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 한벽당(도 유형유산) 아래의 빨래터에 온 적이 있었다. 광목천 홑청 같은 것을 빨면 삶아주는 직업도 있었다. 빨래를 자갈밭에 널어 말리던 풍경도 떠오른다. 그렇듯 전주 사람들도 전주천의 빨래터를 이용했다. 전주 십경의 하나였던 남천표모(南川漂母)는 온데간데없지만, 여전히 전주천은 전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옛날 빨래터의 흔적은 없어졌지만, 천변에 천막을 친 평상들이 즐비했다. 나는 그때 오모가리가 물고기 이름이 아닌, 오목한 뚝배기 이름인 것을 알았다. 전주 팔미 중의 하나라는 것도. 여름철에 내 생일이 있기에 시원한 나들이가 되었다. 지금은 오모가리탕 집이 많이 사라지고 한두 집이 명맥만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물고기를 잡을 수도 없다.
전주천을 정화한 뒤, 맑은 물에서만 사는 쉬리와 멸종 위기였던 야생동물인 수달까지 사는 깨끗한 하천이 됐다. 천변을 공원화하여 철마다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니 시민들의 운동 장소와 산책로가 됐다.
승암산 기슭의 절벽을 깎아 세운, 전주 옥류동고개 옆 한벽당(寒碧堂,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호)은 일찍이 유생들이 풍류를 즐기고, 각시바우, 서방바우에서는 아이들이 고기잡고 멱감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여름철 집중 호우때면 갑자기 불어나는 물로 아찔했던 기억도 있겠다. ‘벽옥한류(碧玉寒流)’라는 글귀에서 ‘한벽(寒碧)’이라는 어구를 따서 후세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 아닌가 추정될 뿐. 그러나 ‘한벽청연(寒碧晴烟)’으로 ‘완산8경’ 의 하나였던 이곳이 흰 도포자락을 휘날리는 고고한 선비의 이미지와 겹쳐지는 오늘에서는.
아무튼 한벽당 앞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서서히 사라져 가는 모습을 가히 절경이라 했으며, 전주향교가 가까운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까닭에 전주의 선비들이 이곳에서 전주천을 바라보며 시조를 읊었을 터이다. 남원, 구례, 곡성, 순천, 진주 등으로 가는 나그네들은 오룡교(남천교)를 건너면서 한벽당의 풍광을 감상했으며, 낚시꾼들은 한벽당의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으로 이 일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풍류삼매에 젖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사랑을 받아온 한벽당도 시대가 변하면서 아픔을 겪어야 했다. 등 뒤로 전라선이 지나며 굴이 뚫렸는가 하면, 허리 옆으로는 17번 국도가 생기면서 예전의 풍취는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한벽교는 총연장 103.6미터, 교폭 22.5미터로, 1982년 12월 22일부터 공사에 들어가 1986년 9월 30일까지 착공, 전주와 남원을 연결하는 교량이다. 당시 시행청은 이리지방국토관리청, 시공자는 주식회사 금강으로 돼 있다. 지금, 한벽교 아래 터널은 시민들의 아늑한 휴식공간으로 탈바꿈 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초록으로 물든 거리를 걷노라면 전주천의 맑은 공기와 파란 하늘이 서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대도시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는 시냇물 중 가운데 전주천 만큼 맑은 물빛을 간직한 곳이 또 어디 있을라구. 계절이 바뀌는 창변(窓邊)에서 문득, 전주 천변의 오모가리탕집 평상 위로 당신을 기꺼이 초대하고 싶다./글=이종근·그림=원지(XU WEN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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