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폐교의 소환

주말에 초등학교 모임이 있었다. 졸업한 지 51년이 지났지만, 다시 모인 친구들은 금새 그 시절 초등학생으로 돌아갔다.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다가 서로의 안위를 염려하는 등 우정을 넘어 가족애가 느껴질 정도로 돈독했다. 지금은 폐교가 된 고창 해리의 나성초등학교 제14회 졸업생들 이야기이다.

나성초등학교는 70년대 중반까지도 전기나 전화는 물론 어느 학교나 있는 교가도 없었다. 그렇게 궁벽한 학교였기에 지난 2000년 졸업생 2,148명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역사는 꽤 길다. 1939년 한글 해독학교인 2년제 광승간이학교로 출발해 동호초등학교 나성분교장을 거쳐 1957년 정식 학교 인가를 받았으니 회갑을 넘긴 역정이다.

당시 주민들은 자신의 못 배운 한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싫었다. 그래서 산기슭을 삽과 괭이로 파 터를 고르고, 나무를 베어다 교사(校舍)를 세웠다. 이렇게 학교가 세워지면 나라에서 교사(敎師)를 배치했다.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는 격의 개교 역사는 단지 나성초등학교만이 아닐 것이다.

이번 동창회는 술과 담소가 아닌, 하나의 문화 행사였다. 식전 공연으로 아코디언그룹 금풍이 문을 열었다. 아코디언과 하모니카, 오카리나의 선율이 만추의 밤을 가득 수 놓았다. 특히 동요 메들리는 추억 속으로 빠져 들기에 충분했다. 연주에 맞춰 목청껏 따라 불렀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졸업 후에 만들어진 교가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아코디언 연주자 김명숙 선생의 지도로 한 번도 부른 적이 없는, 지금은 사라진 학교의 교가를 배운 것이다. 폐교의 노래를 부르는 일은 그리 유쾌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초로의 학생들 표정은 진지했다. 이어진 문명의 이기에 대응할 ‘중년을 위한 스마트폰 활용법’ 강의 반응도 뜨거웠다.

둘쨋날은 문화답사로 채웠다. 세계유네스코문화유산 정읍 무성서원을 방문해 고운 최치원 배향의 서원 역사와 사액서원으로서의 위상에 대해 공부했다. 또 제사와 교육의 서원 기능과 조선시대 교육제도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가을 햇볕이 드는 강당에 앉으니 초등학교 1학년 때 책걸상이 없어 교실 바닥에 앉아 공부하던 순간으로 되돌아간 듯했다. 이어 방문한 김명관 고택에서 250년 연륜의 전통 가옥 분위기에 흠뻑 젖어 들기도 했다.

이번 동창회는 사라진 학교의 소환이었다. 새롭게 교가를 배우며 학생으로 되돌아갔다. 학교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폐교 졸업생들에게 학교는 추억 이상의 애틋함이 있다. 폐교가 돼 학적이 없는 졸업생들이 다시 세운 학교, 그 비단별 반짝이는 황토 운동장이 다시 그립다.

/김판용(시인·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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