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재발견]웅치, 조선을 지켜낸 이름 없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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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왜구가 침범해 왔다. 적선이 바다를 덮어오니 부산 첨사 정발은 마침 절영도에서 사냥을 하다가, 조공하러 오는 왜라 여기고 대비하지 않았는데 미처 돌아오기도 전에 적이 이미 성에 올랐다. 발은 난병 중 전사, 이튿날 동래부가 함락되고, 병사 이각은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달아났다. 2백 년 동안 전쟁을 모르고 지낸 백성들이라 각 군현들이 풍문만 듣고도 놀라 무너졌다.” - 《조선왕조실록》

이렇게 어느 봄날 시작된 전투는 그렇게 장장 7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전쟁에는 미리보기가 없다. 갑자기 시작되고 일단 시작되면 누가 그 판세를 잡느냐가 승패를 좌우한다. 왜군은 파죽지세로 한양을 향해 북상했으나, 웬걸 왕은 이미 피난 가고 황량한 도성에는 백성들뿐이었다.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보기와는 달랐다. 언제나 뒤를 조심하라고 했던가. 진정한 복병은 아래로부터, 백성들로부터 다시 시작됐다. 남쪽 바다에서는 우리가 익히 아는 해전이 벌어져 해로를 막아냈고 오늘날 그날의 영웅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육지에서는 어땠을까. 오늘은 그날의 야기를 하나 소개한다.

나라가 하루아침에 기울던 그때, 남원과 전주 사이의 험준한 고갯길 웅치(熊峙)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꾼 싸움이 벌어졌으니 바로 ‘웅치전투’다. 웅치는 호남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기에 이 길이 뚫리면 전라도의 곡창지대가 왜군에게 넘어갈 판이었다. 전쟁에서 병사만큼 중요한 것이 군량미 확보다. 하지만 관군과 의병, 이름도 남기지 못한 수많은 백성들이 피로써 호남 방어선을 세웠고 결국 전주를 방어하여 전라도는 왜군의 점령을 피했고, 곧 이어진 의병전쟁의 불씨가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물론 일본군은 결국 웅치고개를 넘었다. 그러나 이들은 더이상 전주를 진격할 여력이 부족했고,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었으니 결국 웅치전투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기에 승리로 평가된다. 웅치는 임진왜란 초기 전세를 바꾸고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했던 버팀목이 된 것이다. 무엇보다 웅치의 가치는 단지 전쟁의 승리로만 그치지 않는다. 훈련도, 장비도 부족한 농민들이 나라를 구하자는 뜻 하나로 나섰고, 그 결의가 조선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오늘날 우리의 인식은 그 가치에 미치지 못한다. 임진왜란 하면 한산도대첩, 행주대첩, 진주대첩만 떠올리지, 웅치전투, 이치전투, 황진장군을 떠올리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지역 사람들 마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가 많다. 우리는 그간 교과서에서 배우던 몇 대 대첩과 같은 주입식 교육에만 익숙해져, 그 외에는 잘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관련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싶다. 그렇다면 현재 웅치 고갯길은 어떠한가. 고개 정상에는 웅치전적지 기념비와 간략한 안내판이 있고, 약간의 탐방로가 일부 조성되어 있으나, 전쟁의 중요성에 비해서는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최근 몇 년 영화에도 소개되어 이전보다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고, 국가사적에 지정되고 종합정비계획도 세워졌다 하니 다행인 일이다. 이제는 웅치를 단순한 전투유적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나라를 지킨 역사현장으로 기억해야 할 때다. 웅치전투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과거의 전투를 되새기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지금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가, 위기 앞에서도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신념을 되살리는 일 일것이며 그러한 정신을 기리고자, 누군가는 국가유산을 관리하고 그 의미를 되새긴다. 그러니 올가을, 웅치전적지를 찾아 붉은 단풍 사이를 걸어보며 400여 년 전 그들의 숨결과 마주해보는 것은 어떠한가.

한편, 전북동부문화유산돌봄센터는 국가유산청과 전북특별자치도청의 지원을 받아 문화유산돌봄사업을 진행하며, 도내 동부권역 8개지역의 국가유산을 관리한다. 정기적인 상태 모니터링과 전문 모니터링, 경미한 수리와 일상적 관리를 통해 예방보존하고 있으며, 국가유산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존 및 관람환경을 개선한다./최유지(전북동부문화유산돌봄센터 모니터링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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