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3월 경기 양평에서 사온 설탕단풍나무는 8개월만에 2m가 넘게 자랐다. 주변 다른 나무들은 울긋불긋 단풍이 들거나 잎을 떨구고 있지만 설탕단풍나무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아직도 잎이 푸릇푸릇하다.
귀촌귀산을 호기롭게 선언한 올해 농사의 성적표는 스스로 평가할 때 낙제수준이다. 농장의 주요 작물인 자두나무(50여주)는 자두가 거의 열리지 않았고 대 여섯 그루는 이미 고사했다. 꾸지뽕은 수확시기를 놓쳐서 땅에 떨어지거나 새들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밭 가장자리와 빈 곳에 심어둔 옥수수도 비 피해를 입어서 겨우 열 댓 개 정도만 땄을 뿐이다. 왕성하게 자란 연근은 도구와 장비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 채취를 하다가 포기하고 내년부터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나마 밭 가장자리에서 쑥쑥 크고 있는 설탕단풍나무가 쓰린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우리 농장에는 5년생 자두나무 서너 그루와 2년생 50여주가 있다. 500평 규모의 농장에서 약 7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작물이다. 자두나무를 주로 심은 건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2021년까지만 해도 농장에는 돼지감자로 뒤덮여 있었다. 당시 후배들과 1년에 한번씩 돼지감자를 캐러 다녔던 나는 2021년 가을에 처음으로 나무를 심어보기로 했다. 일단 약용과 식용으로 유용한 주엽나무, 참죽나무, 개복숭아, 꾸지뽕, 자두나무, 두릅나무, 가시오가피 등 7종류를 골랐다. 1, 2년쯤 지나고보니 개복숭아 자두나무 꾸지뽕의 성장속도가 가장 빨랐다. 이때 아버지가 “아무래도 과일나무가 나을 것 같다”며 한꺼번에 60여주를 주문한 것이다.

3월에 진안군이 식재한 것과 같은 품종의 설탕단풍나무. 같은 시기에 심었지만 이 종은 거의 자라지 않았다.
이때 심은 자두나무는 직경이 10 ㎝ 이상 자라고 수고도 3미터 이상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 퇴비나 비료를 아끼지 않고 주었던 덕분이다. 작년에 처음으로 자두가 열렸을 때는 정말 감격스러웠다. 잘 익었을 무렵 따먹어보니 생각보다 달고 맛있었다. 올해부터는 실컷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부풀었다.
그런데 올해 자두는 달리지 않았다. 올봄에 며칠간 유난히 추웠던 날씨에 냉해를 입어 꽃이 대부분 떨어져버린 탓이다. 그나마 서너 개 달려 있던 자두도 벌레 등쌀에 익기도 전에 썩어버렸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꽃이 피기 전에 약을 뿌리고 그 후로도 정기적으로 약을 주었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밭 가운데 부분에 있는 자두나무가 차례차례 고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퇴비를 넉넉히 주고, 배수로도 잘 내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잡초가 자라는 걸 막기 위해 피복해놓은 대형비닐 때문인가 싶어서 모두 걷어치우고 약도 정성껏 뿌렸지만 차도가 없었다.

농장 중앙부분은 일부 자두나무가 고사하면서 잡초만 보인다. 주로 농장의 주변부에 있는 나무들은 잘 자라는 반면 중앙에 있는 나무들은 더디게 자라고, 고사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가장자리에 있는 수목들은 크고 상태도 좋다. 심지어는 유연작업(열매를 손쉽게 따기 위해서 줄기를 사방으로 휘어 고정시키는 것)을 하다가 중간부분이 꺾여진 나무도 아래쪽에서 새로운 가지를 뻗으면서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이런 걸 보면 식물이 병충해에 취약하긴 하지만 재활 능력이 놀랍기도 하다.
자두나무와 함께 대표적인 작물인 연근은 병충해나 잡초 때문에 골치 아플 일이 없었다. 물 조절만 해주면 저절로 잘 커주었다. 하지만 수확할 때가 문제다. 일단 뻘 속에 들어가서 수면 아래에서 연근을 찾아내 캐내야 한다. 뻘을 헤집기도 힘들지만 찾아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자칫하면 찍히거나 잘리기 쉽기 때문이다.
무성했던 연잎이 시들어갈 무렵, 나는 시험삼아 연근캐기에 도전해보았다. 가장자리 부분 물이 없는 쪽으로 발을 디디자 장화 신은 발이 10 ㎝ 이상 빨려들어갔다. 말라버린 줄기를 따라 뿌리쪽에 삽을 넣어서 조심조심 파헤치니 연근이 보였다. 삽질을 두어차례한 다음 연근을 뽑아내려 힘을 써봤으나 뽑히기는커녕 중간에서 뚝 끊어져버린다. 그렇게 중간에서 잘린 연근은 연근 내부로 진흙이 들어차버려 지저분해지기 마련이다. 또 삽으로 흙을 파내면 금세 옆에 있는 물이 빈 공간을 채워버려 손으로 더듬더듬 연뿌리를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연근채취하는 일이 왜 극한직업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대규모 연근농장에서는 소방차에서 살수용으로 쓰는 호스를 연근이 있을 만한 부분에 뿌려 연근을 채취한다. 고압으로 물을 뿜어내면 진흙땅이 파이면서 연근이 노출되는 원리이다.
하지만 오로지 삽 하나로 작업을 시작한 나는 10분만에 온몸이 진흙 투성이가 된 채 기진맥진하고 말았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연근과 씨름하여 수확한 연근은 약 2㎏ 정도. 굵기나 길이는 대형 바나나 정도만 했다. 빛깔도 노르스름하니 딱 바나나 같았다. 시중에서 파는 팔뚝만한 건 없었다. 잎은 웬만한 우산보다도 넓고 키도 2m가 넘는데 뿌리는 그거 밖에 안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양분이 뿌리로 가지 않고 햇빛경쟁에만 써서 그랬을까? 결국 연근 채취는 내년에 장비를 갖춘 후 본격적으로 하기로 했다.

