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동학·동학농민혁명사]동학 창도 200주년,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빛낸 문학과 예술, 그리고 시민사회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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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이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을 무렵, 이 땅 대한민국에서는 가장 찬란한 빛과 가장 깊은 어둠이 교차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찬란한 빛이었다면, ‘12.3 내란사태’는 깊고 깊은 어둠 그 자체였다. 모든 국민에게 환한 빛으로 다가온 한강 작가는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수상 연설「빛과 실」에서 소설을 쓰는 동안 자신에게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는데,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올해로 131년 전에 일어난 갑오(甲午) 동학농민혁명은 후비보병(後備步兵) 제19대대를 핵심으로 한 일본군에 의해 처절하게 진압당하였다. 일본군은 영국제 스나이너(Snider) 소총을 사용하여 동학농민군을 닥치는 대로 총살(銃殺)했을 뿐만 아니라 소살(燒殺; 불태워 죽임), 장살(杖殺; 몽둥이로 때려죽임), 돌살(突殺; 총검으로 찔러 죽임)과 같은 잔인무도한 방법으로 학살했다.(후비보병 제19대대 소속 쿠스노키 비요키치 상등병의『메이지이십칠년 일청교전 종군일지』) 일본군에게 학살당한 동학농민군은 최소 3만에서 5만 명을 헤아리며(조경달,『이단의 민중반란』. 이와나미서점, 1998), 농민군 전체 희생자는 30만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오지영의『동학사』및 박은식의『한국통사』)

한강 작가의 수상 연설 내용을 접하는 순간 필자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희생당한 30만여 명에 이르는 농민군의 죽음이 떠올랐다. 과연 갑오년에 ‘죽은 자’ 동학농민군은 ‘산 자’인 우리를 구원하였던가? 그렇다. 작가 한강이 ‘1980년 5월 광주’와 ‘1948년 4월 제주’에서 ‘죽은 자’를 섬세한 필치로 소설화함으로써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 못지않은 경사(慶事)가 2023년 5월 18일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날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는 동학농민군이 남긴 편지를 포함한 관련 기록물 185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승인했다. 이로써 전제왕조 시대에 ‘죽은 자’ 동학농민군이 국민국가 시대에 들어와 찬란하게 부활하기에 이르렀고, 동학농민혁명과 동학농민군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대한 국민 모두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이제 프랑스혁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사를 빛낸 위대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으며, ‘죽은 자’ 동학농민군은 ‘산 자’ 우리를 보우(保佑)하는 자랑스러운 조상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런데, 한강 작가가 ‘1980년 5월 광주’를 『소년이 온다』로 소설화한 것처럼 1894년 동학농민혁명도 일찍부터 시(詩)와 소설로 형상화한 선구자들이 있었다. ‘혁명으로서의 동학’을 읊은 서사시『금강』을 남긴 신동엽(申東曄, 1930~1969) 시인,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1824-1864) 선생의 일대기를 노래한 서사시『이 가문 날에 비구름』을 남긴 김지하(金芝河, 1941~2022) 시인, 실명(失明)의 위기 속에서도 아내에게 구술하게 하는 방법으로 동학농민혁명을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바탕하여 탁월하게 소설화한 박태원(朴泰遠, 1909-1986)의『갑오농민전쟁』3부작,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당시 ‘시민수습위원회’ 참여로 인해 구속되고, 연이어 재직하고 있던 전남대에서도 해직된 시절에 동학농민혁명 전적지 답사를 거듭하면서 대하소설『녹두장군』전 12권을 집필했던 송기숙(宋基淑, 1935-2021) 교수 등이 바로 그들이다. 여기에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작으로는 유일한 황석영(黃晳暎, 1943-현재)의『여울물 소리』도 포함된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의 해였던 2024년에도 동학사상 및 동학혁명을 소재로 삼은 두 편의 장편 소설이 나와 주목을 끌었다. 김민환의『등대』와 안삼환의『바이마르에서 무슨 일이』라는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등대』의 무대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성지의 하나인 소안도(所安島)이다. 1909년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도에서 6명의 동학(東學) 청년이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 침략 과정에서 세웠던 등대를 습격&;파괴했던 ‘좌지도 등대 습격 사건’을 소재로 삼은 소설이다. 육지에서 쫓겨온 동학 접장 출신 나성대로부터 동학을 받아들인 섬 청년 이준화가 등대 습격 사건의 핵심 인물이지만 소설의 전개는 섬 서당 훈장 서범규와 그의 아들 서진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고려대를 정년퇴직하고 전남 보길도로 내려가 살면서 소설 집필에 몰두하는 가운데 이웃 섬 소안도에 우연히 들렀다가 그곳이 항일운동의 성지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남해의 한 작은 섬에서 그토록 격렬하게 항일운동이 일어났을까 하는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소설을 쓰게 됐다는 것이 80대의 노(老) 작가 김민환 교수의 말이다.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이 좌절로 끝나버린 것이 아니고, 1900년대 이후의 항일운동 및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등대』는 강조하고 있다.

