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이라는 파격적 형식 도입

plan C 종료전 ‘모두가 아는 도둑질' 공간에 작품을 반입하는 방식을 완전히 뒤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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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에 자리한 독립예술공간 사용자공유공간planC가 다음달 5일까지 종료전 ' 모두가 아는 도둑질 : 공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를 갖는다.

지난 8년 6개월간의 활동을 종료하는 과정으로 두번째 기획전이다. 이번 전시는 ‘도둑질’이라는 파격적 형식을 통해 예술가가 공간에 작품을 반입하는 방식을 완전히 뒤집는다. 일반적으로, 작품이 완성된 후 전시장으로 반입되는 기존의 전시 구성 방식과 달리, '모두가 아는 도둑질 : 공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에서는 예술가가 먼저 공간의 일부를 훔치고, 그 훔쳐간 ‘공간’ 을 기반으로 작업을 제작하여 다시 작품을 공간에 설치하는 형식을 요청한다.

참여 작가들은 전시공간으로서의 운영 종료가 확정된 ‘사용자공유공간planC’ 라는 공간을 창문이나 벽 등의 구조물을 뜯어내기도 하고, 긴 커텐이나 독특한 장식의 보관함 등 ‘planC의 일부’ 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잘라내어 ‘도둑질’ 해간다.

도둑질은 실제 귀중품의 절도 행위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가진 잔여들, 구조물, 조명, 장식부터 소리, 질감, 공기, 시간, 남겨진 무수한 흔적들 등을 가르킨다. 예술가가 ‘공간’ 이 ‘무엇’ 으로 이루어지는지 드러내게 하고자 하는 일종의 창작적 제안이다.

참여 작가들은 담당자에게 날짜와 시간을 예약하고, 문자로 공간 출입 비밀번호를 발급받는다. 이후 계약서 작성, 증빙 서류 제출, ‘훔치기 전’과 ‘훔친 뒤’의 사진 · 영상 기록, SNS 업로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쳐 도둑질을 마친 뒤, 지정된 설치 기간에 다시 각자의 작품을 공간 곳곳에 선착순, 자율적으로 배치한다.

어떠한 계획이나 관습이 아닌 예술가의 직접적인 ‘공간’ 과의 관계맺기를 지향하기 위해 ‘ 두 번의 방문 금지, 도둑질은 단 한번 ’, ‘ 하나(종류가 아닌 개수의 단위로) 만 훔칠 수 있음 ’ 등의 최소한의 규칙들도 정해졌다.

이러한 과정들은 ‘planC’ 라는 물리적 공간을 해석하는 것을 넘어 ‘공간’ 이라는 것을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또 예술이 어떻게 ‘장소’ 와 감응용하는 지를 되묻는 장치로 기능한다. ‘도둑질’ 이라는 놀이적 요소들을 더해 예술가의 욕망을 자극하며, 다양한 재해석들을 기다린다.

공간을 기반으로 촉발된 독립큐레이터그룹 Clab에서 기획을 맡았다.

고형숙, 김누리, 김다이, 김민희, 김보미, 김이중, 로디(김선율), 류엘리, 매드김, 명안나, 문채원, 박마리아, 박선영, 박온유, 박인선, 박정애(Revi), 박현진, 시아도어, 안현준, 용하현, 유승협, 유정, 이나눔, 이면, 임은혜, 장모리, 정수진, 정진경, 제타안, 채리, 최윤정, 최지영, 한강, CASHTRAY, Inprocess collective(박지형&B.Ajay Sharma), Q, Tedd(김희중) 등 37팀이 참여했다. 미술 분야 작가들 뿐만이 아닌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이 참여했다.

해당 전시는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2025 우수기획전시' 지원사업에 선정, 보조금을 받았다.

사용자공유공간planC는 100년된 일식가옥에서 '선언'과 기부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독립예술공간이다. 약 9년간 공유공간으로서 '선언'을 통해 최대 10일 이내의 사용 기간을 갖는다는 하나의 규칙 하에, 163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구들장논 ‘굳이백배미’가 진행되며, 생태예술, 사회적예술로의 확장을 연계하는 등 지역 내 외 다양한 예술가들의 실험과 자율적 활동을 위한 플랫폼이 되어 왔다. 이번 종료전을 마지막으로 2025년 12월까지만 운영되고 사라진다.

전시를 기획한 독립큐레이터그룹 CLab은 이러한 새로운 형식의 시도들을 통해 전북 지역에의 독립큐레이터 양성과 집단적 기획 및 리서치 체계 구축을 목적으로 하며, 지역 예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집단적 기획 방식을 실험한다. 단순히 전시공간으로서만 공간을 대하는 것이 아닌, 지역예술계의 거점에 대한 질문을 병행하며, 지역 내외 예술 생태계들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 촉발되기를 기대한다.

3일 오후 4시부턴 독립큐레이터그룹CLab 포럼 '불완전한 이상이 실현될 때 어떤 공동체가 형성되는가?'가 준비되고 있다.

그동안 공간을 운영했던 사용자공유공간planC 시작자 이산의 기조발제를 시작으로,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이승준 이사장, 연결기획자 톨, 예술가, 예술사회학연구자 김신윤주가 참여해‘ 불완전한 이상이 실현될 때 어떤 공동체가 형성되는가?’ 라는 주제로 발제를 진행한다. 포럼이 종료된 후에는 참여작가인 김이중, 유승협 작가의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전국 단위로, 수 많은 비 상업 공간들이 생기고 사라지는 현 시대에, ‘사용자공유공간planC’ 라는 창작 생태계의 ‘종료’ 를 단순한 애도로서 다루지 않고, ‘사라짐 이후의 등장’ 을 기대하며, 공간이 계획되지 않은 방식으로 회수되고, 재조립되는 과정을 통해 ‘공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라는 마지막 질문들을 전시를 통해 전달한다.

당신이라면 무엇을 훔치고 싶은가? ‘한몫’ 의 변화에서 앞으로의 새로운 등장을 기대해본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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