890년대 이후 1960년대까지 한국 가톨릭 미술의 변천사를 두루 살피고 있다.

천주교가 박해를 벗어나 공식적으로 전교되기 시작한 19세기 말 전국 각지에는 한옥 양식 교회가 지어진다. 천주교 완주 되재성당(전북기념물), 익산 나바위성당*, 진안 어은공소, 장수 수분공소, 안성 구포동성당, 서산 동문동성당 상흥리공소 등과 개신교 김제 금산교회 등이다.

서양식 교회 건축은 서울 주교좌 명동성당, 약현성당, 전주 주교좌 전동성당 등이 있다. 이 책의 표지엔 전주 전동성당이 실렸다.

프랑스 출신 보두네 신부가 외국의 도움 없이 자신이 저축한 돈과 신자들의 헌금만으로 전주 전동성당을 완공한 지 1년 후 미사 중에 선종했다. 보두네 신부가 성물도 갖추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후임 라크루 신부가 증언했다. 라크루 신부는 성물을 갖추기 위해 중국 상하이 토산만 공예관에 주문하기 위해 성물 카탈로그에 몇몇 성상을 잘라낸 부분이 남아있다. 주문한 사진의 '루르드 성모상'과 '성 요셉상', '성 하비에르상'은 실제 전동성당에 모셔진 성물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전동성당 14처의 액자의 전체적인 형식은 기본적으로 꽃잎이나 클로버 모양의 장식적인 윤곽선을 형성하고 있다. 바로크 또는 네오-고딕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종교적인 미술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적인 스타일이다. 상단의 십자가는 '클로버 십자가' 형태이며, 십자가 아래 방패 문양 안에 로마 숫자 순번이 숨어있다.

액자의 하단에 있는 '아르마 크리스티(Arma Chrieti)', 즉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처형과 관련된 도구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요소들이 예수의 희생과 속죄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안성 구포동성당의 십자가의 길 14처는 전동성당의 14처와 같은 부조 형식이며, 한글로 제목을 적었다. 횡성성당은 전주 전동성당과 안성 구포동성당과 유사한 타원형 액자의 십자가의 길 14처 부조가 설치되어 있다. 호남교회사연구소 소장의 토산만 공예원 카탈로그는 전동성당에서 성물을 주문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제대, 촛대, 성상, 십자가의 길 성화 액자 등 다양한 교회 미술을 싣고 있다. 1910년대 이후 상해 서가회 토산만에서 제작된 성물들이 한국의 교회들에 위해 유입되어 보급됐다. '십자가의 길(14처)’은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과정을 14장면으로 구분해 묵상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성당 내외부에 설치한 미술품이다.

익산 나바위성당, 진안 어은공소, 장수 수분공소, 서산 상홍리공소, 대구 신광공소에 걸려 있는 ‘십자가의 길’은 모두 같은 곳에서 제작됐다고 한다.

중국 성 나자로 수도원에서 만들어 보내주었다. 나바위 14처 그림 액자는 서산 상홍리공소와 진안 어은공소, 장수 수분공소의 14처와 화면의 구성이나 인물 구성이 거의 같다. 성화는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온화한 색감이 사용됐다. 황갈색과 파스텔톤이 강조됐다. 극적인 명암 대비보단 부드러운 채색과 자연스러운 그라테이션이 사용됐다. 서산 상홍리공소와 진안 어은공소, 장수 수분공소의 14처와 화면의 구성이나 인물 구성이 거의 같다. 성화는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온화한 색감이 사용됐다. 황갈색과 파스텔톤이 강조됐다. 성화 형식의 14처로서 나바위성당의 14처와 같은 인쇄 성화가 발견된 곳은 진안 어은공소, 장수 수분공소, 서산 상홍리공소, 김제 수류성당, 진안 한들공소, 대구 금호성당, 예산 양촌공소, 청도 구룡공소 등이다.

안동 주교좌성당 14처와 유사한 석고 부조이면서 크기가 작은 장방형 형태의 십자가의 길 14처는 삼척 성내동성당, 임실성당, 나주 노안성당, 강경성당, 의성성당이 있다. 모두 하단에 한글로 제목을 적었다. 골짜기가 넓어 빛이 많다. 마을은 작지만 산뜻하다. 그래서 아주 깊고 외진 골짜기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러나 더 이상 나아갈 곳 없는 깊고 깊은 골, 길의 끝이다. 진안의 동쪽, 장수와 경계를 이루는 성수산의 북쪽 골짜기에 길이 끝나는 마을 어은동이 있다. 부칠 땅이 적고 물산이 부족해 옛날 임금님들도 진안의 공물은 그다지 챙기지 않았다던가. 난리가 나면 오히려 인구가 늘었다는 오지, 숨어 살기 좋은 땅. 어은동도 그런 땅이었다. 그래서 마을의 이름도 물고기가 숨은 형상이라는 어은(魚隱)이다.

어은동 골짜기에 천이 흐른다. 물은 적지만 제법 너르다. 노인 회관 앞에서 다리를 건넌다. 너른 마당이 펼쳐져 있고, 살짝 높인 단 위에 담백하고 단정한 한옥 한 채가 서 있다. 건물 앞 바위 위에는 성모상이, 옆에는 종탑이 서 있다. 두 그루 벚나무가 무성한 잎을 흔들며 청량한 바람을 일으킨다. 진안성당 어은공소다.

지금은 진안 성당에 속해 있는 공소지만 1909년 건물이 세워졌을 당시에는 진안에서 처음 설립된 본당이었다.

진안 어은공소 성화의 하단에는 '(독일)림부르크(Limburg) 주교 훈장을 인쇄하는 것이 허가(Imprimatur)됐다'라고 적었다. 제2처와 제10처는 판화 번호가 다르다. 제2처는 독일어 제목이, 제10처는 푸랑스 제목이 가장 앞에 사용됐다. 수분공소 14처 성화는 프린트 번호가 공통적으로 102로 시작된다. 십자가의 길 제목을 독일어로 가장 먼저 적고, 독일에서 인쇄됐다는 정보가 보인다.

서산 상홍리공소의 14처 성화는 나바위성당과 똑같다.

이 책은 한옥에서 시작해 ‘한옥+서양식 건물’ 시대를 거쳐 서양식 건물로 정착하는 성당 건축의 변천사, 스테인드글라스의 역사, 성당 곳곳에 놓인 성모상과 제대(祭臺)의 역사와 미학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6·25 때 인민군의 총탄을 맞은 자국이 남아 있는 음성 감곡성당 성모상은 ‘강력한 위로’를 주었다. 책 집필을 마친 주에도 강의를 마치고 저녁 무렵 감곡성당을 찾아 성모에게 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음성 감곡성당의 성모상. 자세히 살피면 6.25전쟁 당시의 총알 자국이 여러 개 있다. 박아림 교수는 '강렬한 위로를 주는 성모상'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출신 보두네 신부가 외국의 도움 없이 자신이 저축한 돈과 신자들의 헌금만으로 전주 전동성당을 완공한 지 1년 후 미사 중에 선종한 사연, 원주 용소막성당은 중국인 인부들이 기둥 높이를 2자[尺]씩 빼먹는 바람에 지붕 경사가 가팔라졌다는 등 성당별 스토리도 소개한다. 칠곡 가실성당은 프랑스(파리외방전교회)와 독일(성 베네딕도회)의 전통이 함께 남아 있어 성미술의 보고(寶庫)라고 평가했다. 거의 매쪽 박 교수와 교회 미술 전문가 정웅모 신부가 촬영한 사진과 도판이 실려 있어 이해를 돕는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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