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월 대보름에는 찰밥과 오곡(五穀)밥을 지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성씨(姓氏)가 각각 다른 세 집의 밥을 얻어먹어야 그해 운수가 좋다고 하여 마을 부녀자들은 밥 소쿠리를 들고 이집 저집에 다니면서 오곡밥을 얻어다 먹기도 하였다. 또 남자들은 아홉 그릇의 밥을 먹어야 한다고 하여 그것을 채우기 위해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며 오곡밥을 얻어먹기도 하였다. 이웃은 얻어먹으러 오는 사람에게 웃으며 밥을 내민다. 이런 풍속에는 이웃과 서로 의좋게 지내는 인정(人情)이 깃들어 있다. 그들은 인정을 주고받는 이웃 사촌이다. 한편, 여기에는 가난한 사람이 결핍을 이유로 인해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하는 지혜가 들어 있다. 아주 자연스럽게 이웃집에 다니며 밥을 얻어먹을 수 있게 하는 우리 조상님의 슬기가 들어 있다. 전래의 풍속 가운데 이처럼 이웃 간에 서로 돕는 슬기와 다사로운 인정이 깃들어 있다.
한편, 사대부들은 나름대로 설날이 닥치면 사대부집 부인들은 직접 사돈댁을 찾아가는 대신에 곱게 단장한 집안 하녀를 사돈집에 보내어 문안을 드린다. 이 하녀를 “문안비(問安婢)”라 한다.
마을 아이들은 마을 사람들은 설날이면 친척 어른과 마을 어른을 찾아가 세배(歲拜)를 올린다. 이때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세뱃돈을 받기도 한다. 한식이나 추석에는 조상님을 찾아 문안인사를 올린다. 곧, 성묘(省墓)를 한다.
우리나라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절기로 설, 한식, 단오, 추석, 유두, 백중, 칠석 등이 있다. 이런 명절이 되면 주인이 머슴에게 그 동안의 노고를 치하하여 절기 날은 하루 종일 머슴을 쉬게 하면서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옷을 선물하거나 용돈을 주기도 한다.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베푸는 자선(慈善)이요, 미풍(美風)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즈(Noblesse Oblige)의 실천이다.
이처럼 과거 우리나라가 비록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릴 때에도 가난한 사람, 낮은 사람, 가지지 못한 사람, 병약한 사람에 대해 특별히 배려하는 아름다운 인정 문화가 있었다. 서양의 논리(論理) 문화와는 다른 한국의 정리(情理)문화이다. 인간다운 정리(情理), 이것이 원래 우리의 것이요, 우리의 미풍양속이다. 정리 문화에서는 옹졸한 대가(代價)와 사익(私益)을 바라지 않는다. 오로지 베풀(布施) 뿐이다.
예의(禮儀)와 인정(人情)으로 문안인사를 드리고, 세배를 하고, 용돈을 주고받는 문화이다. 거기에 비리(非理)가 깃들 수 없다. 오직 순수함 그 뿐이다. 문안비의 문안, 머슴에 대한 주인의 경제적 정서적 배려, 노소간에 세뱃돈 주고받는 배려와 인정, 이것은 아름다운 우리의 미풍양속이다. 그런데 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다. 30년 전쯤에는 그 미풍양속이 촌지와 떡값이라는 미명 아래 아랫사람이 상관에게 바치는 뇌물로 둔갑을 하였다. 최근에 뇌물이 돈이나 명품 백이나 고급 양주로 바뀌었다. 그것이 이권 청탁의 도구가 되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권 청탁을 조건으로 하여 뇌물을 주는 사람도 처벌하지 아니하고 뇌물을 받은 사람도 처벌하지 아니하는 경우가 생겼다. 어떤 이는 처벌하지 아니하고 어떤 이는 처벌을 받는다. 법치(法治)가 아닌, 고무줄 잣대로 국민을 다스린다. 만인(萬人)은 법 앞에 평등하지 못하다. 최근 검찰은 고위 공무원이나 그들의 부인의 뇌물수수를 무죄(無罪)로 보고 있다. 예전 뇌물수수로 감옥에 들어간 사람은 자기만 억울하다고 느낀다.
예전의 미풍양속을 되살리는 길은 무엇보다도 먼저 검찰이 바르게 서야 하고, 법관이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 그리고 고위 정치지도자들이 정직해야 하고, 부정부패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 만일 대통령이 거짓말하여 위기를 모면하려 하면, 국민들도 거짓말하여 위기를 벗어나려고 한다. 대통령이 정직하면, 국민은 나라를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한다. 어린 아들의 돌반지도 털어내서 나라로 하여금 IMF 구제금융에서 벗어나게 한다.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고 고위 정치가들이 바르게 살면, 이웃 사랑이 실현된다. 이웃 사랑이 실현되면, 양속(良俗)이 되살아난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서 어찌 미풍(美風)이 되살려지기를 바라랴?
최근 일련의 사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법률 적용이 대통령이나 고위 공무원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일반 시민에게 심히 엄격하다. 이렇게 되면 시민들이 불평불만이 커진다. 그것이 곧바로 선거에 반영된다. 법을 불평등하게 적용하는 정권은 그래서 반드시 무너진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예로부터 선비나 서민들은 청백리(淸白吏)를 존경하고 우러러보았다. 고부에 살던 전봉준 장군이 왜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는가? 평등한 세상, 폭력이 없는 세상, 외세의 압력이 없는 세상, 탐관오리(貪官汚吏)가 없는 참 좋은 세상이 이 땅에 오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모든 국법(國法)이 시민에게 평등하고, 공무원은 온통 청백리가 아닌 자가 없다면, 다시 우리의 미풍양속이 되살아날 것이다./유종국(전 전북과학대 교수·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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