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당에서 닭볶음탕이란 메뉴를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지금이야 익숙해져서 닭볶음탕이란 말이 그리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오랫동안 닭도리탕으로 말해온 언어습관을 쉽게 바꿀 수 없어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시골 할머니도 닭도리탕이라고 말하는 것을 왜 굳이 닭볶음탕이라고 말해야 된다는 것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도리’가 일본말로 새를 뜻하고 닭도 조류의 일종이니 닭도리탕에서 ‘도리’를 빼야 된다는 일종의 우리말 살리기 또는 반일 운동의 일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볶음이란 말이 들어가 ‘닭볶음탕’이란 신조어가 탄생하게 되었다. 국립국어원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과거 한글도 제대로 깨우치기 힘들었을 시골 할머니가 부엌에서 칼질하여 만든 닭요리에다 일본말을 섞어 닭도리탕으로 말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 자체가 억측이다. 닭도리탕은 본래부터 닭도리탕이었다.
1924년 위관 이용기가 지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닭을 볶는 요리인 계초(鷄炒)를 송도에서는 도리탕으로 부른다 하고, 1925년 전국의 민속놀이와 음식, 풍속 등을 기록한 해동죽지에 도리탕(桃李湯)은 평양 계확(鷄確)이 유명하다고 나와 있다. 확(確)은 국이 아니라 물을 적게 하고 조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평양 계확은 닭을 토막내서 여러 가지 채소를 넣고 조린 도리탕의 일종인 것이다. 평양 선비들은 복숭아 나무 아래서 이 요리를 즐겼다 하여 도리탕(桃李湯)이라 한다고 했다. 1982년 2월까지 신문에 연재된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에서도 닭도리탕이 나온다. 닭볶음탕이란 말을 억지로 쓰지 않던 시절이었다.
일본말 도리와 전혀 무관한 요리가 바로 닭도리탕인데 누군가 잘못 알고서 일본말이 들어간 닭도리탕 대신에 닭볶음탕으로 쓰자고 주장했을 것이다. 이것이 반일감정과 절묘하게 맞아들어가 우리의 전통음식 닭도리탕은 일본말이 뒤섞인 재수 없는 음식으로 치부되고 그 자리를 닭볶음탕이 차지하게 되었으니 젓가락을 들고도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한국인치고 반일 감정 없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말 속에 들어와 있는 일본말을 배척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되살리는 것은 중단 없이 계속되어야 할 일이지만, 비슷한 말이라고 하여 우리말을 일본말로 매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동안 닭도리탕은 메뉴판에서 밀려나 닭볶음탕으로 불리는 것을 얼마나 억울하게 생각했을까. 이렇게 억울한 일이 또 있다.
해방 이후 친일파를 색출하고 체포하는 반민특위는 전국에 조사부를 설치하였다. 반민특위 전북조사부는 신문과 관보 등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한 예비조사, 지역민의 투서를 통한 제보, 현지조사를 하였다. 당시 지역신문은 반민족행위자 처벌을 촉구하며 친일파의 구체적 범주를 제시하였고, 정당은 전북조사부후원회까지 결성하고 활동을 도와서 친일파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하였다. 그 결과 반민특위 전북조사부는 전국 도조사부 가운데 가장 많은 친일파를 체포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역대 도지사 가운데 임춘성이란 사람이 장수 군수로 재직할 때 일제가 작성한 공적조서에 이름이 오른 것이 드러났다 하여 친일파로 매도하고 도청에서 사진을 철거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상황을 제일 잘 알고 있었을 반민특위는 그 사람을 친일파로 지목하지 않았고 지역민들도 제보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일제에 부역했을지 모르나 적극적으로 친일한 사람이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 더구나 당사자의 항변과 당시 인물들의 증언을 확보하기 불가능한 상황에서 친일파로 낙인을 찍어버린다면 그것을 합리적인 일 처리라고 볼 수 있을까.
닭도리탕에다 친일의 색채를 가미해 놓으니 꺼림칙하여 저 닭은 친일한 닭인가 싶기도 했다. 나는 반일한다는 마음으로 닭볶음탕을 말했지만 입에 잘 붙지 않아서 억지춘향이 된 느낌이었다.
이제 우리나라의 국력이 신장되어 일본을 앞지르는 분야도 적지 않다.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정신을 과거에 붙들어 놓고 친일과 반일을 전세라도 낸 양 코에 걸었다 귀에 걸었다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박이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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