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창]전주 기자촌 구역 주택재개발용지 내 후백제 추정 왕궁지 발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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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전주는 서기 900년 견훤 대왕이 후백제 왕도로 정한 이후 1,124년 되었다. 그래서 천년 고도 전주라 한다. 견훤 대왕은 신라 후기 혼란한 사회 속에서 백성을 위한 나라, 기존과 다른 혁신적인 정치를 펼치겠다는 의지를 펼쳐 전주성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전주에 왕도를 정하였다.



그간 후백제 왕궁의 위치에 관하여 1990년대 초 전주 동고산성 발굴 이후 여러 학설이 있었다. 최근까지 후백제 왕궁지로 추정했던 곳은 종광대 남쪽 물왕멀 일대, 인봉리(기자촌)와 문화촌 일대, 전라감영지 일대, 천주교전주교구청과 오목대 일대, 중노송동 인보성체수도회 일원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중 물왕멀 일대는 한옥마을 서해그랑블 아파트 건축을 위한 2015년 4월 시굴 조사에서 특별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천주교교구청 일원과 인보성체수도회 일원은 현재의 지형이나 1918년 지형도, 1956년 항공사진을 살펴보아도 궁성이 자리할 정도의 공간으로 부족하다. 기자촌 재개발 구역에 포함된 인보성체수도회 북쪽 지역에서는 후백제 시대의 유구나 유물이 확인되지 않았다.



천주교교구청과 오목대 일원으로 보는 견해는 신라 후기부터 후백제를 거쳐 고려 시대까지 유구가 중첩되고 있다. 그런데 출토되는 유물이나 유구의 성격, 주변 공간의 협소함 등을 미루어 볼 때 왕궁지로 추정하기엔 더 많은 자료가 확보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전라감영지 일대로 보는 주장을 보면 감영지 하층에서 신라 후기, 후백제, 고려 시대까지 유물이 출토되는 점을 들고 있다. 전라감영 일대는 신라 후기 전주 부성이 자리하였고 백성들이 사는 곳이다. 신라 후기 혼란에 힘든 백성을 위하겠다고 기치를 내건 견훤 대왕이 이미 거주하던 백성을 이주시키며 왕궁을 세운다는 것은 후백제 국가 성립의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최근 발굴조사 된 전주 기자촌 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용지 내 유적 시·발굴 조사 약식보고서가 국가유산청에 제출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자촌 구역이 왕궁지로 추정되며, 역사적 층위는 후백제 시기 단일 층으로 보고되었다. 유구는 후백제 건물지, 도로 유구, 추정 왕궁지 궁벽과 기둥구멍, 도성벽(후백제 도성 동쪽 성벽) 동벽 기초와 후백제 기와 등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도성 및 왕궁시설의 보고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기린봉에서 구여단 즉 종광대로 이어지는 후백제 도성 동성벽이 인봉로와 인봉북로 북동쪽 모서리 부근에서 기초부로 추정되는 곳이 확인되었다.



후백제 왕궁 추정지의 북성벽은 기자촌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용지 내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왕궁 북성벽 남쪽에서 크고 작은 기둥구멍이 여러 개 확인되었는데 성벽 주변에 둘린 목책이나 망루 등과 같은 시설로 추정한다.



건물지는 후백제 왕궁 추정지의 북성벽에서 남쪽으로 20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3동의 건물지 중 1호 건물지는 정면인 남쪽으로 고덕산을 바라보는 방향이며, 정면 4칸 &; 측면 1칸이 남아 있으며 기단의 초석과 적심이 확인되었다. 건물의 적심간 중심거리는 동-서 16m, 남-북 2.2m이다. 이 건물지는 전주 시내가 모두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있다. 출토된 기와는 동고산성, 전라감영지, 종광대 도성 벽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한 것이다.



도로로 추정되는 석축 시설은 남향한 경사면을 따라 북동-남서 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다가 하단부에서 마감되었다. 규모는 길이 40m, 너비 4m 내외이다. 도로 내부 채움에서 조경석, 토기, 기와 등이 포함되어 있다. 조경석은 기자촌 발굴 전 가정집에서도 확인되었다. 이러한 조경석은 익산 왕궁리유적의 후원에서 출토되었다. 왕궁리유적의 조경석은 왕궁면 시대산에서 산출되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기자촌 구역 추정 왕궁지는 일부 지형과 경관이 훼손되기는 했으나 1918년 지형도, 1956년 항공사진 등에 의하면 많은 변형과 훼손은 없다고 추정된다. 이번 발굴된 유적은 왕궁지로 추정되던 지역으로 현재까지 유일한 왕궁지 유적이다. 후백제 추정 왕궁지는 앞으로 후백제 역사를 밝히는 바탕이 될 것이다. 또한, 전주를 후백제 고도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유적이다. 앞으로 전주시가 후백제 왕궁 연구, 발굴, 보존, 활용, 도시계획 재수립 등 해야 할 일이 막중하다./노기환(온문화유산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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