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살림’의 사상=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

[다시 쓰는 동학·동학농민혁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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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수운 최제우 선생 초상화 및 경주 용담에 있는 묘소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구축한 단단한 상호참조체계를 바탕으로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관해서도 이런저런 인식의 ‘전회’(turn)라는 형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지금 이곳의 경험이 그들의 셈법에 들어있지 않고 따라서 그 경험이 빚어낸 사상적 성과 역시 반영되지 않는다는 느낌은 갈수록 커져 왔다. 서구사상에서 점점 빈번해지는 여러 전회들이 결국 뚜렷한 한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뒤집기 또는 공중제비에 불과하다는 인상도 지우기 어렵다.”( 『한국사상선』 간행사, 창비, 2024)



유럽의 르네상스 이후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 규모로 전개되었던 서양 열강의 제3세계 지배 및 문화 파괴와 말살, 정치경제 및 군사적 지배를 토대로 한 서구적 사고방식의 일방적 강요, 신체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에 이어 편견으로 가득 찬 온갖 세뇌 등에 맞서 어떤 형태로든 계속 저항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문화적 특수성을 지키면서 그 특수성 안에 들어있는 세계일가주의(世界一家主義) 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주장해 온 사상가들이 어느 민족에게나 다 있었다. 아시아든, 라틴아메리카든, 아프리카든, 아랍이든 제3세계에는 그 어디에도 다 있었다. 그 가운데 동아시아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더 큰 전통적 지혜와 오랜 문화적 유산을 간직해오고 있었으며, 무명(無名)의 수많은 민중 사상가들이 자기 민족뿐만 아니라 인류와 생명계 전체를 구원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줄기차게 이야기를 해왔다.

무명의 민중 사상가들의 제시한 새 세계관들은 매우 소박하고 투박하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역사의 담지자이면서도 끊임없이 지배층에 의해 역사의 객체로 소외당해 온 민중이, 그런 민중들의 소망과 한을 민중 나름의 사상적인 형태로 스스로 보여 줄 때는 지극히 소박할 수밖에 없었고, 미신적인 형태로 될 수밖에 없었으며, 정리되지 않은 흐트러진 형태로 그러나 총체적 변혁, 총괄적 변화를 요구하는 개벽지향적(開闢指向的)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 19세기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서양 열강이 군함과 대포를 앞세워 한국과 중국, 일본 등의 동아시아를 향해 막 쳐들어오던 시기, 즉 아편전쟁과 태평천국 혁명 당시 영국과 프랑스 군대가 북경으로 쳐들어가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고, 남경 등을 함락시켜 청국(淸國)에 대해 불평등조약을 강요하던 바로 그 시기, 또한 인도의 민중이 서양 열강의 침탈에 맞서 세포이 반란을 일으켜 저항하던 바로 그 무렵, 다시 말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와 아랍 등지에서 서양 열강이 대살육을 자행하던 바로 그 시기에 세계적 보편성을 지닌 사상이 우리나라 조선에서도 우뚝 솟아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동학(東學)을 필두로 한 개벽(開闢) 사상이라는 거대한 산맥이었다.

문제는 아직도 여전히 한국의 대다수 학자들이 수운의 동학이나 동학에서 비롯된 개벽 사상을 아주 수준 낮은 잡학(雜學) 정도로 간주하고 있다는 데 있다. 동학의 경우, 어떤 학자들은 그것을 ‘중인(中人) 유학’이라든지 ‘아전(衙前) 유학‘이라는 경멸적 표현을 동원해 가면서까지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운의 동학 사상은 유학에서 단지 문자만 빌려왔을 따름이지 그 기초사상은 유학과는 근본적으로 그 차원이 달랐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수운 사상의 핵심은 ’활인활명(活人活命)‘의 사상 즉 사람을 포함한 전 우주의 모든 생명을 살리자는 생명 사상이라는 데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다. (『생명의 눈으로 보는 동학』, 모시는 사람들, 2014 참조)

