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한 방울 : 곡물로 빚은 발효식초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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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살림집에서는 부뚜막에 초병을 걸어두고, 집에서 빚은 술을 부어 식초를 만들었다. 부엌을 오가며 초병을 살살 흔들던 수고는 더 깊은 맛의 식초를 얻기 위한 생활의 지혜였다. 비록 그 정겨운 풍경은 사라졌지만, 오늘날 부엌 한켠에도 여전히 식초가 놓여 있다. 시대와 방식이 달라졌을 뿐, 식초는 우리 밥상에서 꾸준히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발효식초는 오랫동안 우리 식문화의 중요한 조미료였다. 한때는 집집마다 직접 식초를 담가 쓰기도 했지만, 이제는 지역농산물과 전통 발효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제품으로 생산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쌀, 보리, 현미 등 곡물로 빚은 식초는 곡물 본래의 영양 성분과 미생물 발효 과정이 어우러져 건강과 맛을 함께 살리는 우리 고유의 자산이다.

곡물식초는 곡물에 누룩과 물을 더해 알코올발효와 초산발효, 숙성을 거쳐 완성된다. 이때 곡물 속 전분은 곰팡이가 분비한 당화효소에 의해 포도당으로 전환되고, 효모가 이를 알코올로 발효시켜 주면, 초산균이 다시 산화시켜 식초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아미노산, 유기산, 펩타이드 등은 신맛뿐 아니라 감칠맛과 기능성을 더해준다. 특히 쌀식초에는 구연산, 아세트산, 피루브산 등이 풍부해 피로회복과 항산화 작용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곡물의 종류에 따라 향미와 성분이 달라진다.

또한, 곡물식초는 미생물 다양성이 살아 있는 발효식품이기도 하다. 누룩을 이용한 전통 방식의 발효에서는 효모, 곰팡이, 초산균 등이 함께 어우러져 ‘병행복발효’가 진행된다. 이를 통해 여러 미생물이 동시에 활동하며 복합적인 맛과 향을 만들어내고, 인공 첨가물 없이도 깊고 부드러운 풍미를 완성한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미생물 군집이 독특한 풍미를 만들며, 이러한 미생물들의 조화가 곡물식초만의 고유한 맛을 결정한다.

한편, 곡물식초가 일본의 흑초처럼 건강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음에도 국내에서는 그 효능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품질 향상 메커니즘 연구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 식초의 생리활성을 체계적으로 규명하고, 적합한 초산균을 선발하며 발효 공정을 최적화하는 연구를 통해 곡물식초의 품질과 기능성을 높여야 한다. 현재 곡물식초의 국내 판매량은 약 1.1만 톤으로 전체 식초 시장의 10%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지속적인 연구와 기술개발이 뒷받침된다면 곡물식초는 건강 중심의 미래 식품 산업에서 고부가가치 품목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유용한 발효미생물을 발굴하여 식초 제조공정에 적용하고, 품질과 기능성 등 목적에 맞춰 발효식초의 고품질화, 상품화를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산업적 활용 가치가 높은 토착 발효미생물을 활용해, 발효식초 제조공정의 현대화와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보급하여 실용화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지역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우리 전통 발효식초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제 곡물 발효식초는 평범한 조미료가 아니라, 과학과 전통이 만난 발효 문화의 산물로 바라봐야 한다. 곡물로 빚은 식초 한 방울에는 우리 땅의 생명력, 미생물의 기술, 그리고 세대를 이어온 생활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우리의 밥상에서 그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즐길 때, 곡물식초는 과거의 유산을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 식문화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국립식량과학원 발효가공식품과 농업연구사 최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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