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시대 임실군의 치소는 어디였을까. 고려 명종 2년(1172)에 설치되었다는 감무(監務)는 조선 태종 13년(1413)에 최초로 임실현감을 임명하였고, 당시 현청과 객사 건물이 현재 임실문화원, 임실고등학교 일원에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군현에 수령이 파견되면서 소위 속현(屬縣)이 사라졌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치소를 옮기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물력과 공감이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2020년에 발간한 '임실군지'를 비롯해서 많은 글에서 관촌면 방동리를 고려시대 임실군 치소로 추정하였다. 이것의 근거가 된 것은 첫째, '여지도서' 전라도 임실현읍지이다. “임실군[郡]의 옛 터가 오늘날 임실현의 서쪽 20리에 있는 구고촌(九皐村)에 있었는데, 고을의 호칭이 현(縣)으로 강등되어 용요산(龍繞山) 아래로 옮겨 세웠다.”라던가, 고적조에 “방동(防洞)은 관아의 북쪽 30리 하북삼면(下北三面)에 있다. 옛 일을 잘 아는 노인[古老]들의 말에 따르면 옛 읍의 터라고 하는데, 돌기둥[石柱]의 흔적이 뚜렷하다.”라는 기록하였다. 두 번째는 1904년에 간행된 '운수지'이다. 임실군의 치소(治所)로 ‘백련산(白蓮山) 아래 구고(九&;)면 평지촌’, ‘하북면 방동(芳洞)’과 ‘상동면 평지(平地)’, ‘하운면 중산리(中山里)’를 거론하는 등 치소 후보 지역이 늘었다. 그리고 부연하기를 ‘이들 마을과 들판의 이름이 모두 이에 부합한다’라고 쓴 것이다.
구고면의 평지촌이란 현재 임실군 청웅면 양지리를 말하는 것으로 옛 구고현(九&;縣)의 치소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순창군의 속현으로 역시 감무가 파견되었던 곳인데 태조 3년(1394) 임실군에 합쳐져 구고면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과정에서 청웅면이 된 곳이다. 상동면 평지는 현재 성수면 평지리를 말하는 것으로 구고현 평지와 이름이 같다. 하운면 중산리는 어찌하여 치소라고 여겼는지 밝히지 못하였다.
다만 '여지도서'와 '운수지'(1904)에 공통으로 나타난 것은 ‘방동리(芳洞里)’이다. 조선시대 임실현감이 파견된 태종 13년(1413)이후 치소가 옮겼다는 흔적은 찾을 수 없으니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군의 옛터란 고려시대 임실현 치소를 말하는 것이리라. 이러한 이유로 고려시대 임실현 치소로 관촌면 방수리 방동마을을 주목한 것이다. 이 마을에는 황장군과 장제무림 설화가 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긴 둑을 막아 나무숲을 조성하여 마을 앞쪽으로 약 700마지기의 농경지를 확보한 곳이다. 섬진강이 진안군 백운면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마령들을 지나 임실로 들어오는 곳이다. 문제는 이곳이 물살을 받는 곳인지라 자주 범람했던 것으로 보이며, 긴둑으로 물길을 잡았다. 당시로서는 대규모 토목공사였을 것이고 이를 잡는데 황장군이 신이(新異)한 힘이 있었다는 것이 황장군과 장제무림 설화이다.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한다. 이규경이 쓴 '청정관전서'에는 조선 초기에 마천목 장군이 도깨비들의 도움을 받아 제방을 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른바 도깨비방죽이다. 황장군이나 도깨비가 아니면 이런 토목공사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고려시대 치소로 방동리를 추정한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임실현의 치소가 오원천 바깥, 임실현의 북쪽에 치우쳐져 있는 것이나 섬진강의 물살이 자주 재해를 일으킬 수 있는 지역에 치소를 두었다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1675년에 편찬된 전북특별자치도 최고(最古)의 사찬읍지 '운수지'가 발견되면서 이러한 의문에 파문을 일으키는 단어를 찾았으니 그것이 또한 ‘방동리(芳洞里)’라는 지명이다. '운수지'(1675)에는 방동리가 둘이다. 하나는 북삼면에 있는 방동리(防洞里)로 현재의 관촌면 방수리 방동마을이고, 또 하나는 일도면(一道面)의 7개 속리(屬里)중 하나로 방동리를 기록하고 있다. 7개 속리란 성가리(城街里), 중동내리(中洞內里), 이도리(二道里), 빙고동리(氷庫洞里), 두곡리(斗谷里), 갈마동리(渴馬洞里), 방동리(防洞里) 등이다. 그 지명이 지금도 그대로 드러난 곳이 임실읍 성가리, 이도리, 상성ㆍ중성ㆍ하성, 두곡리, 갈마리 등이고, 빙고동리는 빙고(氷庫)가 있는 곳이 빙고동일 것인데, 빙고는 얼음을 관장하는 관청의 하나로 현의 남쪽 3리 빙고리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곳이고, 방동리는 1730년 '운수지' 이후 사라진 지명이다. 임실읍내 지명중 이런 읍지에 들어갈 것 같은 지명은 현재 임실군청이 있는 수정리 정도로 이해된다. 다만 ‘방동’이라는 지명이 현청이 있는 곳 주변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는 옛 임실현청 주변마을로 오늘날 하성마을이나 아골(압골) 정도이지 않을까. 조선시대 500년 현청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현실에서 고려시대 치소의 흔적을 찾는 것은 무리일지 모르겠지만 숙제로 남겨두는 것도 새로움을 추구하는 한 방법이려니 싶다.
/김철배(문학박사, 임실군청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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