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동학·동학농민혁명사]동학농민군을 도운 죄로 재판받은 여산부사 유제관(柳濟寬,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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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산부사 유제관 판결선고서. 국가기록원 소장



일본 야마구치현(山口縣) 야마구치시에 자리하고 있는 현립문서관(縣立文書館, 山口縣 山口市 後河原 150-1)에는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사료(이하, 동학문서) 수십 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 동학문서는 동학농민군 진압을 전담하기 위해 ‘동학당 토벌대’라는 이름으로 1894년 11월 초에 조선으로 파병된 일본군 후비보병(後備步兵) 제19대대 대대장 미나미 고시로(南小四郞, 1842-1921) 소좌가 수집한 문서로서, 그의 손자 미나미 사부로(南三郞、1916年生、2008年 當時 山口市 大&;大路 168-1 居住) 씨가 현립문서관에 기증한 것이다. 그런데, 이 동학문서가 야마구치현 현립문서관에 기증되어 일반에게 공개되기까지는 장장 15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1995년 7월, 일본 홋카이도대학 문학부 소속 후루카와(古河)강당 인류학교실 구표본고(舊標本庫)에서 방치된 상태로 발견된 전라남도 진도 출신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유골 문제(아래, 일본『마이니치신문』기사 참조) 와 관련하여 그 진상을 밝히기 위한 한일(韓日) 양국의 공동조사가 시작된 것은 1997년 여름이었다, 당시, 필자는 홋카이도대학 이노우에 가츠오(井上勝生) 교수와 함께 도쿄의 일본 외무성 산하 외교사료관(外交史料館), 방위성 산하 방위연구소 도서관(防衛硏究所 圖書館),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憲政資料室), 국립 국문학 자료관(國文學 資料館)을 방문하여 동학농민혁명 관련 자료조사 및 수집에 임했다.

그중에서도 농민군 진압 전담 부대인 후비보병 제19대대 대대장을 비롯한 장교(將校)들에 대한 조사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는 사실을 인식한 필자는 1997년 겨울에 방위연구소 도서관을 재차 방문하여 자료조사에 임했다. 이때 방위연구소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육군예비후비장교동상당관복역정년명부(陸軍豫備後備將校同相當官服役定年名簿)』(明治 27年 7月 1日 調)를 발견하고, 그 명부 속에서 미나미 고시로 대대장을 비롯한 제19대대 예하 중대장과 소대장들의 군(軍) 경력에 관한 기본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이후 필자는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확인한 미나미 고시로의 군 경력을 토대로 그의 출신지를 비롯하여 후손의 생존 여부 등을 광범위하게 탐색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윽고 미나미 고시로의 후손이 야마구치시에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때가 1999년 경이었다. 어렵사리 미나미 고시로의 후손이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난 뒤에는 후손을 만나 미나미 고시로의 행적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해자 측인 미나미 고시로의 후손을 피해자 측인 농민군의 후손격인 필자가 만나는 일은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미나미의 후손이 보존하고 있을지도 모를 동학 자료를 찾는 일은 이노우에 교수에게 일임하였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획기적인 전기(轉機)가 찾아왔다. 1997년 이래, 10년 이상 필자와 함께 후비보병 제19대대 대대장 미나미 고시로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미나미의 후손과 접촉을 시도했던 이노우에 교수에게 정년 퇴직일을 며칠 남겨 놓지 않은 2008년 3월경에 미나미의 손자 미나미 사부로 씨로부터 만나러 와도 좋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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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珍島) 출신 동학농민군 유골 발견 사실을 최초로 보도한『마이니치신문』 1995년 8월 3일, 조간





연구실 퇴실(退室) 정리 등 퇴직에 따른 업무가 산적한 가운데서도 서둘러 사부로 씨를 만난 이노우에 교수는 사부로 씨로부터 미나미 고시로가 동학농민군 진압 당시 조선 현지에서 사용했던 군용(軍用) 고리짝 속에 다수의 동학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2010년 3월에 야마구치현 현립문서관에서 작성한「미나미가 문서목록」에 의하면, 미나미 사부로 씨가 기증한 문서는 총 74건 110점이다. 이들 문서는 후비보병 제19대대 대대장 미나미 고시로의 행적과 관련하여 작성되었거나 수수(授受)된 문서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 미나미 고시로의 장남인 미나미 아키라(南璋), 차남인 미나미 타다시(南井, 후일 柳井家를 계승)와 관련된 일부 문서도 포함되어 있다. 이 미나미가 문서 가운데 동학문서가 35점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 미나미 고시로가 조선 현지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35점의 동학문서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제2차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을 적극 도왔던 여산부사(礪山府使) 유제관의 죄상을 기록한「문서번호 18: 전봉준영칙(여산부사 유제관의 죄상)」이란 문서이다. (단, 문서번호는 야마구치현 현립문서관에서 분류한 번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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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의 진실을 찾아가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2012, 54쪽



