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궤적과 시적 고뇌가 시의 침묵과 여백 속에 응축돼 있다

박미혜 시집‘달의 언어로 사랑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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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언어로 사랑을 짓다(지은이 박미혜, 펴낸 곳 인간과문학)’는 세상의 틈 사이로 조심스럽게 말은 건네는 마음으로 지은 시집이다.

제1부 ‘달의 언어로 사랑을 짓다’ 등 모두 6편에 소개된 101편의 시는 존재의 본질과 고독을 찬란한 슬픔의 언어로 노래하며 삶의 의미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시편들의 행간과 여백을 음미하면, 삶이 시가 되는 고단한 길을 걸어온 시인의 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절망과 고독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시들은 묵직한 울림으로 가슴에 스며들고, 삶에 대한 통찰과 예지가 담긴 아포리즘은 눈부시게 반짝인다. ‘말하지 않은 말, 침묵의 말’ 속에 담긴 풍부한 이야기를 읽으며, 짧은 시가 어떻게 큰 시가 되는지 체험하게 한다. 이 시집은 절망의 바닥에서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고독한 영혼의 비망록이자, 눈물 머금은 침묵의 언어로 써 내려간 독백의 자서전이다. 시인의 삶의 궤적과 시적 고뇌가 “짧은 시의 침묵과 여백” 속에 응축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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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가장 얇은 뼈마디에/사랑의 줄을 걸었다//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속에/너는 나고, 나는 너였다/네 눈동자에 한 번 더 몸을 던지고/우리는 하나의 숨결이 되었다//몸도 마음도 영혼으로 엮어/하나의 조각달을 올려다 보면서/그 끝자락에/은실 같은 그네를 걸었다//우리 나란히 은빛 그네에 앉아/별빛을 밀어내듯 그네를 타자//높이 오를수록/미움도, 슬픔도/달 아래로 흘러내린다//밤이 깊을수록/초승달은 반쯤 숨긴 얼굴로//나를 부드럽게 속삭이며/끌어 올렸다//시간이 부러진 공중에 부유한 달그림자/빛에 젖은 또 하나의 꿈/검은 하늘은 바다보다 더 깊었고/나는 깨달았다/내 그림자를 잃고 흔들림으로/차오름이라는 사랑을 밀어 올렸다.//’(달의 언어로 사랑을 짓다’ 전문)

&;원래 사람들은 달의 존재를 몰랐고, 달을 통해 그리움이 생겨난다는 것도 몰랐고 달 속에 생겨난 환한 그리움 때문에 달과 합일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난다는 것도 몰랐고, 그 욕망이 결국 성공할 수 없기에 설움을 안게된다는 것도 몰랐다. 다시 풀면, 달=달, 달=그리움(달이 아닌 대상), 달=쳐다봄(달이 아닌 주체), 달=달. 처음의 등식과 마지막의 등식은 같은 형태를 지니지만, 인식이 확장된 다음의 달은 사랑으로부터 소외받은 비창이 된다. 달은 달이었다. 달은 달이 아니다, 그리운 누구이다. 달은 달이 아니다, 그리워하는 '나'이다. 달은 달일 뿐이다. 이런 구조로 되어 있는 시인 셈이다.

이 시는 그림 같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 그 말을 한 마디도 표현하지 않고 우주 속에 달과 나를 배치하여 내 마음이 움직이고 새롭게 무엇인가를 깨달아가는 구도의 현장 같은 적요한 시. 어려운 말이 한 마디도 없지만 지극히 심오하여 인간이 인간을 사모한다는 일을 우주적으로 펼쳐놓은 언어의 마술이 아닐 수 없다. 달은 달이고 나는 나다. 나는 달이 아니며, 달은 내가 아니다. 당신은 내가 아니며 나는 당신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이고 싶었듯, 나도 당신이고 싶었다. 이 시는 합일에 대한 미친 격정과 그 소외가 주는 영원한 비탄. 명멸하며 사라져가는 인생 속에 떠오른 달을 생각한다.

시인은 “언제부턴가 단어들은 저 혼자 울고, 웃고, 그러다 이내 고요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조용한 속삭임을 종이 위에 조심스레 옮겨 적다 보니, 어느덧 두 번째 시집을 건네게 됐다”고 했다.

작가는 시는 여전히 어렵고, 좋은 시는 더더욱 멀고도 아득하지만, 그럼에도 시를 사랑하고 기다려준 이들을 생각하며 이 작은 책을 조심스레 내밀었다. 시인은 “부디, 이 시집이 당신의 어떤 고요한 저녁에 무심코 펼쳐져 잠시 머물러도 좋은 쉼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가을이 익어간다. 당신의 시간에도 따뜻한 시 한 줄 머물기를 소망한다”고 더붙였다.

시인은 전주에서 태어나, 2018년 월간 ‘한맥문학’ 11월호에 시 ‘11월의 어머니’, ‘그 눈빛’ 외 3편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전북문단, 전북PEN, 전주문학, 시의 땅, 신문학 등 여러 동인지에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왔으며, 끊임없는 시적 탐구와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국제PEN한국본부, 국제PEN한국본부전북위원회, 한국문협 전국지회, 한국문협 전주시회, 전북시인협회, 한국신문학인협회 전북지회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쳐오고 있으며, 현재 국제PEN한국본부전북위원회 사무차장, 한국신문학인협회 전북지회 사무차장을 맡고 있다. 시집으로 ‘꽃잎에 편지를 쓰다’, ‘달의 언어로 사랑을 짓다’를 펴낸 바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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