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재발견]국제도시 군산, 과거를 품고 미래를 설계하자

기사 대표 이미지

군산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국제적인 정체성을 지닌 도시 중 하나다. 개항 이후 항만과 철도, 산업시설이 집중되면서 도시 곳곳에 근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복합적인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군산이 어떤 미래를 지향할지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중국 화교들이 군산으로 이주하며 국제성이 본격화됐다. 이들은 군산항을 중심으로 상업에 종사하고 군산중국학교를 설립해 공동체 기반을 다졌다. 이는 군산이 국제도시로 출발한 상징적 장면이자 다문화적 뿌리를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이 국제성은 일제 식민지 전략 속에서 곡물 수탈항으로 개발됐고 철도와 항만을 통해 조선의 자원과 노동력이 일본으로 실려 나갔다. 도시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거주 구역으로 분할되었고 그 흔적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1930년대 군산에는 조선 최대의 선물거래소 ’미두장(米豆場)’이 운영되었다. 이곳에선 쌀을 중심으로 한 곡물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졌고 조선 농민의 쌀은 일본 자본의 투기 대상이 되었다. 미두장은 식민지 경제의 본질을 드러내는 상징적 공간이었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주요 배경이기도 한 이곳은 지금은 민간 소유지로 잡초만 무성한 모습으로 방치돼 있으며 ‘매매’라는 현수막보다 더 작은 표지판 하나만이 그 흔적을 알리고 있다.



구 군산세관, 동국사, 일본식 가옥 등 식민지 유산은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레트로 감성’으로만 소비되며 역사적 맥락이 지워지는 경우도 많다. 항일 정신을 강조하면서도 일제의 흔적을 낭만화하는 현실은 성찰 없는 소비로 남을 수 있다.



군산의 또 다른 국제성은 한국전쟁 이후 주둔한 미 공군기지에서 비롯되었다. 냉전의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 군산은 강대국의 이해가 교차하는 경계공간이 되었지만 기지는 지금도 높은 담장 안에 갇혀 지역과 단절된 채 존재한다.



이제는 이 단절을 넘어야 한다. 군산이 품고 있는 미 공군기지를 평화와 시민외교의 플랫폼으로 전환해야 한다. 문화예술 축제, 청소년 교류, 언어교육센터 등을 통해 지역과 기지를 연결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성과 국제성을 예술로 재해석하여 더욱 대담한 기획이 필요하다. 광활한 대지를 활용한 새만금설치미술제, 국제 재즈페스티벌, 원도심 거리음악축제 등도 군산의 과거와 미래를 예술로 잇는 세계적 문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군산이 세계와 연결되는 방식의 실천이다.



군산의 미래를 논할 때 고군산군도의 가치를 간과할 수 없다. 고군산군도는 10개의 유인도와 47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섬의 군락으로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 관리도 등 수려한 해변과 어촌 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2016년 도로와 교량의 개통으로 접근성이 확보되었지만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와 지역 문화의 상실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행정당국은 이곳을 타 지역 해안관광지의 천편일률적이고 상업적인 환경이 아닌 고군산군도만의 독특하고 친환경적인 환경으로 조성하기 위해 주민들과의 더욱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방향성을 공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주민들이 생태 관광, 문화 체험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여 지역의 특색을 살릴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고군산군도는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명품 해양관광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2036년 전주하계올림픽 유치는 군산에도 기회다. 전주가 전통문화를 대표한다면 군산은 천혜의 환경과 더불어 식민과 저항, 이주와 교류, 냉전과 세계화를 품은 국제도시로서 주체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술과 시민이 함께 만든 콘텐츠는 올림픽 유치와 관계없이 지속가능한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군산은 상처의 기억과 세계적 경험이 겹겹이 쌓인 도시다. 이제 그 복합적인 역사를 정직하게 마주하고 예술과 시민의 힘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군산이 다시 국제도시로 거듭나는 길이다.



정대경

공연연출가이자 작곡가. 다양한 장르를 무대예술로 풀어내는 작업을 지속해왔으며 다수의 역사극을 연출하고 작곡했다.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삼일로창고극장 대표를 역임하였다. 군산에 거주하며 지역의 역사문화자산을 예술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정대경(공연연출가)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