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광대 교수를 지낸 남강(南剛) 김태곤(金泰坤, 1936~1996)의 업적이 소개돼 눈길을 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민속소식’ 312집(2025년 11월호)에 장장식 길문화연구소장이 쓴 ‘원본사고 이론을 세운 민속 아키비스트 남강 김태곤 선생’이란 글을 통해서다.
1971년 주간경향 8월호 인터뷰 자료에 12년간 모은 자료의 점수가 소개되어 있다. 무복 208점, 무구 311점, 무신위(巫神位) 107점, 무신도 213점이라 했으니, 양도 방대하지만, 민속유물을 바라보는 혜안도 대단하다. 남강이 작고한 1996년까지의 수집자료를 합계한다면 그 양은 더욱 방대하다고 한다.
일찍이 남강은 원광대학교에 재직할 때 박물관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원광대박물관의 내실을 꾀하기 위해 유물 수집에 박차를 가했다. 박물관장으로 재임하던 1978년 3월 1일에 수집 유물 중 무구와 무신도 562점을 흔쾌히 기증했다.
또 경희대학교에 재직 당시, 박물관장을 역임하면서 경희대박물관 중흥의 기틀을 마련했다. ‘시베리아관’을 준비하고 개관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몽골, 야크츠크 등 국외 자료 474점을 수집해 시베리아관의 충실을 꾀했다.
이보다 이른 1976년에도 원광대 박물관에 국내 무속자료를 기증한 바 있으니 남강의 박물관 사랑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남강(南剛). 충청남도 서산 출신. 아버지는 용권(容權)이다. 고향에서 태안중학교를 졸업한 뒤 인천고등학교를 거쳐 1963년에 국학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66년 경희대학교 대학원(민속학 전공)을 졸업하고 1977년 일본 동경교육대학 대학원에서 ‘한국무속의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학교 강사를 거쳐 1969년부터 국제대학 전임강사로 있다가 1971년 원광대학교 교수로 전직, (1971∼1978) 민속학연구소장, 박물관장을 역임하였다. 1978년에 경희대학교로 복귀하여 계속 재직하였고, 민속학연구소장을 역임했다.
김태곤이 무속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59년.
전국을 돌며 현장조사를 벌였고, 북한의 무속은 월남한 무속인들을 만나 연구했다. 말년에는 시베리아, 몽골 등을 방문해 우리 무속과의 관련성을 파헤쳤다. 현장을 돌며 모은 자료 수만점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박물관에 기증했다.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한 것은 3만1,000여점으로 국립민속박물관 개인 기증자 중에는 가장 많다.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부인 손장연씨의 세심한 노력 덕분에 수집품의 대부분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손씨는 자택에 항온항습기를 설치해 자료 보전에 신경을 썼다.
그는 한국 무속(巫俗) 연구에 평생을 바친 민속학자다.
선생은 문학도로서 일간 신문사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종합지 소설부문 신인상을 수상했지만, 학자의 길로 진로를 바꿔 이름값을 드높인 민속학자요 국문학자이다. 34권의 저서와 173편에 달하는 논문을 남겼다.
연구성과를 일별하면 구비문학과 기록문학에 대한 업적이 적잖음에도 민속학자로서 한 획을 그었다. 무속에서 찾은 ‘원본(Arche-Pattern)’ 또는 원본사고(原本思考)는 한국민속 전반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민간사고의 본(本)이라는 이론을 제시, 우리 문화의 심연을 해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기도 했다. ‘모든 존재는 미분성(未分性)을 바탕으로 서로 순환하면서 영구히 지속한다.’는 독창적인 이론이다.
60이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때, 마지막까지 앉아있 던 책상 위에는 ‘한국민속과 북방대륙민속의 친연성(親緣性)’의 결론 부분만 비어있던 육필 원고가 놓여있었다. 그는‘책은 발로 쓴다’를 실천한 현장주의자였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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