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반세기 만에 완성된 보물, 농경문청동기(農耕文靑銅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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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기원전 4세기를 전후하는 시기에 농사 풍경을 그려놓은 보물이 있다. 그것도 돌이나 토기에 그린 것이 아니라 청동기에 표현했다. 농경문청동기(農耕文靑銅器, 보물)가 바로 그것이다.

농경문청동기는 1970년 말에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대전에서 출토되었다는 말 외에 알 수 있는 고고학적 정황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1971년 한병삼(前국립중앙박물관장,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과장)의 「선사시대 농경문청동기에 대하여」 라는 논문이 발표된 이래 단독 논문이 한 편도 나오질 않았다.

그런데 최근 농경문청동기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반세기 만에 완성된 농경문청동기의 실체!. 이는 한국 고고학의 新발견일 뿐만 아니라 선사 의례 연구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새로운 사실과 그에 따른 주요 연구 성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농경문청동기에 표현된 세 사람 가운데 왼쪽 면에 묘사된 인물의 실체가 54년 만에 처음으로 파악되었다. 오른쪽 면에 묘사된 인물은 머리에 2개의 새 깃털을 꽂고 옷을 홀딱 벗은 채 따비질을 하는 인물과 그 옆에서 괭이질을 하는 인물로, 봄에 파종을 하는 농사 풍경에 해당한다. 왼쪽 면에는 항아리 옆에서 무언가를 들고 있는 인물로, 상투를 튼 남성 또는 여성으로 이해되어 왔으며, 가을 풍경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런데 후자의 인물이 상투를 튼 것도, 여성도 아닌 새 깃털을 머리에 꽂은 인물(제사장, 유력자)임이 밝혀진 것이다. 고해상도 사진을 통해 분석한 결과, 새의 긴 깃털 흔적이 고스란히 확인되었다. 밀랍으로 청동기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불량이 발생하여 새 깃털을 표현한 음각 문양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써 봄과 가을에 조장(鳥裝)을 한 인물이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던 모습을 온전히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양쪽 면에 묘사된 동일한 조장인물을 통해 농경문청동기는 단순히 농사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기보다는 주기적·기념적 농경의례를 기록해 놓은 의기(儀器)일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가능해졌다. 청동기에 묘사된 그림들이 봄-파종-조장의식-나경의례 : 가을-추수-조장의식-공헌의례의 구조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봄에는 나경(裸耕)으로 풍요를 기원하고, 가을에는 풍요에 대한 감사로 공헌(貢獻)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뒷면에 표현된 나무와 새 그림은 입대목제의(立大木祭儀)와 새 신앙이 결합된 것으로, 봄과 가을 농한기에 거행되었던 취락의례의 상징물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훗날 마한의 소도에서 거행되었던 5월과 10월의 계절제와 연결되는 대목이다.

셋째, 나무와 새를 표현한 그림에서 새의 정체는 멧비둘기(Streptopelia orientalis, Oriental turtle dove)일 가능성이 높다. 기존까지 독수리나 매로 보는 주장이 대세였다. 북방 지역에서 독수리나 매에 투영되어 있는 신앙 때문이다. 그러나 새의 앉는 자세, 몸의 형태, 무늬 등을 바탕으로 한반도에 분포하는 573종의 조류를 대조한 결과, 가장 근접한 새를 특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농경문청동기가 마한의 성립뿐만 아니라 소도(蘇塗)의 정체성을 연구하는 데 적극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이종철(전북대학교,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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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문청동기(한병삼,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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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밝혀진 새 깃털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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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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