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2월 베트남으로 4박 6일 환갑기념 여행을 떠난 중학교 친구 일행 10명이 호치민 중앙우체국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앞줄 맨 왼쪽이 필자,
정년 은퇴한 지 9개월이 지났다. 은퇴 전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집에서 놀면 서너 달은 좋지만 곧 지루해진다는 것이다. 내 경우는 귀촌준비라는 할 일이 있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니 금세 지나간 것 같다. 어린 시절 함께 공부하고 놀았던 경험은 깊은 유대감을 갖게 하고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든다. 나이들수록, 특히 은퇴한 후에는 친구가 좋고 소중한 이유이다. 주변에서 하나 둘씩 은퇴자가 늘어나면서 같은 취미를 즐기고, 여행을 다니면서 옛일을 떠올리다보면 그 시간 자체가 행복해진다. ‘추억은 좋은 기억이고, 행복은 추억의 집합체’라고 하지 않던가?
내가 요즘 어울리는 그룹은 대략 대여섯 개가 있다. 중·고교 시절 친구들과 신문학과 선후배, 한국일보 입사 동기와 선후배들이다. 대개 최소 20년 이상, 길게는 50년 가까이 만나는 사람들이다. 사춘기 학창시절부터 직장생활에 이르기까지 나와 부대끼며 지켜봤으니 내 인생의 증인들인 셈이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그룹은 중학교 3학년때 같은 반 친구들이다. 유신독재가 막을 내리던 1979년, 지금으로부터 무려 46년 전이다. 한 친구 생일에 대여섯 명이 초대를 받은 걸 계기로 차례로 돌아가며 생일파티를 열면서 가까워졌다. 여기에 당시 담임으로서 유난히 정의와 윤리를 강조했던 최병무(2023년 작고) 선생님의 영향도 있었던 같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은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계속되고 사회에 나와서도 정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학교 다닐 땐 친하지 않았어도 나중에 연락이 돼서 하나 둘 늘어나다 보니 13명이 되었다. 공무원, 대기업과 공기업 직원, 교수와 연구원, 사업체 운영 등 다양한 직종에서 일해 온 친구들로 현재 완전히 은퇴했거나 조만간 은퇴를 앞두고 있다.
우리는 약 2년 전인 2024년 2월말 4박 6일간 베트남 호치민으로 ‘회갑기념 여행’을 다녀왔다. 13명 가운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가지 못한 3명을 제외하고 10명이 참석했다. 대부분 골프를 좋아했지만 이때만큼은 모두가 참여하는 일대 관광을 위주로 했다. 호치민 일대를 돌면서 맛집을 찾아다니고 깔깔거리기만 해도 좋았다. 크고 작은 고민과 걱정꺼리가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모두 학창시절로 돌아가 즐겁게 보냈다.
만날 때마다 등장하는 얘기의 레퍼토리는 비슷하다. 교실에서 떠들었던 친구가 담임 선생님께 물볼기를 맞았던 일이나 하교하는 길에 여학생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쳤던 일 등이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할 장면들이다.
이 친구들이 만날 때마다 나에 대해 하는 얘기도 있다. 1980년 고등학교 1학년때의 일이다. 우리는 고등학교가 달랐음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났다. 어느 날 나는 앞으로 모임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모임이 무의미하다고 본다. 앞으로 안 나올게.” 어이없어 하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나는 자리를 떴다.
당시 나는 공부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조금만 노력하면 톱도 가능할 거라는 욕심이 커지다보니 친구들과 함께 흘려보내는 1분 1초가 아까웠다. 마침 그때는 전주에서 열리는 제 61회 전국체전 개막식을 앞두고 전주시내 모든 고교 1학년생들이 동원돼 운동장에 모여 매스게임 연습을 했다. 당시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대통령이 된 전두환이 개막식에 참석한다고 하니 모든 학교가 온통 공부는 뒷전인 채 그 준비에만 매달렸다.
