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재발견]전주 완주 통합논의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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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와 완주군의 통합을 두고 뜨거운 설전이 오가는 것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행정구역 통합의 이면에 정치 사회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쉽지 않은 형편이다. 필자는 본래 전주와 떨어진 남원 사람이지만 전북도민으로서 몇 말씀 드려보고자 한다.

찬성과 반대 측이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우며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한다. 과연 어느 것이 합리적인가, 이 부분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현재 전주시와 완주군의 행정구역이 어느 때 완성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현재와 같은 근대적 행정구역은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졌다. 조선총독부는 1935년 10월 1일자로 대전, 광주, 전주에 부(府)를 실시하고 부군의 명칭과 관할구역을 개정하였다. 바로 그때 전주군을 개칭한 완주군과 광주 옆에 광산군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광산군은 1988년 광주시가 직할시로 승격함에 따라 편입되었고 광산구로 개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반면 완주군과 전주시는 여러 차례 통합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분리된 상태를 이어가는 형편이다.

혹자는 완주군과 전주시는 본래부터 별개의 행정구역이었으며 그 근거로 고산군과 고산현을 제시하는데, 고산군의 행정구역은 전북 동북부인 고산, 화산, 경천, 운주, 동상, 비봉 6개 면에 불과하였다. 조선시대 편찬된 고산읍지는 동쪽으로 용담, 서쪽으로 전주와 경계를 이룬다고 되어 있다. 당시 고산현은 전주와 동등한 규모가 아니었고 전주 부윤이 관할하기 어려운 동북부 원거리에 행정 편의상 고산현을 두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전주와 완주가 분리되어 있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본래부터 하나였나, 별개였나를 두고 다투는 것은 무의미하게 힘만 소진시킬 뿐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전주부를 실시함으로써 전주군을 완주군으로 개칭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때 주민의 여론을 들어 행정구역을 개편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다른 지역의 행정구역 변경을 보면 인접한 시군을 통합하여 지역발전을 꾀하는 경우가 많다. 전주와 함께 부로 승격되었던 대전, 광주는 1980년대에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행정구역을 통폐합하였다. 지금에 이르러 도청사가 있는 전북 제1의 도시 전주를 광주에 대전에 비견할 수 있을까. 인구, 경제 규모, 사회 인프라 등 모든 면에서 뒤떨어졌고 이는 곧 전북도민의 삶의 질과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주고 있다.

물론 광주와 대전이 직할시로 승격할 때 광산군과 대덕군민의 의견을 들어 통폐합을 단행하였던 것은 아니다. 그때는 5공 정권이 끝나고 6공화국이 들어섰던 초기였으며 사회 민주화의 정도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었다. 위에서 통폐합한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했지, 머리 띠 두르고 찬반 시위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라북도는 중앙정치권에서 장기판의 졸(卒) 정도로 본다. 전라도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광주 전남을 먼저 챙기는 탓에 전북 몫은 변변치 않기 일쑤다. 한때 전국 5대 도시에 들었던 전주는 점점 뒤처지고 전라북도 또한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전주와 전북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전북이 발전하려면 전주가 발전해야 하고 전주가 발전하면 전북에 활기가 돌게 될 것이다. 우리 고장에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자녀들을 보라. 그들을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타성에 젖은 사고방식으로는 안 된다. 고향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뭔가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주시와 완주군의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는 것은 지역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지역주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던 전주부와 완주군 분리를 되돌리는 것 또한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서둘러 통합추진위원회를 설치하고 한쪽이 손해 보는 일 없도록 세심하게 살펴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반대할 사람이 적어질 것으로 본다. 전북의 발전을 위해 멀리 보고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말자./박이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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