잘 알려져 있듯이, 19세기 말 조선 민중들이 겪고 있던 질병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차원 등의 온갖 질환이 이중삼중으로 겹쳐진 것으로서 그 증세가 참으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서양 열강의 동아시아침략에서 야기된 불안과 두려움, 삼정문란(三政紊亂)으로 인한 지방관들의 가혹한 수탈, 주기적으로 유행하여 적게는 수만 명에서 많게는 수십만 명까지 죽게 했던 괴질(怪疾; 콜레라 등), 그리고 신분제적인 억압 속에서 조선 민중들은 찌들대로 찌들고 분해될 대로 분해되고, 좁쌀처럼 작아지고 작아짐으로써 도생주의(圖生主義), 즉 저 혼자 살겠다고 발버둥 칠 수밖에 없던 그런 현실 속에 놓여 있었다. 바로 이런 비참한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한 수운이 새롭게 제시한 사상이 바로 동학이라는 ‘활인활명’의 사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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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수운의 동학사상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개인의 정신과 사회적 정신, 개인과 사회집단의 생존, 우주 삼라만상을 하나의 통일적이며 유기적인 생명체로 보는 관점이다. 인류가 이룩한 문명과 우주와 사회와 그 사회적 생존을 철저히 생물학적인 틀 안에서 생동하는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기(氣)의 운동으로 보고, 움직이는 총체적 연관 속에서 그 질곡과 병을 보며, 그 치유의 길을 창조적인 생명 순환의 회복에서 찾았다.

수운은 일찍이 ‘악질만세 민무사시지안’(惡疾滿世 民無四時之安)(『동경대전』 「포덕문」)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문명사적 위기를 표현한 바 있다. 수운은 서세동점, 삼정문란, 자연재해, 민란 등에 더하여, ‘군불군 신불신 부불부 자부자’(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로 표현되는 조선왕조 통치 이데올로기의 붕괴, ‘불순천리 불고천명’(不顧天理 不順天命)의 ‘각자위심’(各自爲心)의 타락한 시대상 등 당대의 총체적 위기를 ‘악질만세’라 표현했다. 이것은 21세기 오늘날의 표현을 빌린다면, 글로벌(Global) 차원의 위기, 내셔널(National) 차원의 위기, 로컬(Local) 차원의 위기를 모두 포괄하는 복합다중(複合多重)의 위기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운이 ‘악질만세’라고 표현했던 19세기 중반 조선(朝鮮)이 맞이했던 위기는 단순히 조선왕조 지배체제의 위기라는 ‘내셔널’ 차원의 위기만을 의미했던 것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서세동점(西勢東漸) 즉 서양에서 유래한 근대문명의 동아시아침략이라는 문명사적 위기까지 포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수운 이 천명한 동학의 ‘다시 개벽’의 사상 안에는 서양 근대문명이 지닌 침략주의뿐만 아니라, 그 근대문명을 뒷받침하고 있던 서학(西學), 즉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닌 ‘죽임’(반생명적)의 요소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동학은 ‘악질만세’의 시대, 즉 ‘문명개화’(文明開化)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죽임’(반생명적)의 문화를 강요하며 침략해 들어오던 서양 근대문명에 맞서 ‘살림’의 문화를 전면화하기 위한 ‘살림의 사상, 살림의 철학’으로 정립되었다.

수운이 제시한 동학의 핵심 사상은 『동경대전』에 집약되어 있고, 『동경대전』의 핵심은 다시「논학문」(論學文, 일명 東學論)에 집약되어 있으며, 「논학문」의 핵심은 다시 ‘21자 주문’(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造化定)에 대한 해설에서 드러나고, ‘21자 주문’은 최종적으로 ‘시’(侍) 한 글자로 집약된다. ‘시’의 뜻에 대해 수운은 「논학문」에서 ‘내유신령 외유기화 일세지인 각지불이’(&;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라고 해설하고 있다. 풀이하면 “안으로 신령함이 있고 밖으로 기화함이 있음을 세상 모든 사람이 제각각 알아서 옮기지 아니한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 ‘시’(侍)란, 내 안의 영성을 확립하는 동시에, 그 확립된 영성으로 이웃과 세상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된다. 동학농민혁명 최고지도자 전봉준(全琫準, 1855~1895)은 이것을 ‘수심경천(守心敬天)과 보국안민(輔國安民)의 도학(道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전봉준공초」 ) 이른바 개인의 영성과 사회 혁명의 창조적 통일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동학에서 말하는 ‘시’(侍)를 실천하는 것으로, 이것은 다시 현대한국의 ‘한살림’에서 말하는 ‘모심과 살림’이 된다. 동학은 바로 모심과 살림의 사상이요 철학이다. 모든 생명을 ‘모시고 살리는’ 사상이요 철학이 바로 동학사상의 핵심이요 본질이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바로 이 모심과 살림의 사상으로 ‘악질만세’의 시대에 죽어가던 민초들의 생명&;생업&;생활을 살리고자 했던 것이다.

/박맹수(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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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대전』에 실려 있는 ‘시’(侍)에 대한 해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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