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위주로 혼성돼 왔던 농악단에 여성들로만 이뤄진 농악단이 전북 남원에서 최초로 구성돼 활동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흔치 않다.
그러나 요 몇 년 새 원로 여성농악인들이 60여년 만에 다시 뭉쳐 공연무대를 선보이면서 ‘그런 역사가 있었구나’ 하는 사실이 새롭게 조명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역사가 다시 세상 속으로 튀어나왔을까.
우리나라 최초로 불리는 여성농악단 ‘남원여성농악단’이 태동하고 활동했던 시기와 당시의 인기, 그리고 그 구성원이었던 원로 농악인들이 다시 만나 공연무대까지 마련하게 된 과정을 담은 책이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말허자면 우리가 걸그룹 시초여’
‘도자기에 핀 눈물꽃’, ‘청수 할머니의 기도’ 등을 펴낸 역사동화작가 김양오씨와 1960년대 후반 춘향여성농악단 채상소고 단원으로 활동하고 한국민속가무예술단 단원으로 재일교포 위문 순회공연 등 다수의 공연과 여성농악예인구술집 ‘향기조차 짙었어라’를 집필한 국악인 노영숙씨가 함께 만들어 출간한 책이다.
이 책은 김양오 작가를 비롯해 남원역사연구회 회원들이 2021년부터 원로 여성농악인들을 발굴해 함께 모시며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한 과정을 ‘글로 보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엮어 놨다.
남원여성농악단은 1959년에 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농악단으로 1960년 제1회 전국 농악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오늘날의 걸그룹처럼 인기를 누렸다.
당시 대회에 출전한 농악단은 모두 남성 농악단이었으나 남원만 여성으로 구성된 농악단이 출전해 서울 장충 운동장을 뜨겁게 달궜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뿐 아니라 이들의 기량은 매우 뛰어나 큰 흥행을 불러일으키며 전국에 공연을 다녔고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서울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이후 여성 농악단의 인기가 높아지자 춘향여성농악단이 추가로 결성됐고 다른 지역에도 여성농악단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당시 이 두 여성농악단에서 활동했던 사람들 중 몇 분이 생존해 있는데, 남원여성농악단 단원으로는 상쇠 장홍도(1931년생. 본명 장봉녀), 장고 배분순(1944년생) 2명이며, 춘향 여성농악단에서 활동했던 소고 박복례(1945년생), 소고 노영숙(1954년생) 2명이 그들이다.
지난 2021년 남원역사연구회 회원들이 춘향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 책의 서두가 시작된다.
원로 여성농악인들이 노구를 일으켜 다시 악기를 치고, 남원에서 문화재 야행 공연, 춘향제 때 광한루 누각 위에서 이야기 마당, 국악방송 라디오 출연, 조갑녀 명무관 공연, 서울 남산 국악당 초청 공연까지, 다시 원조 걸그룹의 위용을 내보이는 과정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양오 작가는 “1931년생이신 장홍도 선생님은 이제 95세이시며 80대이신 배분순, 박복례 선생님도 건강이 좋지 않으신 형편이어서, 이분들의 이야기를 하루 빨리 기록해 놓지 않으면 역사 속으로 연기처럼 사라질 것 같아 시급히 기록집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앞섰다”고 집필 동기를 설명했다.
전북도와 남원시의 지원을 받아 출간된 이 책은 1부 ‘여성 농악 원로들과 시민들의 활동 이야기’(2021-2025년의 기록), 중간화보-남산 국악당 공연, 2부 ‘향기조차 짙어라’(구슬 채록 노영숙)로 구성돼 있다.
지난 26일에는 남원시립국악연수원 가야금 교실에서 사단법인 시민공감 주관으로 책의 주인공인 원로 여성농악인들과 남원역사연구회 회원, 국악인, 임종명 도의원과 남원시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출판기념회도 열렸다.
김양오 작가는 “최근 선종하신 프란치스꼬 교황님이 청년들에게 당부하신 ‘과거와 미래를 기억하라, 여러분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만나라.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미래의 열매를 맺어라’는 말씀은 우리 선대의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한다”며 “책이 젊은 시절의 희생으로 우리 국악을 계승해 주신 원로 분들에 대한 보은의 의미도 크지만, 몇몇의 유명한 명창을 제외하고는 이름조차 기억해 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기생’ 소리 듣기 싫어 국악했다는 것을 자식들에게도 숨기며 가난하게 살아야 했던 그 분들이 늦게나마 국악인으로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인 민족 예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 알 수 있게 하고, 춘향제가 어떤 성격을 갖고 가야 할 것인지, 미래 세대에게 어떤 열매를 맺게 해 줄 것인지 고찰하게 하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원=박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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