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남원 삼웅(三雄) 양대박 의병장

충장공(忠壯公) 청계(靑溪) 양대박(梁大樸·1543~1592) 의병장의 나라사랑 정신이 남원 저존재에 가을 바람을 타고 사뿐이 내려 앉습니다.

이른 아침 강물이 쉬어가는 옥정호 붕어섬 국사봉 전망대에 오릅니다.

일망무제(一望無際). 끝없이 멀고 먼 운무가 산 골골마다 내려앉습니다. 부지런히 산을 오른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선물입니다.

임실군 강진면에 옥정리(玉井里)가 있는데, 이 마을은 '옥처럼 맑고 찬 샘'의 뜻을 지녔습니다.

그 옥정호의 중앙엔 붕어섬이 있습니다.

최근들어 이 섬을 오갈 수 있는 출렁다리가 생겼습니다. 옥정호에 강물이 쉬다 가듯, 붕어가 쉬어가듯 붕어섬은 얼마 전, 좋은 휴식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붕어섬 인근, 국사봉 주차장 옆에 충장공 양대박장군 운암승전비가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부탁하노니, 오늘부턴 붕어섬을 구경하고 나서 그냥 가지 말고 양대박장군 승전기념비에 청주 한 잔 올려놓고 가기를 바랍니다.

‘운암대첩비’로도 불리는 승전비는 임진왜란 때 운암면 벌정에서 왜군을 물리친 양대박장군 등 의병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6년 최종춘 전 임실군의장 등이 건립한 것입니다.

섬진강의 상류인 이곳에 1만여명의 왜군들은 선박을 이용, 전주에 입성키 위해 구례와 남원을 거쳐 이곳에 주둔했습니다.

당시 사재를 털어 가족과 친척들을 이끌고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양장군은 의병 1,000명으로 이들에 항전, 첫승을 거둔 것입니다.

양장군의 승전비는 당시 운암면 벌정마을에 세워졌으나 일제 강점기에 철거됐고 이후 전적지마저 옥정호 축조로 인해 수몰됐습니다.

남원의 삼웅(三雄) 중 한 분인 양대박 의병장이 임진왜란 때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이끈 운암전투는 남원의 의병이 얻은 값진 승리입니다.

‘운암대첩’은 1592년 6월 25일 운암에서 1,000여 명의 의병이 만여 명의 왜군을 공격해 천여 명을 참획하고 대승을 거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로 인해 양대박 의병장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공을 세운 황진, 조경남과 더불어 남원의 삼웅(三雄)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양대사마실기'를 바탕으로 임진왜란 전쟁 초기에 양대박 의병장이 왜적의 전라도 침공군을 격파한 것으로 인정합니다.

운암대첩은 호남 의병이 최초로 거둔 대첩이며,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전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양대박 의병장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역의 역사를 알리고 교육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치대첩, 웅치대첩, 김제군수 정담 등 각종 전투와 이때 산화한 의병들의 이름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임진전쟁에서 전북 의병은 분연히 일어서 일본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운암대첩. 바로 그 전투를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의병장 양대박이었습니다.

차인 창의 선어 영상 고경명, 용단 우어 충무공 이순신[此人 倡義 先於 贈 領相 高敬命 勇 斷優於 忠武公 李舜臣]’

훗날 정조 임금은 양대박 의병장은 ‘추증된 영상 고경명보다 먼저 창의하고, 용단은 충무공 이순신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했습니다.

칠전도에서 승리한 왜는 남원을 거쳐 충청과 전라를 유린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임진전쟁 기간 동안 조선이 승리했던 전투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는 이순신장군이 1593년 7월,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한 말로, "만약 호남이 없다면 곧 국가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충무공이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당시 전략적인 관점에서 호남을 지키지 못하면 일본군을 막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였습니다.

호남에서 최초의 승리를 안겨준 양대박 의병장이 다시 부각되고 알려졌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운암대첩’ 이후 왜군은 7월 8일 웅치전투와 9일 이치전투 등을 벌이고 전주를 공격하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양대박 의병장의 운암전투로 인해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운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이 살고 있어' 임실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백절불굴’의 정신과 ‘단합된 힘’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양대박 의병장의 위업을 기리는 오늘, 나라와 후손들을 위한 우리의 결의를 새롭게 다짐하고자 합니다.

닿을 수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은 평생 잊히지 않습니다. 님을 향한 애절함은 29일 남원에서 영정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과거가 햇볕에 빛추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고, 달빛에 젖으면 신화가 됩니다.

바로 29일이 양대박 의병장이 메마른 이 땅에 단비를 내려주고 무지개 타고 사뿐히 내려와 주인공이 되는 그런 날입니다.

충장공(忠壯公)께 두손 모아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바칩니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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