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전북론]사회는 붕괴되고 얼굴 없는 유령들이 세계를 지배한다

42회 붕괴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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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빌딩농장 개념도다. 빌딩농장 하나가 도시 전체의 식량을 공급하는 시대가 오면 식량생산엘리트에 지배당하게 된다. 사진 출처 인터넷



1. 얼굴 없는 사회의 도래



나는 21세기보다 20세기가 훨씬 인간적인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타자기를 쓰고, 시외전화를 하기 위해 공중전화에 줄을 서던 때는 시간이 느려서 상상력과 몸이 재촉받지 않았다. 검색할 수 없어서, 정보 접근이 쉽지 않아서, 나무며, 풀이며 강이며, 사람들에게 더 순수할 수 있었다. 1990년대의 직장에서 사업계획서의 두툼한 예산서를 작성하기 위해 주산에 능숙한 상업고 졸업자들이 몇 날 며칠을 협업했다. 지금 청년들이 주산을 알려는지, 그 협동에서 솟는 동료애를.



내 딸의 친구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근무하는데 근무처가 세계 각지다. 어디서 근무하든 맡은 일만 해내면 된다는 것이다. 출근은 업무 평가 때만 간다고 한다. 내 아들은 자율출퇴근제 직장에 다닌다. 일의 성격상 회사가 제공하는 값이 비싼 장비를 쓰기 때문이다.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부장은 없고 오로지 업무 단위 책임자(팀장)만 있다고 한다. 과업이 바뀌면 그 일에 가장 능숙한 사람이 경력과 무관하게 책임자로 온다. 호칭도 선후배, 나이 개념 없이 모두 ~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직장과 주거가 분리된 삶이 직주일체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직주일체는 사회적으로 비용을 줄이고 자신만의 분위기 속에서 일할 수 있지만 그만큼 사회는 개인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얼굴 없는 냉혹한 유령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아무도 그 사람의 해고에 위로를 주지 않는다. 각자도생이다. 사회에 관심이 줄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사회는 붕괴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주산에 의존하던 여러 사람의 몇 날 며칠이 지금은 홀로 몇 시간의 엑셀 작업으로 끝난다. 도서관에 가서 몇 날 며칠을 뒤지던 과거 통계와 추이 분석이 몇 초의 자판으로 펼쳐진다.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은 예술, 작문, 의료, 금융, 오락놀이(게임), 영업, 유행산업(패션)을 포함한 다양한 산업 부문에 걸쳐 실용화되고 있다. 생명은 고통, 분노, 우울, 기쁨, 고독 , 연대감으로부터 창조를 생성하는데 인공지능체도 감정으로부터 정보를 생성 또는 창조하는 것일까? 인공지능이 감정을 느껴 어느 날 문득 나 일하지 않겠어 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체는 활물이기는 한데 이 활물은 생명일까? 아닐까?



지금은 발에 채이는 정보 때문에 도리어 가야 할 길의 선택에 더 어려움이 많고, 그 길로 가면서도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가가 너무 손쉽게 비교된다. 타자의 정보가 나를 압박한다. 나와 연결된 협업의 창조자들이 사라진 것 같다. 정보 장악자와 알고리즘 설계자가 창조자이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검색 때문에 경쟁이 더 심해졌고 경쟁 또한 조작되었다. 검색할 수 없어서 순전히 입소문만으로 선택하던 시절에 세상은 그나마 평평했다. 예를 들면 지금은 사회관계망에 노출도가 높은 광고전략, 특정 입맛이 소개하는 맛집 때문에 전라도의 수 많은 맛들이 표준화되면서 맛의 다채로움이 사라졌다. 지역 표준어인 사투리가 국가표준어에 의해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자영업이 망하는 여러 까닭 중의 핵심이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변화를 아무도 놀라운 변화라고 여기지 않는다. 가랑비에 시나브로 옷이 다 젖어서야 젖었음을 아는 것과 같다. 자고나니 세상이 변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몇 년 지나면 세상은 엄청 변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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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가 건너는 강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진 KBS 방송 장면



2. 극소수 초일류엘리트에 지배되는 사회



1980년대만해도 모두 지역자급식량(로컬푸드)이었는데 지금은 신토불이 식량이 아니라 영어로 된 "로컬푸드"가 특판품이 되었다. 전주서 서울을 4시간 걸려서 다녔는데 1시간 40분이면 된다. 실증단계에 들어선 하이퍼튜브 열차가 상용화되면 전주까지 20분이면 온다고 한다. 주행시간보다 역에서의 승하차 시간이 더 길어진다고 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나 할까? 농민은 사라지고 기술자가 모니터에 앉아 자판으로 농사짓는 게 대세가 되는 날도 멀지 않았다. 도시마다 고층의 빌딩농장이 도시민들의 식량원이 될 날이 온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기쁜 일이지만 배양세포에 의한 복제육 또는 대체육이 이미 상업화되고 있다. 안전성이 높아지고 맛이 다양화되면 축산업을 밀어낼 것이다. 비싼 땅에서 아파트축산업을 할 까닭이 없다. 먼거리 운송의 양고기를 선택할 까닭이 없다. 값은 싸질 것이다. 이게 좋은 일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이 일이 가져오는 역설은 소수의 바이오기술회사에 우리 목숨을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이 판단한 맛에, 식량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 100명의 농부에 연대하던 삶이 10명의 회사에 의존하게 된다. 100명에서 10명으로 사회는 붕괴하게 된다.



