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전주에 살고 있는 양동주씨가 ‘전주 방안퉁수’와 자전적 에세이 ‘해찰 70년(이상 도서출판 가온미디어)’을 펴냈다.
'방안퉁수'는 방 안에서만 퉁소(세로로 부는 대나무 피리)를 크게 불고, 밖에서는 아무 힘을 못 쓴다는 데서 유래된 전라도 사투리이다. 이는 '밖에서는 제대로 행세하지 못하면서 집안에서만 큰소리를 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지만 그는 결코 ‘방안퉁수’가 아니었다. 그가 전주 토박이로 살아오면서 25년 동안 써온 글과 사진을 통해 지역의 역사를 고스란히 증언한다. 그는 군생활 3년을 빼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전주사람 냄새로 진동한다,
전주의 ‘냄새’편엔 전주 막걸리, 전주 콩나물국밥, 전주 가맥, 전주 한옥마을 칠경, 전주의 사창가, 건달 이야기, 보신연가, 전주 본정통, ‘전주의 울타리’편엔 완산칠봉, 곤지산, 치명자신, 기린봉, 건지산, 황방산, 모악산 태극종주 등이 소개된다.
그는 50여년이 된 칠성건재는 예전엔 막걸리 골목이 있었다고 했다. 부안 왕대포집, 그리고 작부가 있었던 봉동집, 그리고 유일하게 남은 버들집. 하지만 스 많은 이 버들집 하나 만이 남아 한자리에 전화 국번하며 떨어져 나간 ‘ㄷ’자 간판까지 고색창연하다. 한 주인이 2개의 술집을 열었는데 ‘만날 때’란 약주집과 ‘정화집’이란 막걸리집이다.
쑥스러운 이야기도 모습을 드러낸다. 전주엔 2곳의 사창가가 있었다. 시청 뒤편의 선미촌과 남부시장 부근의 선화촌이다. 선미촌은 ‘뚝너머’나 후미끼리 즉 일본말로 건널목로 불리웠으며, ‘선화촌’은 ‘개골목’으로 불리워졌다고 한다. 이곳의 화대로 솟티임은 300원, 긴밤은 1,500원이었다고 했다. 그는 여성들만 걸린다는 ‘트리코 모나스‘에 감염된 적이 있었다고 실토한다.
풍남문 앞 태풍거 앞에 자전거 한 대가 온다. 이곳은 1967년에 유명했던 중국집이었다. 그의 나이 40~50 사이에 믈짜장에 빠져 시정 앞 오거리 부근의 ‘수정관’을 즐겨 이용했다.
‘해찰 70년’은 각종 산행기와 나의 몽타주, 죽음. 죽음들 등으로 구분했다.
작가는 “실패한 삶이었지만 나름 한 판의 인생이었다. 그 어느 누구의 인생인들 쉬운 삶이 있을까마는 이렇게 책으로 엮어 봤다는 게 어디냐”면서 “읽히지 않고 라면 냄비 받침으로 뒹굴어도, 폐지 라어커에 덜컹덜컹 실려 간다고 해도 나의 흔적이 남겼다는 걸로 그냥 즐겁다”고 했다.
그는 원적이 서완산동이며, 본적은 전동1가이다. 효자단지 아파트, 고사동, 경원동 3가, 아중리 부영 3차 아파트, 진북동 우성아파트 등을 거쳐 지금은 중화산동1가에서 살고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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