이 문서에 따르면, 후비보병 제19대대는 농민군 진압만 아니라 농민군을 지원했거나 방조(傍助)했던 전&;현직 지방관을 포함하여 농민군 측에게 식량 등을 제공하거나 편의를 베풀었던 광범위한 동조세력에 대한 사찰(査察) 및 체포&;구금 등의 ‘또 다른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문서번호 18: 전봉준 영칙」은 여산부사 유제관이 농민군에 협력한 죄상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즉, 유제관은 세곡으로 거둔 3백 석을 농민군의 군량으로 내놓았을 뿐 아니라, 짚신 3천 켤레를 제공하고, 전봉준 등 농민군 지휘부가 여산을 지나갈 때는 소 7마리를 잡아 대접했다는 것이다. 또「문서번호 29: 각지 동학도 상황」이라는 길이 1미터 30센티, 폭 23.8센티의 두루마리 문서 안에는 전라도 각지에서 농민군을 직간접으로 도운 전&;현직 관리 10여 명의 죄상이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다. 이 문서 안에도 여산부사 유제관의 죄상이 기록되어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와 같은 사실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이 내걸었던 제폭구민(除暴救民)이나 척왜양(斥倭洋)의 기치에 공감하는 세력이 신분의 고하나 동학 교도 여부와 상관없이 조선 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웅변해 준다.

그렇다면 유제관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앞에 인용한「판결선고서」에 따르면, 유제관은 1895년 3월 당시 49세로서 역산(逆算)하면 1847년생이다. 한편,『매천야록』에는 유제관이 전라도 구례 출신으로 무과(武科)에 합격했다고 나오는데『고문서집성 37-구례 문화유씨편(1)』(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즉, 위의 책에는 유제관에 대한 고신(告身; 임명장) 18건이 소개되고 있는바, 그가 무과에 합격한 후 처음 벼슬길에 오른 것은 1884년이며 여산부사로 임명된 것은 1893년 11월로 확인된다. (아래 1893년 유제관의 고신 참조) 그리고,『고종실록』고종 31년(1894) 9월 29일 조에 여산부사 유제관이 나주목사 민종렬과 함께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한 호남소모사(湖南召募使)에 임명된 사실이 확인된다.

그러나, 여산 출신 유생 양평(楊枰)의『춘당록』(春塘錄)에 따르면, 유제관은 농민군 진압을 위한 행동에 나서기보다는 농민군을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드러난다. 즉,「봉지감격사」(奉旨感激辭)라는 글에서 양평은 자신이 대원군이 서울의 일본군을 몰아내고자 동학농민군을 설득하기 위해 파견한 소모사 이건영(李建永)의 종사관으로 임명된 사실을 기술하면서 이건영이 동학농민군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사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용병의 법도는 성인의 도와 다를 것이 없으니 권도(權道)를 행하여 마땅함을 얻는다면 또한 시중(時中)인 것이요, 지금 이 시기에 비록 불러 모으려 하더라 도 어찌 한 사람이라도 모집에 응하는 자가 있겠소. 지금 이 군사(전봉준이 이 끄는 동학농민군-인용자)들 가운데 사대부와 선비와 훈신의 자손이 아닌 이가 없는데 이들을 제쳐두고 어찌 다른 데서 구할 수 있겠소.



라며 이건영은 일본군 구축(驅逐)을 위해서는 동학농민군과의 협력이 ’시중‘ 즉 시의에 적절한 행동임을 강조했고, 이에 대해 여산부사 유제관 역시 이건영의 설득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부사(府使)라는 고위 관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동학농민군을 도운 여산부사 유제관! 그의 대의(大義)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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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명예교수 박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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