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폐교된 선동초등학교와 학원농장 문화 DNA활용 아쉽다

이종근 문화교육부장

고창교육지원청이 폐교된 공음 선동초등학교에서 '폐교 활용을 위한 협의체 회의'를 개최됐다. 회의는 지역사회와 협력해 폐교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폐교를 지역 공동체의 거점 공간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고창 청보리밭과 연계한 농촌 체험 관광시설 운영 ▲스카우트 등 청소년활동 지원 공간 ▲노인을 위한 평생교육시설 등 지역 특성을 반영한 활용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선동초등학교가 지난 2월 28일자로 공음초등학교로 통·폐합됐다. 선동초의 폐교 결정은 전북교육청의 정책에 따라 이뤄졌다. 그 이유로는 소규모 학교의 적정 규모화를 통해 교육과정 운영의 정상화와 교육 인력 및 재정 운용의 효율성 제고가 제시됐다.



'용호등 정기 타고 자라는 우리/ 빛나는 이 전당을 갈고닦아서/ 유구한 번영의 씨앗 뿌렸네/ 빛나거라 선동학교 거룩한 낙원'



선동초등학교 교가의 작사는 박봉규, 작곡은 조영곤 교사(현재 전주 거주)가 했다. 교표는 바탕 부채 모양은 부채울을 상징하고, 바탕 색깔은 청보리의 초록을 상징한다. 선동리(扇洞里)는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다, 풍수지리상 마을의 형태가 부채 모양과 같다고 해서 ‘부채울’ 또는 ‘선동(扇洞)’이라고 했다. 1950년대는 마을 앞에 큰 샘이 있어 ‘대정(大井)’이라고 불렸다. 1490년대에 안동김씨(安東金氏)가 터를 닦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와공면(瓦孔面)의 지역으로, 선동천이 남북 방향으로 중앙을 가로질러 간다.

선산·옥산·미월·남산·거성·외평장·선동·유촌·대정·해정·샛터 11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해정마을엔 제주양씨(濟州梁氏) 양채룡(梁采龍)의 효행을 기려 세운 효자각(孝子閣)이 있다. 해정마을은 바닷물이 마을까지 들어와 바다의 게가 기어올라오고 웅덩이나 못에 박혀 살고 있었다고 해서 해정(蟹井)으로 불렀다. 하지만 '게 해'자가 쓰기 불편하다고 해서 '바다 해' 자를 써서 해정(海井)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얼마전까지만 해도 해정마을 입구에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리는 우물이 있었다.

양채룡은 18세가 되던 해에 어머니가 병석에 눕게 되자 저수지의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는 등 전국을 떠돌면서 약을 구했던 양채용의 일화는 끔찍한 뉴스가 넘쳐나는 시대에 훈훈한 메시지를 남긴다. 정려각은 비석 1기와 함께 정려가 걸려 있다. 정면엔 '효자증동몽교관제주양채룡지려(孝子贈童蒙敎官濟州梁采龍之閭)'라 되어 있으며, 건립 연대는 고종 13년(1894)이다. 비엔 '효자증동몽교관양공사적비(孝子贈童蒙敎官濟州梁公事跡碑)'라 되어 있다. 그의 자는 인택(仁宅), 호는 경모재(敬慕齋)로, 명수(命洙)의 장자로 출생했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뜯어 피를 내 어머니의 수명을 연장했으며, 끝내 상을 당해서는 예도에 따라 법도있게 치렀는가 하면 홀로 계신 아버지가 7-8년 동안 병석에 눕자 대소변을 손수 받아내는 등 극진해 간병했다.

매년 4월 중순~5월 초순까지는 학원농장을 중심으로 청보리밭축제가 30만 평의 구릉진 보리밭에서 진행된다. 2003년에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된 청메골 선산마을에서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학(1922-2004)여사가 국무총리를 지낸 고창출신 남편 진의종(1921-1995)씨를 기념해 만든 종각이 있다. 종각 아래는 종학사라는 절이 있었고, 그 절의 부속시설이다. 하지만 종학사는 없어지고 종각만 남아있다. 종각 건립 후 10년 이상 매일 아침 6시에 종을 쳐 선동리 사람들이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 왜 고창청보리밭을 학원(鶴苑)농장이라고 하나. 학원농장은 국무총리를 지낸 바 있는 진의종씨가 부인 이학여사와 함께 10여 만평의 야산을 개발해 조성한 농장이다. 이 지역의 옛 이름인 황새골과 이학여사의 이름에서 따온 '학'자에 넓은 들을 뜻하는 한자 '원'자를 합쳐 넓은 '학의 뜰'이라는 뜻으로 '학원농장'이라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이학여사는 한국 자수의 대가다. 그녀는 함평이씨로, 흉배무늬·새·꽃 등을 손수 비단실을 꼬아 수놓았다. 전남 함평 출신으로 서울 배화여고를 졸업한 그녀는 각종 전시회나 강습회를 궁체 한글서예를 보급했다. 또 1984년 한국자수문화협의회 회장을 지낸 자수가로 '한수연구' '한수문화' 등의 저서로 한국 자수의 학문적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 11대 신사임당에 추대되기도 했다. 선동초등학교는 제76회 졸업식을 맞아 4,45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때는 학생수가 950명까지 늘어 20학급을 편성했으며, 병설유치원이 개원되고 교실을 증축하기도 했다. 하지만, 급격하게 학생수가 줄면서 2003년 폐교위기를 겪기도 했다. 한 차례 폐교 위기를 넘겼으나, 입학생이 없고 전체 학생수가 10명 이내로 감소하면서 결국 폐교의 수순을 밟게 됐다. 지역사회의 폐교는 단순히 닫힌 공간이 아니라,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열린 자원이 될 수 있다. 실현 가능한 활용 방안을 마련해 나가길 바란다. 폐교된 선동초등학교와 학원농장 문화 DNA활용이 안돼 아쉽기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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