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장 원(사상계 편집인)  ‘철저한 자기 헌신’과 ‘타협 없는 진실’이 장준하정신

-장준하와 55년 만의 사상계 복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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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시국에 대한 고뇌가 활자가 되어 시대를 흔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53년 4월, 전쟁의 포화가 채 가시지 않은 삭막한 이 땅에 씨앗 한 알을 심었던 잡지 '사상계'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1970년 5월 김지하의 '오적'으로 강제 폐간된 잡지가 2025년 4월, 55년 만에 복간되었습니다.  

장준하의 '사상계'는 가히 ‘전설적’인 잡지였습니다.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교류하는 거대한 담론의 장이었습니다.

함석헌, 김준엽, 강원용, 안병욱, 황산덕, 황순원, 김수영, 노천명 등 기라성 같은 지식인들이 이곳에 글을 실어, 일제청산, 민족통일, 독재철폐, 자주경제, 문화창달을 외쳤습니다.

또한 '사상계'는 무엇보다 4·19 혁명의 사상적 토양이 되었으며, 수많은 청년들에게 ‘행동하는 양심’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장준하가 지향했던 '사상계'의 지성은 골방 속에 갇힌 관념의 유희가 아니라, 역사의 현장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불의에 항거하는 실천적인 것이었습니다.

장준하 정신의 핵심은 ‘철저한 자기 헌신’과 ‘타협 없는 진실’입니다.

일제강점기 학도병으로 중국에 끌려갔으나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광복군에 합류했던 그의 삶은 그 자체로 ‘민족’이고 ‘독립’이고 ‘민주’이고 ‘진리’이고 ‘고난’이었습니다.  

이런 장준하가 55년 만에 '사상계'를 불러냈습니다.

광기와 공포가 횡행하는 정치판, 돈놓고 돈먹는 도박같은 경제판, 곡학아세(曲學阿世)를 좌우명으로 삼는 쓸개 빠진 지식인판,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위장 문화판, 청소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초경쟁 교육판, 써놓고 보니 '오적'이 아닌 '오판'이네요.

이런 '오판'의 어거지가 통하고 마피아가 판치는 작금의 대한민국이 '사상계'를 호출한 것입니다.  

 '사상계' 복간은 곧 ‘장준하 정신’의 회복입니다.

복간 '사상계'는 이 오염된 판을 갈아엎기 위해 떨치고 나섰습니다.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자본에 굴복하지 않고, 헛된 명예의 포로가 되지 않고, 삿된 온갖 기만의 소리들을 물리치고, 쇠북소리 둥둥 울리며 정의와 평화와 평등을 위해 진군하고자 합니다.

오직 장준하의 기백과 장준하의 지혜를 나침반 삼아 나아가는 잡지, 그리하여 동지들로 하여금 가슴 뜨거운 전율과 함께 깃발을 들게 하고 북을 치게 하는 그런 잡지이고자 합니다.  

정치적으로는 기존 정치에 대한 준엄한 비판과 혁명적 대안 제시, 경제적으로는 성장중심 경제에서 탈피할 대안적 경제체제 구축, 사회적으로는 ‘계몽의 계몽’에 바탕한 공정하고 안전한 사회 건설, 문화적으로 문학과 예술의 르네상스를 통한 시민 삶의 질 구현, 교육적으로는 문명전환을 위한 생태전환 교육과 대안교육 활성화, 생태적으로는 기후재난 극복을 위한 인간과 비인간의 협업체계 구축 등이 그것입니다.

그리하여 복간 '사상계'는 미학적 흑백예술지, 생태적 교양종합지, 아날로그 종이잡지, 계몽의 계몽지식지, 미래세대 청년잡지, 인류세 문명전환지로 태어났습니다.  

복간 '사상계'는 또한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물질과 비물질로 표현되는 이 세상 모든 존재들과의 평등을 지향합니다.

물성과 영성의 시대를 활짝 열어 천박한 현대문명을 생명과 평화의 문명으로 바꾸어 나가겠습니다.

'사상계'가 세상을 죄다 바꿀 큰 연장은 아니지만 큰 연장을 만드는 작은 연장이 되겠습니다.

그것으로 텃밭도 가꾸고 좋은 세상에로의 물꼬도 트겠습니다.

복간 '사상계' 는 장준하를 믿고 독자 동지들을 믿고 시작했습니다.

함께 해주셔야 '사상계' 입니다. 동지들이 곧 '사상계' 입니다.

장준하의 정신이 다시금 활자로 부활할 때, 우리 시대의 어둠도 물러나게 될 것입니다.

'사상계' 는 심지 하나로 창을 밝히는 일주명창(一炷明窓)이 되겠습니다.

 

편집자주-필자 장 원은 환경학과 경영학을 공부했다. 대학선생, 환경운동, 기업경영, 농촌운동 등의 경험을 총화하면, 뭔가 한 번 이 세상에 작게라도 이바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농촌유토피아>도 만들고 <사상계>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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