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산심의는 단순히 숫자를 따지는 자리가 아니라, 정책의 철학과 방향을 점검하는 자리다. 특히 교육예산은 더욱 그렇다. 아이 한 명, 공간 하나, 체험 한 번이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가는지까지 함께 묻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교육청 예산과 정책을 들여다보며 “교육은 교육청의 일이고, 지역은 지자체의 일”이라는 오래된 인식이 여전히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인식은 행정의 편의에는 맞을지 모르지만, 현실과 헌법, 그리고 미래 교육의 방향과는 정면으로 충돌한다.
학생은 지역에서 태어나고, 학교는 지역 위에 존재한다. 교육의 결과는 다시 지역사회로 환원된다. 지역과 분리된 교육, 학생의 생활과 단절된 교육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다. 그럼에도 교육행정은 여전히 교실 안, 행정조직 안에 머무르려 한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예산 구조다.
청소년수련관, 청소년문화공간, 지역 체육시설의 실제 이용 주체는 대부분 학생이다. 방과 후와 주말, 방학 동안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 역시 지역이다. 그러나 이 공간들을 뒷받침하는 교육청 예산은 사실상 전무하다. 반면 예산의 상당 부분은 시설 유지, 행정 운영, 조직 중심 구조에 집중돼 있다. 이는 ‘학생 중심 예산’이 아니라 ‘행정 중심 예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폐교 문제 역시 단순한 자산 처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학생의 학습권과 마을의 존립을 동시에 다루는 문제다. 농촌유학 역시 단순한 전입 정책이 아니라 주거, 돌봄, 교육환경이 결합된 종합 정책이다. 생존수영과 체육 인프라는 아이들의 안전과 직결되고, 민주시민교육은 교과서가 아니라 지역의 삶 속에서 완성된다. 이 모든 것이 지역 기반 교육의 핵심이다. 그런데도 관련 사안만 나오면 “교육청 소관이 아니다”라는 답변이 반복된다.
지방의회는 헌법과 지방자치법에 따라 교육청 예산을 심의·감사할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받은 기관이다. 도의원이 교육예산에서 지역과 학생의 삶을 묻는 것은 권한 남용이 아니라 가장 본질적인 책무 수행이다. 만약 “교육위원은 민원이나 처리하고 예산과 정책에는 끄덕끄덕하면 된다”는 인식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의회의 견제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며 동시에 교육예산에서 학생과 지역을 지워버리는 행위다.
전북특별자치도의 현실은 이 문제를 더욱 절박하게 만든다. 학령인구 감소는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폐교는 해마다 늘어나며, 농촌 학교는 존폐 기로에 서 있다. 그런데도 교육청 예산은 여전히 도시 중심, 시설 중심, 행정 중심으로 짜여 있다. 농촌 아이들이 수영을 배우려면 30km를 이동해야 하고, 문화체험을 하려면 전주까지 나와야 하는 현실이 예산서 어디에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지역소멸 위기 속에서 교육청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학교를 마을의 중심으로 만들고, 폐교를 교육과 문화의 거점으로 전환하며, 지자체와 협력해 아이들이 지역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육청의 ‘선택’이 아니라 ‘책무’다. 그러나 현재의 예산 구조는 이 책무를 외면하고 있다.
교육은 교실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걷는 골목, 뛰노는 체육관, 머무는 수련관, 체험하는 마을이 모두 교육의 현장이다. 그런데도 지역을 외면한 채 편성된 예산이 과연 아이들의 삶을 바꾸고 있는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역을 떠난 교육이 어디에 존재하며, 학생의 일상을 외면한 교육청이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도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변화는 예산서에서 시작된다. 청소년수련관 운영비에 교육청 예산이 반영되어야 하고, 폐교 활용 계획에는 교육 프로그램이 결합되어야 하며, 농촌유학 정책에는 주거와 돌봄, 교육환경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지자체와 교육청이 협력하는 예산 항목이 신설되어야 하고, 학생의 방과 후 시간이 예산서에 등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학생 중심 예산’의 실체다.
교육은 독립된 섬이 아니라 지역 속에 뿌리내린 공공재다. 이제는 시설과 행정 중심 예산에서 벗어나 학생의 삶과 지역의 현실을 중심에 두는 예산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지역 없는 교육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예산에서부터 증명해야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교육청이 진정한 ‘특별함’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은 바로 여기, 예산서의 철학 속에 있다./임종명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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