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황석영이 5년 만에 선보인 신작 장편소설 ‘할매’(창비)가 출간과 동시에 문단과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철도원 삼대' 이후 5년 만에 황석영이 신작 장편소설 '할매'를 펴냈다.
이번에는 금강 하구에 뿌리내린 600년 된 팽나무를 화자로 내세워 인간의 역사 너머 지구적 생명의 순환과 인연의 흐름을 그렸다.
소설은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개똥지빠귀가 남긴 씨앗에서 할매 나무가 자라나는 순간으로 시작한다. 한동안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독특한 구성은 “사람이 빠진 소설을 처음 쓰느라 힘들었지만 문장 자체가 주는 기쁨을 되찾았다”는 작가의 말처럼 자연을 거대한 주인공으로 끌어올린다. 조선 초기부터 일제강점기, 새만금 간척까지 나무는 한반도를 훑고 지나간 역사의 현장을 묵묵히 기록한다.
더욱 관심을 끄는 점은 작품의 중심 소재가 지난해 11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하제마을 팽나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노거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팽나무는 수령 6백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에 있는‘하제마을 팽나무’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경남 창원의 500년 된 팽나무보다 더 오랜 541년(±50)을 살아왔다. 20m 높이의 웅장한 팽나무는 군산시 보호수이자 전라북도 지정문화유산이다.
하제마을 팽나무의 나이는 537(±50)살로 추정된다. 과학적(생장추 측정)으로 측정한 팽나무 중 가장 오래됐다. 높이는 20m, 가슴높이 둘레도 7.5m로 규모도 크다. 국가유산청이 밝힌 것처럼 바다가 땅으로 변하고, 또 한때 번성했던 마을이 쇠락해가는 모습을 모두 묵묵히 바라보며 자리를 지킨 게 팽나무다.
하제마을은 상실의 역사와도 맞물려있다. 다른 팽나무와 달리 이 나무에는 깊은 주름이 올올이 새겨있는데, 과거 배를 묶어두던 기둥 역할을 하며 새겨진 상처다. 조선 시대에는 섬이었다. 섬 북쪽부터 상제, 중제, 하제가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간척돼 육지와 이어졌고, 일본이 비행장을 만들며 상제가 사라졌다. 해방 이후 미군기지가 들어오면서 중제가 사라지더니 다시 미군기지가 확장되고 새만금 방조제가 막히면서 하제도 사라졌다. 생업을 잃은 주민들은 2009년부터 마을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664가구가 터전을 떠났다. 20세기 초, 간척사업으로 섬에서 뭍으로 변했지만 사람은 살지 않는다.
이 팽나무는 주민들이 쫓겨난 군산 수라갯벌 인근 하제마을을 꿋꿋이 지키고 있다.
하제마을은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협정)에 의해 미군기지 탄약고와 가깝다는 이유로 644가구, 약2, 000 여명의 주민이 강제로 이주당하고, 주민들이 살던 집은 모두 철거되면서 마을은 텅 빈 상태가 됐다. 현재 하제마을에는 2가구가 철거되지 않고 남았지만, 항시 사람이 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곳은 매달 네 번째 토요일만은 평소와 달리 활기찬 분위기가 된다. 수십, 수백명의 지역 주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마을에 남아 있는 ‘팽나무’를 지키기 위해 모여들기 때문이다.
바닷가 작은 어촌에 뿌리를 내린 이 나무는 오랫동안 계선주 역할을 하며 마을 주민들과 삶을 나눠왔다. 그러나 줄을 묶던 몸통은 세월의 상흔으로 온전한 곳이 거의 없다. 미군부대 확장으로 마을 주민들이 떠난 뒤에도, 이 팽나무는 홀로 그 자리를 지키며 시간의 켜를 쌓아왔다.
비록 마을은 사라졌지만, 나무를 잊지 않는 이들이 있다. 지역 시민단체는 매달 한 차례 정기적으로 팽나무를 찾으며 그 생명을 지켜보고, 멀리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은 나무 앞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군산에서 접한 실제 팽나무가 작품의 직접적 모티브였다는 작가는 “홀로 남은 그 나무가 동아시아 최대 습지가 사라진 현실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여든을 넘긴 그는 “일생에서 가장 새로운 작품을 쓰고 싶다”고 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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