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보의 ‘없다’ 문 닫은 보건지소
22일 오전 찾은 정읍의 한 보건지소. 문에는 ‘처방 불가능 요일 : 화, 금’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공보의 순환 근무로 진료 가능한 요일이 제한됐고,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아예 모든 업무가 중단된다는 안내가 추가로 적혀 있다.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며 문 닫은 날이 더 많은 보건지소는 주민 발길도 끊겼다.
정부는 지방의 의료 서비스 강화를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살펴보면 전북지역은 공보의가 배치되어야 할 보건지소 중 절반 이상인 53.1%가 공보의 없이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미배치율 35.4%에서 급격히 상승한 수치다.
전국 여러 지방에서 발생하는 공공의료기관 운영 차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와 의료계 사이 갈등이 장기화하며 공공의료 시스템 붕괴는 가속화됐다. 특히 농어촌이나 도서 지역과 같은 취약지에서 그 영향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 돌파구 안 보이는 의정갈등 벌써 8개월째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핵심 갈등은 바로 의대 정원 확대와 인력 부족에 대한 입장 차이다.
지난 2월 정부는 돌연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를 발표했다. 지방과 소외 지역에 더 많은 의사를 배치하고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정원 확대를 내건 것이다. 여기에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크게 반발하며 갈등이 시작됐다. 전공의들은 수련병원을 떠났고 의대생 또한 집단휴학으로 대응했다. 이들은 과중한 업무와 불합리한 근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으며, 정원 확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벌써 8개월째 이어지는 의정 갈등은 서로의 입장 차만을 강조한 채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공공의료 중요성을 강조하며 필수 의료 분야를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현장의 의사들은 오히려 인센티브나 처우 개선 없이 인력 확충만 강조하는 것이 문제라고 반박한다.
특히 폭탄처럼 튀어나온 의대 정원 2,000명은 여러 문제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됐다. 전공의 수련체계 혁신,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등 각종 개혁 방안이나 지방의료 정상화 안건은 의대 정원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 앞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결과 지방의료는 더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 의료공공성, 갈등 속에 뒷전
앞서 언급한 공보의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지방의료원들 역시 심각한 경영난과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김남희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전북지역 의료원들은 인력 정원을 제대로 충족하지 못했다. 군산의료원은 2020년 간호사 22명이 부족했고, 지난해 12월 기준으로도 여전히 간호사 13명이 부족하다. 남원의료원은 의사가 5명, 간호사가 15명 부족한 상태로 지역 의료를 책임지고 있다.
경영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지역의료원은 감염병 대응을 위해 헌신했지만 엔데믹 선언 이후 경영을 회복하지 못했다. 2019년과 비교했을 때 외래환자 수는 23%, 입원환자 수는 57% 감소했다. 병상 이용률은 36%에 불과했다. 그 결과 세 의료원의 당기순손실은 224억원에 달했다. 팬데믹 이전 흑자를 기록했던 상황과 비교하면 심각한 경영난에 처해 있다.
지방의료원들은 필수 의료를 제공해야 하지만, 인력 부족과 재정 압박으로 인해 그 역할을 다하기 어려워졌다. 의료 인프라 부족과 인력 이탈은 기본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조차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주민들의 건강권이 침해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공공병원이 겪는 경영난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지원책은 여전히 부족하다. 의료 인력 확충이나 시설 장비의 현대화는커녕, 공공병원이 감당해야 할 공익적 손실비용조차 충분히 보전되지 못하고 있다. 의료 공공성 강화가 논의되는 가운데, 실제로 현장의 의료공공성은 의정 갈등 속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 공공의료 살리려면 대화부터
의정 갈등이 8개월 넘게 지속되면서 의료 공공성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의사 정원 확대를 둘러싼 논의에 머무르지 않고, 의료 시스템 전반을 다시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갈등 해소를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정부와 의료계 모두 상호 협력을 위한 지속적인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의료진 처우 개선과 의료 환경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의료계도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실질적인 협력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필수 의료 분야의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 공공의대 설립이나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 등 장기적 인재 양성 계획이 필요하다. 이러한 접근은 단기적인 인력 수급 문제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역 의료 공백을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줄 것이다. 지방의료원의 경영난을 해결하기 위한 안정적인 재정 지원과 시설 현대화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최근 정치권의 의정갈등 해소를 위한 협의체 구성 소식에 국민 시선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의료계 학술단체가 협의체에 참여한다는 소식으로 갈등 해소 단초가 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인다. 정치권의 이러한 노력은 의정 갈등이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실질적인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다.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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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갈등 화합의 길 어디에...뒷전된 ‘의료공공성’
의정 갈등 장기화로 공공의료 붕괴...지방의료원 존폐 위기 지방의료 살리려면 협력 필수, 의료 인력 부족 해법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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