기후변화에 식량복제 기술이 훨씬 유리하다. 지금 인구의 5%가 2500만 명, 수입식량이 2500만 명의 식량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소수 거대기업의 식량연쇄점(체인점)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편의점에 밀려 구멍가게가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삶의 의존도가 80년대는 100명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10명이라고나 할까? 지난 시대에 100명은 대개가 부모, 형제, 고모, 이모, 쌀집 아저씨, 생선가게 아주머니, 담베가게 아가씨 등 이웃(직장)공동체였다면 지금 10명은 아마존, 카길, 쿠팡, 구글, 삼성처럼 이름은 있으나 얼굴 없는 다국적 유령들이다. 지금은 유령의 시대다. 틀림없이 앞으로는 더 심해질 것이다. 우리 삶은 자본 의존도가 더 심해졌다. 하이퍼튜브 열차를 타야 할 만큼 빠르게 살아야 할까? 하늘, 땅을 볼 수 없고 사람이 사라지는 삶이다. 원자력과 태양, 바람 같은 천상에너지가 확대되고, 한국에서 인구는 줄고(지구는 100억 명으로 늘 전망이지만), 삶의 의존도는 더 소수에게 집중되고, 얼굴은 사라진 유령의 시대가 기후위기를 잠깐은 견뎌낼 것이다. 하지만 유령의 시대가 심화될수록 하늘, 땅 사람의 연결망이 사라져서 인간들은 더 고독해지고 사회는 붕괴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삶의 의존도가 100명에서 10명으로 5명으로 준다는 것은 사회붕괴란 뜻이다. 사회가 아니라면 뭣인가?



3. 붕괴되는 사회는 유령의 시대다



사회붕괴란 근대 문명 또한 기후대변동과 함께 차원 변화의 정점에 섰다는 뜻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컴퓨터, 인터넷이 이룬 놀라운 변화는 21세기와 20세기를 단지 숫자가 아니라 질적으로 구분하는게 가능해졌다. 그러나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가난한 나라 일 년 생산액보다 많은 초부자를 만들고, 양극화를 더 심화시켰다. 생명은 소수 천재(?)와 기업이 설계한 회로망에 구속되었다.



빅브라더가 아니라 초초빅브라더가 국민국가를 지배해가고 있다. 민주공화국가를 초일류엘리트들이 지배하고 있다. 우리 삶을 보라. 대한민국보다는 구글, 애플, 테슬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사, 삼성스마트폰이 만든 질서가 더 강력하다. 사회주의 경향의 진보가 정권을 잡았다고 보자. 이들이 과연 초일류엘리트들을 물리칠 수 있을까? 천만에 말씀이다. 국유화, 사회화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19세기 사상가들이 말한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 헤겔이 말한 '절대정신의 종착지'는 초일류엘리트 지배 세상이고 정반합의 합이란 초일류엘트들의 판단인 것이다. 그게 도道, 태극이다. 유발하라리가 간파했듯이 그들은 신이 되었다.



진화, 진보라고 믿은 변화들은 파국을 동시에 잉태하고 있다고 본다. 진화와 진보는 지구 고요세에서만 통하는 것이다. 지구생태 대순환이 (흔히 대멸종 6번이라는) 6번 째로 진행되고 있다. 진화, 진보는 틀렸고 차원이동의 대순환이 열렸다. 발전, 성장의 역설이 눈 앞에 실제로 열리고 있다. 미안한 말이지만 진보고 보수고 모두들 한국이 이룩한 놀라운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취해서 성장의 역설 파국을 느끼지 못한다. 지금 진보란 성장의 열매를 나누자는 것이지 파국에 대체하는 전환의 자세가 아니다. 너무나 안일하다.



나는 현대의 사상, 철학이 너무나 안일하다고 생각한다. 2500년 전의 공자, 노자, 묵자가 아니라 지금의 공자, 노자, 묵자가 필요하다. 지금의 예수와 붓다가 필요하다. 유신론, 유물론, 관념론, 신유물론 구분이란 이미 낡아도 너무 낡았다. 신애니미즘을 말하며 떠돌아다니는데 과거의 히피를 보는 것 같다. 그나마의 사회가 붕괴되고 있는데 사회를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나는 절박하다.

/강주영(건축시공기술사·목수·전 교육부 대표 시민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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