『바이마르에서 무슨 일이』는 동학의 후예 철학 교수 최준기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1958년생으로 대학을 정년 퇴임하자 독일로 여행을 떠난다. 1980년대 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본에 있는 연구중심의 공립종합대학 본((Bonn) 대학에 유학하여 5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던 바로 그 나라다. 소설은 주인공 최준기가 ‘유럽의 문화수도’ 독일의 바이마르가 꽃피운 고전주의 정신과 19세기 말 조선에서 태동한 동학사상을 상호 비교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주인공이 처음에는 칸트와 헤겔, 니체 등의 서양철학을 공부했다가 뒤늦게 수운 최제우와 해월 최시형의 동학으로 관심이 바뀐 데에는 자신의 집안이 조부 최내천 때부터 경북 영천에서 동학과 결부된 것이 배경이라고 소설은 밝히고 있다. 2024년 5월, 소설 출간을 기념하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독문학자라 수십 년간 독일인을 많이 만나오면서 한국에는 어떤 사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동학의 경전『동경대전』을 읽고 나서야 동학이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회고하고 있듯이, 이 소설은 작가 안삼환 교수 자신의 사상적 전회(思想的 轉回)를 소설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에 동갑내기 80대의 두 학자가 동학사상을 주제로 소설을 출간한 것은 완전히 우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 말해야 할 것이다, 왜냐면 이제 한민족 모두는 ”동학으로 돌아가 주인 된 민족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는“(김민환 교수 인터뷰) ‘K-사상의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소설 이외에 주목할만한 예술 분야의 움직임으로는 광주시립미술관의「광주비엔날레 30주년 기념특별전: 시천여민(侍天與民):동학에서 오월로」가 2024년 9월 6일부터 12월 1일까지 개최된 것을 들 수 있다.(아래 사진 참조)





2024년에는 동학사상 및 동학농민혁명, 그리고 근대한국 개벽사상에 대한 시민사회의 관심 역시 그 어느 해보다도 뜨거웠다. 우선 전국 각지에서 관련 공부모임이 잇따라 발족하였다. 전남 보성의 ‘불이학당’(당주 박화강)은 2023년 2월부터 시작한 월례 ‘동학 공부모임’을 2년째 계속하였고, 광주광역시 전남대 후문에 자리한 ‘북카페 별밭’(대표 최성혁)에서도 2024년 9월부터 월례 동학 공부모임을 시작하였으며, 2022년 2월부터 시작하여 2024년 12월 현재 참여 회원이 1백여 명에 이르는 ‘근대한국 개벽종교 답사모임’은 3년째 전국 각지에 소재한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포함하여 천도교, 증산교, 대종교, 정역, 원불교 등 동학의 개벽사상을 계승한 근대한국 개벽종교(開闢宗敎) 유적지 답사를 계속해 오고 있다. 올해(2025) 1월부터는 전남 화순에서도 ‘동학 공부모임’(준비위원장 김성인)이 발족하여 월 2회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끝으로,『한겨레신문』을 선두로 하여『강원도민일보』,『광주일보』,『전북일보』,『전북도민일보』등 지방지도 다투어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특별기획 기사를 연재함으로써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기렸다는 점도 기억해 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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