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발걸음]전라도에서 왜 인촌 김성수를 배척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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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전북은 인물을 잘 키워내지 못한다는 평을 듣는다. 이는 전북에 사는 사람들조차 인정하는 말이다. 전북 출신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조용하게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정치적 중량감 있는 인물이 드문 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에 전라감영이 있었던 전주, 전북의 자존심이 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게 무슨 시든 호박잎 같은 소리냐고 핀잔하는 것을 잠시 미루고 일단 들어보시길 바란다.



전주는 이씨 조선의 발상지고 전라도를 관할하는 전라감영이 있던 곳으로 예부터 자존심이 셌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와 대쪽 같았던 한승헌 감사원장이 전북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본다. 그리고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던 이철승,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은 한때 전북의 희망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면 한숨만 나온다. 어느 때부터인가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화냥년 시집 다니듯 움직이다 보니 전북 출신의 유력한 정치인이 눈에 띄지 않는다. 어쩌면 전북은 인물을 키우기보다 죽이는 데 더 열중해왔는지도 모른다.



인촌 김성수가 좋은 예다. 김성수는 고창 출신으로 민족교육자요, 민족자본가요, 독립운동가요, 오랜 기간 물밑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해온 인물이었다. 그가 중앙학교를 인수하여 민족교육에 힘쓸 때 숙직실에서 3.1운동 모의를 했던 것은 유명하다. 동경 유학생 송계백이 2.8독립선언서 초안을 가지고 국내로 들어와서 와세다대학 선배로 중앙학교 선생이던 현상윤을 찾아왔다. 이후 중앙학교 숙직실에서 김성수, 현상윤, 송진우 등이 독립운동의 거사를 모의했고 뒤에 최남선과 최린까지 불러 3.1운동의 싹을 틔웠던 것이다. 중앙학교의 김성수를 빼놓으면 3.1운동을 이야기하기 힘들다.

또 일제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민족자본이 있어야 함을 깨닫고 최초의 주식회사인 경성방직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민족언론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동아일보를 설립했고, 경영이 어려웠던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맡아 훗날 고려대학교의 초석을 닦았다.

일설에는 독립군이 군자금을 가지러 오면 김성수가 금고를 열어놓은 채 자리를 비웠고, 김좌진 장군에게 소 백 마리를 사고도 남을 돈을 지원했으며, 이승만과 상해 임시정부에도 자금을 댔다고 한다. 이런 일은 비밀리에 이뤄지고 흔적이 남지 않아 확인하기 어렵지만 해방 이후 김구나 이승만이 매우 고마워했던 것을 보면 허황된 소리가 아닌 듯하다. 김성수는 대한민국 건국에도 힘을 보탰고 전쟁의 어려운 시기에는 부통령을 맡기도 하였다. 이런 이유로 건국훈장을 받았다. 한 마디로 김성수는 전북뿐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지식인, 기업인, 교육자, 언론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 보여주는 귀감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지금 김성수는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친일파로 불린다. 일제 말 엄혹했던 시기 일제의 강요에 의해, 또는 기업과 학교를 보호하고자 어쩔 수 없이 썼던 감투와 몇 가지 협조 때문이다. 작은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 안위만을 살피는 것으로 족하지만, 큰일을 하는 사람은 회사에 딸린 식구, 학교 교직원과 학생, 언론사 기자와 독자 등 생각할 것이 참으로 많다. 김성수를 친일로 모는 사람들은 그저 그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필자는 회사, 학교, 언론사가 망하든 말든 아무 신경 쓰지 말고 시골에 콱 처박혀서 일제에 협조하지 않는 것이 친일파를 면하는 길인지 묻고 싶다.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일제에 작은 협조를 해주더라도 계속 회사를 운영해야 할 게 아닌가. 회사 없이 어떻게 독립자금을 지원할 것이며, 민족 언론사를 유지할 것이며, 민족교육을 지속할 수 있단 말인가. 떡장수를 하자면 손에 고물이 묻고 바닥에 떨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일제는 김성수를 요시찰인물, 불령선인으로 분류하고 감시했다.

김성수는 보통 사람이 하기 힘든 항일 독립운동을 했고, 누가 뭐래도 자랑스러운 전북인이다. 이제 우리가 나서서 취소된 건국훈장을 다시 받도록 하자. 그래야 전북에서 더는 인물이 죽어 나가지 않게 될 것이다./박이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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