나는 이때가 나의 의지와 잠재력을 실험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앞으로 모임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모임이 무의미하다고 본다. 앞으로 안 나올게.” 어이없어 하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나는 자리를 떴다. 그 해 나는 학년말 시험에서 문과 1등을 차지했다. 입시준비에 찌들려있던 때에 이와 같은 특별한 경험은 평생 뿌듯하면서도 비밀스러운 자부심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친구들은 몇 십 년이 지난 후에도 잊지 않았고 나는 그게 농담 삼아 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부끄럽고 미안했다. “내가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니 당분간 모임에 못나올 것 같다”라고 말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무의미하다고 했던 게 친구들은 섭섭했을 게다. 2년 여 전에도 어김없이 이 얘기가 나왔다. 친구들은 나는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당시의 상황과 심정을 처음으로 털어놓으며 사과(?)했다. 40년도 넘은 오래 전 일을 거론한다는 게 한편으론 우습기도 했으나 어쨌든 한번쯤은 해야할 것 같았다.
중학교 친구들처럼 정기적으로 만나진 않지만 고교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만나서 주로 당구를 치거나 등산, 여행을 즐긴다. 귀촌을 준비한 이후에는 전주에 거주하는 친구들과 만날 기회가 많다. 최근에는 이들과 강원지역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다니는 한 친구가 회사 속초연수원에 방을 잡아놓고 고성과 양양 일대의 명소를 돌았다. 대형 고깃집을 하는 친구는 소고기를 가져왔고, 다른 친구는 인근 맛집과 명소들을 꼼꼼히 검색해서 짧은 일정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대부분 학교 다닐 때 같은 반도 아니어서 얼굴도 모르고 졸업후 처음 만난 친구도 있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한국일보를 퇴직한 선후배들의 오비(old boy) 모임에도 가끔 나간다. 신문사 선후배와 동료들은 보통 회사와 달리 끈끈한 면이 있다. 호칭도 입사가 빠르면 모두 형으로 부를 정도로 스스럼이 없다. 지난 6월에는 7명이 진안 삼락원을 찾아왔다. 내가 아직 거처를 마련하지 못해 펜션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자두나무를 심어놓은 밭과 설탕단풍나무 숲을 조성중인 산을 둘러보았다.
노후엔 취미를 갖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걸 실감한다. 내가 최근 빠져있는 건 당구다. 당구는 대학시절부터 쳤으나 그간 특별히 좋아하진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관심 갖고 치다보니 아주 재미있는 놀이이다. 특히 공의 입사각과 반사각을 계산하고 쿠션을 맞고 돌아서 공을 맞추는 원리는 매우 흥미롭고 신기하다. 그렇게 계산해서 정확히 들어갈 때 느끼는 성취감과 희열은 아주 크다. 게다가 어디에서나 가까이 있고, 비용 또한 저렴하게 몇 시간씩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놀이는 없는 것 같다.
친구와 우정에 대한 격언이나 명언은 많다. 이 중 미국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랠프 월도 에머슨(1803~1882)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다. ‘오랜 친구들이 주는 축복중 하나는 그들과 함께일 때 바보짓을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깨복쟁이’ 친구들끼리는 웬만한 바보짓을 해도 모두 웃어넘길 수 있다는 얘기다. 얼마나 마음 편하고 유쾌한 관계인가? 또 하나는 프랑스 철학자 장 드 라브뤼예르(1645~ 1696년)가 했던 명언이다. ‘세월은 우정을 깊게 하고 사랑을 엷게 한다.’ 이 또한 우리의 인생에서 모두 절감할 수 있는 말이다. 남녀간의 어떤 사랑도 시간이 가면 식기 마련이지만 우정은 오히려 깊은 맛이 우러나온다. 담근 술이 오래될수록 좋은 것처럼 말이다.
가장 좋은 친구는 공유한 경험이 많으면서 가까이 있는 친구이다. 멀리 있는 친구가 찾아오면 기쁜 일이지만 근처에 살면서 언제든 불러낼 수 있는 오랜 친구가 최고이다.
광화문 교보문고 외벽엔 사계절마다 바꿔 붙이는 글귀 중에는 이런 게 있었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파블로 네루다 시집 ‘질문의 책’에 수록된 44번째 시)
40여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다. 지금은 사라졌거나 잊혀졌을지도 모르는 ‘옛날의 나’를 되살려주고 그때의 감성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가 바로 친구다. ‘나였던 그 아이’의 친구들은 가물가물한 옛 추억을 소환해서 삶의 행복 모자이크를 완성하고 ‘지금의 나’를 확인해주는 동반자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나태주의 ‘풀꽃’)
풀꽃 같은 나의 친구들, 오래 오래 자주 보자!
/최진환(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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