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문(通文)이란 조선시대에 민간단체나 개인이 같은 종류의 기관 또는 관계가 있는 인사 등에게 공동의 관심사를 통지하던 문서다. 전달수단과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소셜 미디어와 비교된다. 통문은 원래 서원의 건립이나 증축, 문중소식, 향약의 운영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으며,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1626년(인조 4) 6월 영남의 유생들이 통문을 돌려 관찰사를 성토하여 마침내 원탁(元鐸)을 물러나게 한 일이 있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도 감사 김성일이 좌도의 감사로 임명한 일에 대해 우도 사민(士民)들이 통문을 돌려 김성일을 머물러 있게 해 달라는 상소를 임금에게 올려 그대로 머물게 하기도 하였다.
한편, 임진왜란·병자호란 때에는 모병과 군량의 조달을 위하여 구국의 통문들이 작성되어 의병의 조직화에 이바지하였는가 하면, 민란이나 혁명을 일으키려 할 때에도 거사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협력을 촉구하는 내용의 통문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조정에 출사할 길이 막혀버린 선비들은 고향에 은거한 채 통문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그것이 조정에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통문이 SNS의 기능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1893년 11월 전봉준도 봉기를 준비하면서 주동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사발 모양으로 둥글게 이름을 적은 문서인 사발통문을 이용하였다. 그냥 기록해 두는 문서가 아니라 비밀리에 돌려보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사발통문의 거사계획은 고부봉기와 무장기포, 백산봉기, 황토현 대첩으로 이어지는 혁명의 시작점이었던 것이다.
위키백과에는 재미있는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분데스리가의 우승 트로피 마이스터샬레(Die Meisterschale)가 사발통문과 유사한 점이 있다. 분데스리가 창설 이전부터 이 트로피를 들어왔던 역대 우승팀들의 우승년도와 이름이 트로피 앞면에 원형으로 새겨져 있다. 프랑스에서도 왕에게 뭔가 요구할 때 주동자를 알지 못하게 둥근 리본 형식으로 이름을 쓰는 ruban rond(둥근 리본)이라는 방법이 있었다. 영어권에서는 round robin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리그전'의 의미로 변형되어 쓰인다.
사발통문은 지난 5월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부패한 정부와 외세에 저항한 민중봉기운동으로써 민중이 주체가 되어 자유, 평등,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기 위해 노력했던 역사적 사건으로 세계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오승옥(마을활동가·관광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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