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기록이 만든 품격

2024년 10월 10일, 한강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 하루 전날은 한글날이었다. 이제 우리는 매년 10월이 오면, 9일과 10일을 세종대왕과 한강을 연이어 기리게 될 것이다. 우리글을 만든 사람과 그 글로 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를 동시에 기릴 수 있는 축제, 누군가가 기획한 것 같은 절묘한 타이밍이다.

우리는 한동안 유명 작가로부터 들려올 낭보를 기대한 적이 있다. 그 희망을 버릴 때쯤, 예상 밖 이름이 호명되어 그 기쁨은 수십 배로 더 컸다. 내가 노벨상을 받는 것도 아니면서 마치 내 일인양 기쁨 충만이다. 마치 내 자식이 1등 먹은 것처럼 내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1년에 책 한권 읽을까 말까한 사람들까지 서점으로 뛰어가게 만들었다. 헤르만헤세와 앙드레지드와 윈스턴 처칠과 헤밍웨이와 알베르 카뮈와 주제 사라마구가 받았던, 바로 그 상을 우리 작가도 받았다. 거봐라, 대한민국이 이런 나라다. 하루 아침에 나라의 품격, 나의 품위가 몇 십배가 올라간 느낌이다.

기쁨의 와중에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작품이라는 노벨상 선정 이유가 새삼 눈에 들어온다. 광주의 그 날을 그린 <소년이 온다>는 생생하게 전해지는 그날의 아픔 때문에 몇 차례는 더 덮고열기를 반복해야 책 읽기를 마칠 수 있다. 세상 무해하게 보이는 작가는 이를 묘사하기 위해 얼마나 깊은 고통의 터널을 거쳐왔을까. 광주를 이보다 적나라하게 전해주는 기록이 또 있을까. 작품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오월 광주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기록물 그 자체이다. 작가는 고통의 심연을 건너며 그날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것이다. 그 기록에서 보여주는 아픔을 세계가 공감한 것이며,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그 노력이 세계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문학적 평가에 더하여 기록을 남기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되어 노벨문학상이라는 품격을 안겨준 것이다.

기록은 품격을 만든다. 이 말은 익산에서도 통한다. 익산이 품격있는 세계유산도시가 된 것도 기록 덕분이다. 1917년에 사진 찍힌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모습에서 100년 후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러한 유적이 세계유산이 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기록 덕분이다. 1980년 본격 시작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유적의 가치가 고스란히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50년전 미륵사지 조사를 시작하면서 세계유산 등재를 꿈꾸지는 않았겠지. 다만 묵묵히 기록해 온 것이 품격도시 익산을 만들었다.

익산에서는 올해로 4년째 시민들의 옛 기록물을 수집해 왔다. 지금은 수집한 기록물을 전시할 기록관을 조성 중이다. 이 기록들은 또 미래의 언젠가 이 도시의 품격을 만들 것이다.



/문이화(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