심은 지 2년만에 연근을 처음으로 캐봤다. 크기나 색깔이 바나나와 비슷했다.
그렇게 애써서 캐온 연근으로 그날 저녁에는 연근전을 만들어보았다.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맛있는 전을 뚝딱 부치는 걸 보고 도전했는데 보기보다는 복잡하고 오래 걸렸다. 일단 연근을 씻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연근 안에 뚫려있는 구멍 안으로 들어간 진흙을 빼내는 게 문제였다. 잘못했다가는 진흙을 씹는 게 아닌가 하여 연근을 얇게 자른 후 10여 번을 헹궈내야 했다. 역시 모든 일은 보는 것과 직접 해보는 건 달랐다. 매운 고추와 돼지고기를 다져서 부침가루와 함께 섞은 후 연근에 골고루 발라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부쳤다. 연근의 아삭한 맛이 살아났다. 내 손으로 심어 가꾼 작물을 갖고 요리한 첫 번째 음식이었다.
올해 가장 아쉬웠던 건 꾸지뽕을 제대로 수확하지 못한 것이다. 한동안 농장에 가보지 못하다가 10월 말에 찾았을 때에는 열매가 대부분 땅에 떨어져버렸다. 남아있는 것만 따보니 겨우 한 바가지 정도(1㎏) 됐다. 이름도 재미있는 꾸지뽕은 ‘굳이 따지자면 뽕나무’라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실제로 뽕나무과이면서 열매도 오디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빨간색으로 달콤하다.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고 항암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올해로 4년생인 꾸지뽕은 네 그루가 있는데 지난해 처음으로 한 나무에서만 대략 2㎏ 정도를 수확했다. 올해에는 나머지 세 그루에서도 꽤 많이 열려있어서 기대가 컸는데 수확시기를 놓치고 만 것이다.
지난 5월에 풀어놓은 미꾸라지는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진안읍내에서 자연산 미꾸라지를 2만원어치(2㎏)를 사다가 넣었는데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보통 농약으로 인한 피해가 있지만 우리 농장 위쪽에 있는 밭에서는 올 한해 농사를 짓지 않아서 농약을 줄 일이 없었다. 주변에 사는 들고양이가 잡아먹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에는 뭔가 흔적이라도 남았을 텐데 전혀 없었다. 또 올해 폭우가 여러 차례 내려서 물길을 따라 떠내려 갈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남는 녀석이 있어야 할 텐데 구경할 수가 없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경험한 시행착오이다.
하지만 내가 올봄에 양평에서 직접 가서 구매한 설탕단풍나무 여덟 그루는 그 성장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키도 2m 넘게 자란데다가 커다란 잎이 아직까지도 고유의 단풍을 거부한 채 푸릇푸릇하다. 아마 지금도 자라고 있는 듯하다. 이런 속도라면 4,5년 후에는 시럽을 생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더 구입해서 심을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한편 진안군청이 우리 산에 식재한 설탕단풍나무는 전체적으로 잘 크고 있지만 성장속도가 빠른 것 같지는 않다. 산에서 다른 나무나 잡초들과 경쟁을 해야하고 상대적으로 척박한 상황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구역을 나눠서 풀베기를 해주고 있어서 50~60% 정도는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귀산 준비 첫해에 이처럼 농사 실적이 좋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내가 현지에 정착하지 않고 가끔씩 오가면서 돌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다른 1년생 농작물에 비해서 손이 덜 가는 것이긴 하지만 제때에 맞춰서 약을 치고 풀을 베어주는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2주에 한두번 찾아가는 정도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농장 바로 옆에 있는 원룸 임차를 알아보았으나 빈 방이 없고 향후 1,2년 사이에는 방이 빠지지 않을 거라고 하여 당분간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2개동 18 가구 2개동으로 이루어진 원룸은 우리 농장 옆에 있어서 별도로 체류형쉼터를 설치하는 것보다 비용도 적게 들고 관리도 편해서 일단 기다려볼 요량이다. 또한 농장 한켠에 적당한 체류형쉼터를 마련하는 방안도 본격적으로 검토해봐야겠다. /최진환(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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