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전주 인후동 종광대2구역에서 후백제 도성벽이 발굴된 가운데 이를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후백제 도성벽 북벽이 확인됐기 때문다. ‘견훤왕궁길’은 전주고등학교와 전주동초등학교 사이에 동에서 서로 난 길 이름이다. 기점은 중노송동 774-12, 종점은 인후동2가 1529-1, 길이는 2,901m이다. 서낭당에서 서쪽으로 난 오르막길로 올라가면 전주동초등학교 정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솟은 산이 ‘종광대(鐘廣臺)’이다. '종광대'는 후백제시대에 이 곳에 종이 있었던 자리다. 후에 그 곳에 대를 지었는데, 그 대의 이름이 종광대이었다고 한다. 이 때의 종은 누가 왜 만들었을까. 장수에서 발견된 후백제 시대 동종은 약간 작지면 전형적인 범종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 누군가는 '종광대'를 '학동들을 갈쳐서 밝게 하는 곳이라 '동광대(童光臺)'라고 증언한다.
'종광대'의 남쪽 물왕말이 후백제 견훤의 왕궁터의 중심지였고, 바로 옆인 동초등학교 앞 부분도 남쪽을 바라보고 뒤쪽은 북쪽 바람을 막아주어 산성으로서 지리적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 지역은 일제시대 동정리라 불렸으며 조선시대엔 전주이씨들이 살았던 곳이다. '종광대' 아래 전주고등학교와 전주동초등학교 사이의 마을이 무랑물이다. '물왕말(水王村):전주고등학교 서쪽 담장 일대)'은 물왕멀, 무랑물, 무랑말, 물왕물, 수왕촌(村) 등으로 불린다. 우리는 흔히 '물왕말'을 입에서 나오는 대로 '물왕물', '물왕멀'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아닐까. '말'은 옛 제도의 마을을 말한다. 국어사전은 마을의 준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고유명사인 '물왕말'을 변형된 물왕물 혹은 물왕멀로 부르는 것은 좋은 이름을 두고 별명을 부르는 것과 같으니 이 기회를 빌어 바르게 불러주기를 바란다.
전에 마을 가운데 공동 우물이 있었는데, 물이 맑고 맛이 좋았다고 한다. 후백제시대에 이곳은 견훤의 왕궁터라고도 한다. 반태산이 전혀 개발되지 않고 있을 때 바가지샘(동네 공동 우물)이 네다섯 곳에 있었다. '물왕말' 마을 앞의 전주고가 들어서기 전에 이곳은 모두 논이었으며, 인봉리방죽의 물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전주 동부지역이 모두 기린봉 자락들로 이어져 있어서 변변히 농사를 지을만한 땅이 없던 데 비하면, '물왕말' 지역은 비교적 넓은 경작지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을의 규모나 위세가 크고 드세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예나 지금이나 유명한 곳으로 20여년 전만해도 좁은 고샅길이었는데 현재 전주 순환도로가 있다. '‘이곳 일대가 견훤왕성이었다면 아마도 이곳에서 솟는 우물에서 왕성의 필요한 물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아지고 또 후백제가 고려에 통합되어 왕성이 없어지고 우물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니 이 마을의 이름을 왕이 먹던 샘물이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물왕말(水王村)'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으로 생각한다는 생전에 유장우 선생이 말한 기억이 난다. 고도 지정을 위해 후백제 도성, 왕궁지 등 유산 보존이 매우 중요하지만 도성과 왕궁지로 추정되는 중노송동과 인후동에 재개발이 시행되며 유산 멸실 위기다. 반면 재개발조합 측은 관리계획처분인가까지 끝나 집을 철거한 마당에 사업이 중단되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며 기록보존에 따른 재개발사업의 정상적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의 현지보존 조치가 나오면 종광대 재개발 사업은 전면 중단된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