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무형유산 임실필봉농악보존회가 故 양순용 상쇠의 서거 30주기를 맞아 문화 예술인의 정신을 기리는 뜻 깊은 추모의 장을 마련했다.
국가무형유산 임실필봉농악보존회와 양순용 상쇠 서거 30주기 추모제전위원회가 20일부터 12월 31일까지 임실필봉농악전수관 내 필봉갤러리에서 '양순용 상쇠 서거 30주기 추모 전시회'를 갖는다.
필봉농악은 두메산골의 작은 마을 농악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농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한 故 양순용 상쇠를 기리기 위해 1996년부터 매년 '필봉마을굿축제'를 개최해왔다.
이번 추모 전시회는 '민(民)·예(藝)·혼(魂)'을 주제로, 필봉농악과 인연을 맺어 온 유휴열 화가, 김준권 판화가, 여태명 서화가 등 세 명의 예술인이 참여했다.
유작가는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보관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정읍 출신인 그는 한국미술협회 고문으로서 미술관 설립, 청년미술상 제정 등을 통해 전북 지역 미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았다.
김작가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배경 작품을 제작한 한국 현대 목판화의 거장이다.
여태명 작가 또한 같은 정상회담 소나무 기념식수 표지석 글씨를 쓴 문자 예술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고 양순용 상쇠를 기리는 작품을 직접 제작, 선보이며, 축제 기간 중인 20일 '작가와의 만남' 시간을 통해 관람객들과 소통했다.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에 붓을 닮은 모양이라는 필봉산이 있다. 이 산자락을 터전 삼아 소박하게 살아오며 섬진강의 아침 안개를 닮은 사람들이 임실필봉농악을 지켜왔다.
임실필봉농악은 150년 전인 19세기 후반부터 그 전승의 계보를 확인할 수 있다. 상쇠 양순용(1941~1995)은 오늘날의 임실필봉농악이 있게 한 주춧돌이다.
그는 14세의 어린 나이에 필봉농악의 상쇠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애기 상쇠'라고 불렀다. 필봉농악은 전주대사습놀이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등에서 장원을 하며 1970년대부터 주목을 받는다.
임실필봉농악은 1988년에 국가중요무형문화재(제11-5호)로 지정됐으며, 2014년에는 진주 삼천포농악, 평택농악, 이리농악, 강릉농악과 함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높아진 임실필봉농악의 위상에 걸맞게 필봉마을에서 건너다보이는 산자락에 제법 넉넉한 공간으로 조성된 필봉문화촌이 있다.
호남좌도 필봉농악의 고향인 필봉마을은 호남의 동부 산간지역에 둘러싸여 외부와 교류가 원활하지 못한 지역적 특징 때문에 전통적인 마을굿 형태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 필봉 마을굿의 역사는 300년 정도로 추정하며 1대 상쇠 박학삼, 2대 상쇠 송주호, 3대 상쇠 양순용으로 이어졌다.
양진성(임실 필봉문화촌 관장, 임실필봉농악 예능보유자)은 현재 임실필봉농악의 상쇠이다. 6살의 나이에 필봉 마을굿의 무동으로 입문, 부친인 양순용 상쇠로부터 필봉농악을 이어받았다. 그는 임실필봉농악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활동하며 노력하고 있다.
강현근 위원장은 “정치적·사회적 저명인사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쌓은 분들을 기리고 정신을 계승하는 활동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번 전시회가 단순히 뛰어난 예인이었던 故 양순용 상쇠를 추모하는 것을 넘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활동하는 많은 문화예술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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