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기는 듯, 내놓는 듯
동백잎 옆구리에 호롱불 켜지면
천년 고찰 선운사에 봄날이 열린다.
풋나락이 영글어서
베롱의 튀밥 꽃으로 터지는 날에도
푸릇한 대롱 끝에 햇살 맺히는
노을빛 꽃무릇이 물들이는 즈음에도
도솔천 낯뜨겁게
반영(反影)의 단풍으로 물들이는 때에도
태양을 사랑했던
빈센트 반 고흐의 열정만큼이나
선운사는 붉게 붉게 사계절을 태운다.
천마봉을 훑어 온 눈싸래기로
일주문이 발목쯤 묻혀야만
목탁은 차분하고 문풍지는 울어 댄다.
온통 하얗게 잠들어 허드렛일도 없는데
저런! 저런!
철 잃은 동백꽃 한 송이가
지독하게 빨간 속살을 들키고 말더라.
이행용 시인은
전남대 영문과 전공
전 고창문인협회 회장
시와 산문집 '남자의 눈물', '갈바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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