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이 종이를 100만번 뚫는다'

이혜진, 전주 기린미술관에서 네번째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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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바늘이 얼마나 강력한 도구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한의사들은 손가락보다도 가는 침으로 환자를 치료한다. 실 만한 굵기의 빳빳한 바늘의 사람을 이롭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급소에 잘못 꽂았다가는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 이뿐이 아니다. 실수로 손에 찔렸다가 파상풍에 이를 수도 있는 위험한 도구다. 이처럼 극단적인 성격을 가진 바늘이지만 실생활에서도 특이하지 않게 쓰인다. 구멍 난 양말을 아쉬움 없이 휴지통에 넣어버리는 요즘 같은 세상에 그 쓸모가 덜하기는 하다만, 그렇다고 없으면 아쉬운 것이라 대부분의 집안 한구석에 바늘과 실이 마련되어 있다.

바늘은 실로 여러 쓸모를 가지고 있다. 집의 어두컴컴한 구석 어딘가를 굴러다니는 바늘. 하지만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바늘. 그리고 우리네의 삶과 이상을 찬란하게 그려내기도 하는 바늘. 바늘로 자아낼 수 있는 최대의 황홀경을 선사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법운 이혜진이 13일부터 31일까지 전주 기린미술관에서 네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김홍도의 '활쏘기'를 비롯,신윤복의 ‘월야밀회’, 단오풍정중 ‘목욕하는 여인들’, ‘쌍검대무’, 김홍도의 ‘서당’, ‘무동’, ‘활쏘기’ 등과 부채로 만든 ‘어부바’, ‘박쥐무늬’, '옹기장수’, 그리고 '만다라화', '용면문' 등이 전시된다.

특히 기산 김준근(생몰년 미상)의 '효자 모양', '짚신삼기', 맷돌질' 등을 전시, 기산 연구자로 전통 문양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전통을 재현하고 지나온 삶을 반추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에 다름 아니다. 자유로운 채색과 격식 없는 구도는 상상의 세계를 한 폭에 담아냈음을 엿보게 한다.

작가는 한지손자수작가로, 한지와 자수를 접목한 새로운 예술 영역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작가의 작품은 강렬한 색채가 돋보이는 모란 화조도, 여름의 싱그러운 연꽃을 주제로 한 연화도, 조선시대 서민들의 일상생활이 엿보이는 풍속도, 민화 장르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호랑이 등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또, 호작도, 피리부는 소녀, 원앙, 연화도, 용, 학, 복숭아, 약리도, 서당 등 다양한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닭, 활쏘기, 호작도, 서당, 삼룡, 부엉이, 호랑이, 문자도 '효(孝)', 문자도 '제(弟)' 등 상상의 세계를 함축시켜 놓은 듯 자유로운 채색과 격식 없는 구도로 표현의 다양성을 갖춘 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부귀영화, 가정의 번영 등 시민들의 행복을 기원하면서 특유의 화려한 색채와 웅장함을 느끼고 친숙해질 수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때론 계절을 담아내기도 한다. 염천의 더위를 몰아내기 위해 부채에 매화, 대나무, 난 등을 수놓기도 한다. 상당한 공력과 특유의 세밀한 묘사력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어 완성도 높은 수작이란 평을 받기도 한다.

전통과 염원을 한지 위에 수를 놓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전통 한지 위에 자수를 입힌 섬세한 표현이 돋보이며, 생명의 순환과 희망, 행복 등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수를 배워 보니 참 잘 맞았어요. 즐겁게 지치지 않고 여태 그릴 수 있었던 비결 같아요. 오랫동안 작업을 했으니 중간 정리를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전시를 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제 마음대로 골랐어요. ‘보면 행복해지는 그림’이라는 칭찬을 받았어요”

문자도는 상상력과 조형미가 기발하다. 소박한 듯 화려하고, 전통을 따르면서도 모던한 표현과 색채가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작가의 작품을 보노라면, 어떤 커다란 목표도 없고 과장된 꾸밈도 없고 대놓고 자랑하는 뽐냄도 없어 보인다.

무언가를 목표로 삼거나 어떤 존재가 되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즐기기 위해 만들고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수에서 위로받고, 즐겁고 기쁠 때는 수로 표출한다. 그의 작품은 부드럽고 따뜻하고 고운 것을 좋아하는 자신의 성품을 닮아 소박하다.

작가가 자수 수판 앞에 앉는 시간은 모든 일과가 끝나는 밤 9~10시 사이. 나중엔 체형이 구부정하게 바뀌었다는 말을 들었을 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바늘이 천을 100만 번 뚫어야 하는 자수의 단순 반복이 주는 매력에 빠져 새벽 서너 시까지 작업하기 일쑤라고 했다.

“내 자수 작업은 명인이나 장인 대접을 받는 사람들의 발끝도 못 따라간다”면서도 “기존의 정해진 틀에 얽매이기는 싫다”고 했다.

작가는 2000년 초반 김완주 전주시장 재임시 한옥마을을 방문, 운동중에 ‘한지원’ 방문하는 계기로 한지에 매료, 이를 구입했다. 거주지 우아동에 봉제공장이 다수 있었던 바, 다양한 색상의 실을 얻어 자수가 탄생했다.

작가는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2013년 ‘한지원’에서 전시를 시작했다. 비록 마당 전시였지만 반응이 좋아 작가는 용기를 얻고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종이에 수를 놓는 작업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고 예민한 작업이라 어려움이 많았지만 할수록 매력있고 보람이 있다고 했다.

이어 2016년 풍남문 광장거리전을 하면서 외국인들의 관심을 집중받게 됐고, 용기를 얻어 민화 접목, 풍속화의 영역에도 도전하게 됐다.

지난해 10월 17일부터 22일까지 전주 기린미술관에서 세번째 개인전을, 5월 3일부터 13일까지 전주 서학동예술마을 선재미술관에서 두번째 개인전 '한지에 수를 놓았어요'를 각각 가졌다.

앞서 2022년 9월, 진북생활문화센터 전시공간 소소에서 작가의 첫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작가는 "우리 것은 자기 재주대로, 그저 멋대로, 바느질이 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만든 것"이라며 "형상을 충실히 재현함은 물론 동시에 선명하고 화려한 색감이 두드러지는 엄청난 공력이 들어가게 된다"고 했다.

이어 "행복과 부귀영화, 가정의 번영 등 의미를 전하고 전통 풍속 등을 표현, 수가 시민들에게 새롭게 인식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전북한지공예대전, 한국미술제전, 대한만국전통미술대전, 대한민국 예술인대전, 충무공승모서화대전, 대한민국서법예술대전, 대한민국부채예술대전, 국제한얼문화예술대전 등에 대상과 특선 등을 수상한 바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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