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삼혁당 김영원 선생 순국 106주기 추모식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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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삼혁당(三革堂) 김영원(1853~1919) 선생의 순국 106주기를 맞아 26일 오전 10시 30분 임실군 운암면 삼요정에서 추모식이 봉행된다.

이날 행사는 추도사, 추모제, 김영원선생 활동 자료집 관람 등으로 이어진다.

선생은 임실지역에서 동학혁명과 3·1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옥중 순국했다. 해월신사의 설법을 듣고 동학에 귀의한 이래, 한평생 민족과 천도교에 헌신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접주로 참여했으며, 1904년 갑진개화운동을 통해 반외세·반봉건의 기치를 높였다.

1919년 3.1혁명 때는 임실 지역을 중심으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옥고를 치르며 같은 해 8월 26일 옥중 순국했다.

'삼요정’은 삼혁당 김영원 선생이 올바른 민족정신을 배양하고 후학양성에 매진하고자 1883년 임실군 운암면에 건립했다.

이후 1904년 전주에 창동학교, 1906년 임실 청웅에 삼화학교의 건립으로 이어지는 근대식 개화교육의 선봉이 됐다. 

창동학교는 전주 객사와 북문 사이에 있었던 사실이 최근들어 이종근 한국문화 스토리 작가에 의해 밝혀졌다. 창동학교 바로 옆에 삼남학당이 자리했다.

이후 선생은 삼요정의 문하생이었던 박준승, 양한묵 등 두 제자를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시키고 그 자신은 전북 3·1독립운동을 주도하는 한편 임실지역 책임을 맡아 동지들과 함께 삼요정에 모여 비밀 연락 및 회합, 밀의 등 3·1독립만세운동을 계획했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는 도중 왜경에 체포되어 1년형을 선고받았으며, 뒤이어 체포된 동지들이 왜경의 혹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주모자가 김영원이라 자백하여 김영원 선생은 일제의 혹독한 고문으로 순국했다.

호 ‘삼혁당(三革堂)’은 동학농민혁명, 갑진개혁운동, 3.1독립만세운동이라는 세 차례의 혁명적 실천을 뜻한다. 이는 민족의 자주독립과 새로운 세상을 향한 의지를 상징하는 말에 다름 아니다.

선생이 후학 양성을 위해 지은 '삼요정(三樂亭)'은 오늘날에도 임실 독립운동사의 상징적 공간으로 남아 있다.

삼요정은 임실지역 3·1독립운동의 발상지라는 이유로 1921년 강제 철거됐다.그러나 지난 2002년 10월 임실군에서는 선생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삼고자 현재의 위치에 복원했다.

정부는 선생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부에서는 2003년 12월 2012년 현 위치에 복원, 2003년부터 현충 시설로 관리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이곳에 보관된 ‘독립유공자 삼혁당 김영원 일괄 자료’를 도 유형문화재로 지정한 바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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