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리의 형성과 발전과정(지은이 신귀백, 기획 익산시문화도시지원센터, 펴낸 곳 모시는사람들)'은 익산의 전신이자, 철도중심 식민도시로 형성된 ‘이리(裡里)’의 탄생과 발전, 잊힘과 기억을 입체적으로 복원한 도시 인문 지리서이자 지역문화 비평서이다.
이 책은 한국 도시사에서 드물게 하나의 도시 형성사를 이토록 다층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분석한 보기 드문 저작이다. 동시에 식민지 유산의 지속성과 현대 도시공간의 재구성 사이의 인문학적 접점을 찾고자 하는 연구자들에게도 훌륭한 텍스트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도시를 잊지 않기 위한 몸짓이며, 지워진 이름을 다시 부르기 위한 문장들이다. 오늘도 ‘이리’라는 이름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도시를 되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선물처럼 도착할 것이다.
지은이는 '이리안내'(1915, 1927), '익산군사정', '조선주재 36년' 등 일본인 이민자들이 남긴 문헌과 사진, 지도, 통계자료를 교차 분석하고, 문학작품과 영화, 시민들의 구술을 아우르며 이리라는 도시의 실체와 정서를 동시에 추적한다.
식민지 시기 대지주와 사채업, 철도와 도시계획, 그리고 교육과 노동, 주먹과 폭력의 구조적 연결까지 폭넓게 포착하면서도, 이리역 플랫폼의 풍경과 영정통의 추억처럼 감각적 기억을 되살리는 서술이 돋보인다. 이 책은 도시를 둘러싼 식민 유산과 집단 기억, 그리고 지워진 이름을 다시 불러내는 감정의 정치학을 통해, 익산을 넘어 오늘날 한국 도시들이 안고 있는 역사적 과제와 지역 정체성의 본질을 깊이 사유하게 만든다.
지은이는 단순히 ‘사라진 지명’의 회복이나 향토사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를 구성한 제국의 힘과 기억, 구조와 감정의 층위를 교차적으로 들춰낸다. 이 책은 ‘이리’라는 이름에 묻힌 도시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것이 오늘날 지역 정체성과 도시공간의 복원을 어떻게 촉진할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지은이는 머리말에서부터 ‘이리’라는 도시가 잊힌 데에는 1977년의 대참사, 즉 이리역 화약열차 폭발사고나, 식민 도시로서의 출발이라는 불편한 역사, 주먹과 사채의 도시라는 부정적 이미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음을 밝힌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부정의 기억을 넘어서서, 이리가 한때 얼마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던, ‘몸뚱이만 성하면 먹고살 만한’ 땅이었는지를 고스란히 복원한다. 이리라는 도시가 단순히 사라진 이름이 아니라, 여전히 이 지역의 행정기관, 학교, 시민들의 말 속에 살아 있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출간은 도시 기억의 복권이라는 적극적 실천이기도 하다.
제1~5장은 ‘이리’의 식민 도시 형성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1904년 호남선 개통 이후 일본인 이민자들이 대규모로 유입, 도시를 기획하고 통제하는 과정이 '이리안내', '익산군사정' 등의 자료를 통해 분석된다. 철도와 물류 중심지로서의 전략적 가치, 대농장·대부업 중심의 자본 축적 구조, 그리고 종교 조직과 교육기관의 활용은 이리를 철저히 식민 통치와 기능적 도시계획의 산물로 만든다.
지은이는 이 과정에서 형성된 ‘유지(有志) 네트워크’가 도시 권력을 어떻게 독점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힌다. 제6~7장은 일본인 문헌이 의도적으로 지운 도시의 민중적 현실을 복원한다. 수출자유지역의 여성 노동, 교육기관의 차별, 만경강 수리조합 등은 이리의 뒷면이자 해방 이후까지 이어진 불평등 구조를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도시를 감정적 구조물로 이해하며, 주민의 구술과 생활사를 통해 도시의 속살을 되살린다. ‘감정의 도시’라는 시선은 도시사를 민중사, 생활사로 확장시키는 인문학적 전환이다.
제8장은 문학과 영화 속 이리를 통해 장소의 기억과 정서를 복원하는 장이다. 채만식, 윤흥길, 장률 감독의 작품에 나타나는 이리역과 영정통, 신광교회는 단지 배경이 아니라 기억의 장소다. 1977년 이리역 화약열차 폭발사고 이후 ‘이리’라는 이름이 멀어진 이유 역시 문학적 상상력 속에서 설명된다. 이 장은 이리를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의 층위로 풀어낸다.
무엇보다도 문학과 도시사의 결합은 이 책의 백미다. 채만식의 '소년은 자란다', 윤흥길의 '소라단 가는 길', 장률 감독의 영화 '이리'(2008) 등을 통해 이리라는 도시가 문학과 예술에서 어떻게 상징화되었는지를 분석한 8장은 그 자체로 도시문화비평이다. 이리역은 단순한 철도역이 아니라 이리 시민들의 감정이 모이고 흩어지던 광장이다. 영정통은 금은방과 시계점, 복싱과 영화의 거리로 기억된다. 저자는 그 장소들을 ‘기억의 장소’이자 ‘잊힌 서사의 무대’로 복권시킨다.
지은이는 나주 출생으로 부모님을 따라 이리에 이주하니 도시에는 책과 영화가 있었다. 이리에서 학창시절에 극장과 만경강가를 쏘다녔다. 이리역을 통해 나가 목포와 정읍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시와 영화를 접목한 '영화사용법'이란 평론집을 내고 내처 장편 다큐멘타리 영화 '미안해 전해줘'를 감독했다. 인문서 '전주편애'와 '이리역의 까마귀떼'를 펴냈다. 자료주의자로 만경강과 이리 관련 서사 형식 글쓰기를 위한 자료수집을 하다가 역사 자료가 부족해 ‘일제강점기 이리 관련 일본인 저작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익산근대문화연구소에서 여러 연구자와 함께하고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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