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 행복 넘치는 김장 풍경

이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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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날짜를 지난달 6‧7(토ㆍ일)일로 잡았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11월 말경인데, 우리 집은 왜 12월 초로 잡았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배추가 폭이 차지 않아 흉년이어서, 찬이슬과 서리를 조금 더 맞으면 배추 속이 꽉 찬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김장하려고 오는 아들딸들이 토ㆍ일요일이 아니면 시간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아들딸들과 날짜를 조율한 결과이기도 하다. 금요일 밤에 온다던 큰아들내외가 목요일에 왔다. 고등학교 동창 어머니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란다.

아들 친구는 나도 아는 사람이기에 봉투를 별도로 챙겨 주었다. 꽤 친한 사이고, 손주가 생산한 농작물을 팔아준다고 약속해서인지 손주까지 대리고 다녀왔다. 집사람과 며느리는 김장 전 양념 만드는 일을 하느라 몹시 분주했다. 아들은 여러 양념 통을 방앗간에서 섞어 찧어 2층까지 그의 아들과 같이 나르는 일을 했다.

둘째 딸과 셋째 딸은 각각 혼자만 금요일에 왔고 막내딸은 아들을 데리고 김장양념버무리는 날, 일요일 아침 일찍 왔다. 주문한 간 배추는 토요일 오후에 왔다. 집사람이 60대까지 만해도 집에서 배추 간을 했는데, 지금은 힘이 부치는지 7-8년 전부터 간한 배추를 주문하여 김장을 해왔다. 간 배추를 배달 온 두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2층까지 옮기지 못한다하여 그걸 옮기는 일은 아들과 손주 몫이었다.

김장을 시작했다. 큰아들과 딸 셋, 며느리, 외손자 하나 왔는데 손주들은 어릴 때 같지 않고 집안이 조용하다. 친손자 외손자 합쳐 9명인데, 가장 어린 손주가 중학교 1학년이고, 그나마 그 손주는 오지 않았으니, 막내딸이 데리고 온 고2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짓는다고 나한테 온 손주가 떠들 일이 없다. 커버린 손주들이 나에겐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옛날에는 김장하는 거실에서 장난치는 손주들을 안방으로 불러 조용히 하라고 타일렀었다. 그러나 지금은 훌쩍 커버려 혼자 조용히 핸드폰만 들어다보고 있다.

커버린 손주들은 용돈을 주어도 덥석 받지 않고 부끄러운척 한다. 김장 전야제랄까? 살짝 내린 눈이 꽃처럼 피었다가 녹아버린 눈꽃송이, 오늘부터 날이 풀린다고 한다.

아내는 날씨가 풀리든 말든 김장 끝나버리면 아무 상관없다고 키 큰 소리다. 어제는 양념을 준비하였고, 오늘은 배추에 양념을 발라 김치를 담그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당연히 삶의 줄거리에 끼여 있는 짤막한 이야기들이다. 그 이야기 속에 삶의 애환이 묻어 있고, 밀려난 지난날의 추억과 다가올 앞날의 희망이 섞여 있었다.

추억과 희망은 웃음 속에 섞이고, 양념과 버물려 포기마다 곱게 발라 화장을 한다. 김장이 끝나고 아들딸들은 먹을 만치 챙기느라 부산을 떨었다. 아내는 그것도 부족하여 찧은 마늘, 깨소금, 참기름, 고구마, 남은 양념 등 있는 것은 다 골고루 챙겨주며 빠진 것 없나 확인한다. 옛날에는 딸들만 기둥뿌리 빼간다 했는데 지금은 딸뿐만 아니라 아들도 더하는 것 같다. 하지만 주고 싶은 도둑들인데 어쩌랴.

김장 끝나고 쉬면서 다시 웃음꽃을 피운다. 그래, 김장이 바로 우리 가족의 1년 농사며 삶이고 추억이겠지. 참, 애들이 김장 봉투를 주는 순간이 집사람에게는 가장 기쁜 시간이다. 아들딸들이 주는 봉투를 받아놓고도 나한테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다. 우리 가족의 작은 이야기들을 간직하며, 낮에 꽃피운 가족의 역사와 밤에 꽃피운 야사를 엮어가는 행복 넘치는 김장 풍경이 김칫독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이명철 수필가는



한국문협 회원,

전북문협 회원

고창문협회원

(현)모양수필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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