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에스페란토 시인 정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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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섭(鄭四燮, 1910~1944)은 익산 출신으로, 에스페란토(Esperanto)로 쓴 시집을 1938년 프랑스 파리에서 발간한 한국인 최초의 에스페란토 시인이다.

그는 1910년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에서 태어났다. 1922년 공립 전주고등보통학교에 입학, 1924년 학교 교무 개정을 요구하는 동맹휴학에 가담하여 출교당한 뒤 사립 배재고등학교에 편입, 1926년 수료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 1930년 히로시마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33년 교토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도쿄제국대학 불문학과에 편입, 1935년 졸업했다.

그는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한 후 프랑스로 건너가 1936년 프랑스 파리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1938년에는 ‘Dan Tirinaro’라는 필명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인 최초로 에스페란토 시집 'La Liberpoeto(자유시인)'을 발간했다.

이 시집은 서문을 시작으로 자유, 여행, 파리, 뱅센, 곤충, 도시, 농촌, 시인, 외국, 운명, 삶, 마음, 여름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국주의와 배금주의에 대한 비판, 약소민족의 해방과 사해동포주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을 담고 있다.

한국에스페란토협회가 1999년에 'La Liberpoeto'의 발췌 번역본인 '날개없는 새'를 발간했고, 2005년에는 완역본인 '사랑이 흐르는 곳, 그곳이 나의 조국'을 펴냈다.



‘이 시의 문을 열려는 이여/이성적인 사람이 이 집에 사나니/묵은 세상의 규범을 모두 버려라//이 시의 문을 열려는 이여/저항하는 사람이 이 집에 사나니/틀에 박힌 삶의 사슬을 모두 버려라//이 시의 도시에 들려는 이여/평등한 사람이 이 도시에 사나니/교만한 마음의 특권을 버려라//이 시의 산에 들려는 이여/자유로운 사람이 이 숲에 사나니/잔인한 사회폭력을 모두 버려라’(시 ‘문’ 일부)



'이 시'란 에스페란토어로 쓰여진 시를 말한다. 한국인 최초로 1938년 파리에서 에스페란토어 시집을 낸 시인의 시집 ‘자유시인(La Liberpoeto)’이 67년 만에 ‘사랑이 흐르는 곳, 그곳이 나의 조국’(옮긴이 김우선 외, 펴낸 곳 문민)이란 제목으로 완역됐다.



14장 105편으로 구성된 이 시집은 정시인이 파리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하던 중 ‘단 티리나로(Dan Tirinaro)’라는 에스페란토 필명으로 발표한 것으로 제국주의·자본주의·배금주의에 대한 비판, 고향과 부모형제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암울했던 식민지시절 무정부주의 성향이 강한 에스페란토어에 빠져든 청년의 내면, 탄탄한 지식이 바탕이 된 사상적 깊이, 시적 기교가 어우러져 높은 문학적 성과를 거둔 시집으로 평가받는다.

이화여전 출신인 부인(조말연)도 1951년 세상을 떠나 초뢰, 창우 등 1남1녀의 어린 자식만 남았다. 유족들조차 몰랐던 정시인의 존재가 에스페란토 연구자들 사이에 처음 알려진 건 1973년이었다. 젊은 시절 그와 함께 에스페란토어를 공부했던 이원식씨(작고)로부터 시집 이야기를 전해들은 서길수 서경대 교수가 세계에스페란토협회 회원이었던 독일인 친구 울리히 린스에게 연락해 원작시집의 복사본을 구했다.

당시에 서교수는 “일제시대 우리말을 뺏긴 뒤 일본어 대신 에스페란토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자유, 보편, 세계평화를 기본정신으로 일제에 반대하는 운동이었다”며 “폭력·속박·굴종을 질타하고 자유를 구가한 정시인의 시는 일제에 대한 비난과 항거의 표현”이라고 했다.

‘자유시인’을 접한 연구자들은 시편의 방대함과 함께 일제침탈에 대한 저항정신, 문학성에 깊이 감동했다. 연구자들끼리 돌려읽던 정시인의 시가 처음 번역, 출간된 건 1999년이었다. 한국에스페란토협회가 선구자의 날을 만들면서 정시인을 첫 선구자로 지정하고 원작시집 가운데 52편을 발췌해 ‘날개 없는 새’(세기문학)란 제목으로 펴냈다.

그러다가 2005년 제7회 선구자의 날 행사를 앞두고 나머지 시를 완역, 출간했다.

두차례 번역 작업에 참여한 김우선씨는 “모든 사람이 자유와 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의식을 전세계인을 상대로 설파한 보편성이 가장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완역된 시집은 시의 사상을 설명한 시 ‘문’과 시의 형식을 설명한 시 ‘서문’ 등 2편으로 구성된 서문을 시작으로 자유, 여행, 파리, 뱅센, 곤충, 도시, 농촌, 시인, 외국, 운명, 삶, 마음, 여름밤 등 14개 장으로 이어지면서 해외여행경험과 사상편력을 담아냈다. 파리 근교 뱅센 숲의 동물원에서 우리에 갇힌 동물을 보면서 자유를 노래한 시편들은 우리 민족의 처지에 대비해 읽힌다.



‘사슬에 매인 노예들이여 일어나라!/일어나라, 일어나 사슬에 얽매인 노예들이여!/우리에게 해방의 기회가 왔다//…//포악한 압제에 주저하면/자유와 행복이 약속된/미래의 희망을 잃고/사슬에 묶여 영원히 신음하리라’(시 ‘사슬에 매인 노예들이여 일어나라!’ 일부)



1939년 인천으로 귀국, 1944년 1월 사망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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