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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익산과 전주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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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은 마한과 백제의 고도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한전(韓傳)에는 기원전 194년에 고조선의 준왕이 “연에서 도망온 위만의 공격을 받고 좌우 궁인들을 거느리고 바닷길로 한지에 들어와 거주하였으며 스스로 한왕이라고 일컬었다(爲燕亡人衛滿所攻奪將其左右宮人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는 내용이 등장한다. 조선시대 실학자 성호 이익과 안정복은 준왕이 내려온 한지(韓地)를 익산 금마로 비정하였다. 이를 입증하듯이 용화산에는 기준산성(箕準山城)이 축조되어 있다. 한지 금마는 준왕이 한의 왕위에 오르고, 금마는 마한의 고도가 되었다. 2004년 국가유산청은 ‘고도보존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익산,부여,공주,경주를 고도보존 지원대상으로 선정하였고, 정부지원사업으로 농촌마을이었던 금마는 금마 고도로 탈바꿈하고 있다.

또한 1960년대부터 진행해온 금마 미륵사지 발굴 성과에 힘입어 2015년 7월 4일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주역은 원광대학교 최완규 명예교수였다. 그는 익산 금마에 왕도의 기본 요건인 왕릉, 왕궁, 성곽, 사찰 등이 갖추어져 있고 왕궁평유적 발굴과 고도(古都) 지명을 토대로 천도가 분명하다는 판단하에 익산 시민들과 함께 세계유산 등재를 강력 추진하였다. 익산 백제유적군 세계유산 등재가 가시화되자, 공주, 부여, 한성이 막바지에 숟가락을 밥상에 얹었다. 최완규 교수의 집념으로 수십년 간의 금마 별도설은 사라지고 백제의 고도로 간판을 달았다. 호남고속도로 익산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 ‘백제의 고도 익산’이라는 큼직한 홍보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역사속에서 전주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시대 완산주 설치부터다. 완산주의 역사 중심은 견훤이 후백제를 전주에 정도(定都)하면서 시작되었다. 견훤은 892년(진성여왕6) 극심한 사회혼란기에 순천만에서 거병하여 광주를 습격하고, 스스로 왕이라 칭하였으나 건국에 실패하고 900년 광주에서 완산주로 올라와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의 왕위에 올랐다. 후백제 견훤은 철원에 태봉의 도읍을 둔 궁예와 맞서 싸웠고, 918년에 통일왕조를 세운 고려 태조 왕건과 싸움에서 항상 이길 정도로 후백제의 국력은 고려를 압도하였다.

아직 후백제 왕도유적 발굴 성과가 미미한 상태에서 왕도의 위용은 알 수 없지만, 1119년(예종14)에 이규보(1169~1241)가 지방관리로 전주에 내려와 목격한 전주 모습을 『동국이상국집』남행월일기에 실었다. 당시 전주는 인물이 번창하고 큰 기왓집들이 서로 이어져 즐비하여 고국풍이 있었다. 향리들은 모두 의관을 갖춘 선비같았다(人物繁浩屋相櫛比 有故國之風 吏皆若衣冠士人)고 밝혔다. 고국의풍이란 전주가 후백제 왕도의 면모를 고려중기까지 유지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후백제 왕도의 기반이 조선왕조의 본향을 만들었고 발산 아래 자만동에 조선 건국의 대서사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가 깃들어 있다. 전국에서 한 도시가 왕도였고 왕조의 본향이었던 도시는 전주가 유일하다. 후백제가 조선왕조를 낳고 견훤이 이성계를 낳고 완산주가 전주를 낳았다. 그래서 조선왕조 500년동안 전주에는 전라감영이 있었고, 후백제 900년에서 1910년까지 1,000년동안 전주는 한국의 중심이었다. 이러한 후백제 역사는 전주에 빼곡하다.

그런데 전주에서 후백제가 보이지 않는다. 기찻길옆이건 고속도로 전주 톨게이트에도 후백제 왕도 전주를 알리는 안내판도 없고, 전주시내 한옥마을에도 후백제 홍보판과 역사관 조차 없다. 전주시는 후백제 왕도의 실체인 왕궁, 왕릉, 성곽, 사찰을 찾는 고고유적 발굴에 관심이 없고 고도 보존에 관한 특별법 신청 소식도 없다. 2022년 후백제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였고, 2024년 후백제역사문화센터를 전주에 유치하였음에도 전주시 추진 상황은 감감무소식이다. 전주시는 후백제학회, 후백제시민연대, 후백제선양회 활동을 홀대하고 있다.

전주와 익산은 똑같은 고도(古都)다. 익산시는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고도보존도시 지정과 정헌율 익산시장은 ‘韓문화의 발상지 익산’선양사업으로 2024년 10월에 마한 소도제(蘇塗祭)를 지냈고, 2025년 6월 11일에 호남고속도로 여산 휴게소를 ‘익산 미륵사지 휴게소’로 간판을 바꾸는 행정력을 발휘하였다. 우범기 전주시장의 시정 구호‘강한경제 전주를 다시 전라도의 수도로’가 쓰인 고속도로변 홍보간판을 바라보면 막연하고 공허할 뿐 공익적인 정신과 자세는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바라지 않고 기대도 하지 않는다. 전주 톨게이트 명칭을 ‘전주 후백제 왕도’라고 바꾸기를 기대해 본다. 익산과 전주는 똑같은 고도로서 역사도시인데, 소프트웨어 콘텐츠에서 차이가 크다. 역사도시의 브랜드 홍보는 행정력의 차이다. 행정력의 차이는 행정가의 철학 차이다. 행정가의 철학 차이가 지역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 송화섭(전 중앙대 교수,(사)호남문화콘텐츠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