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전북]K근대인은 서구인인가 한HAN님인가

37 전주이야기 –초록바위에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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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경기전과 서의 전동성당은 근대의 정점에서 서로 교학상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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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과 서부 신시가지, K근대인은 황색백인인가, 한HAN님인가



1. K는 무엇인가



36회에서 “근대 백여 년 결국은 조선의 헌집(?)을 허물고 새집을 준 것은 서학의 개화였다”고 썼다. 작년에 타계한 라투르는 “우리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고 선포했었다. 그 뜻은 근대가 약속한 자유, 평등, 우애가 사기였단 말과 같다. 아파트, 자동차, 컴퓨터, 해외여행, 건강보험, 식량 빈곤 탈출, 평균수명 80여 세가 개화의 놀라운 성취였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걸 얻으려고 1894년 이래 조선인, 한국인 1천만 명 이상이 동학혁명, 독립전쟁, 남북전쟁, 민주화 투쟁, 근대화 추진에서 자연수명이 아니라 총, 칼, 고문, 산재로 죽었다. 자기 땅에서 추방된 동포는 더 많다. 하지만 대청제국을 세운 만주족(여진족)이 사라진 것에 비하면 한겨레가 살아남은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한겨레가 도달한 근대인은 한겨레인인가? 요새 우리는 K를 즐겨 쓴다. K는 세계에 내세울만한 한국 유무형 차림(콘텐츠)을 말한다. 그런데 이 K가 한국인이 잘하는 차림이란 것인지, 한국적 정체성을 가진 차림인지 질문할 수 밖에 없다. 만일 K정치라고 말한다면 부끄러운 호명일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세계적 성취는 충분히 칭송할만 것이지만 방탄소년단이 한국적 정체성을 세계화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에 한류란 것은 한국인이 잘하는 것이지 한국적 정체성은 아니다. K근대인이란 한국적 서구인, 황색백인이다. 서구로 창씨개명한 K인 것이다. 그래도 괜찮은데, K는 근대의 끝물을 탄 것이 문제다. 지구 전체적으로 근대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 대표 징후가 기후비상이다. 태양광발전으로 결코 탈출할 수 없는 기후비상이다. K근대인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서구적 근대정신이 유통기한이 지나 근대의 멸망을 가속하는 독약이 되었다고 보기에 우리가 버린 것 중에서 쓸만한 것을 챙겨 보는 것이지 조선인이니까, 한국인이니까 그러는 게 아니다.



K근대인이 아니라 우리가 버렸던 종래의 하늘사상을 신생(新生)하는 '한Han님'은 어떤가? ‘한’은 크고 넓다의 그 한이요, 하늘하다의 한이요, 고루, 두루, 널리 사랑하는 홍익인간의 그 한이다. 님은 존칭한 것이다. 한국의 근대는 이 한님을 철저히 묵살하고 버렸다.





2. 전라도는 한HAN님의 지령이다



초록바위에서 전라도 지령(地靈)의 옛을 상고한다. 지령이 곧 천령(天靈)이다. 옛일을 되새김하는 것은 오늘을 가늠하기 위해서다. 유홍준 교수는 (호남)남도 답사 1번지는 해남 강진이라고 썼다지만 남도 답사 1번지는 호남 사람들의 가슴 특히, 호남 여인네들의 가슴 속에 있다. 호남사내들이 끌려가거나 역적으로 죽어나갈 때에 고향을 지키고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기른 것은 여인네들이었다. 그 마음이 호미나 부지깽이를 들고 가슴애피(가슴앓이)를 흥그레하던 것이 육자배기가 되고, 판소리가 된 것이다. 호남을 두고 '예향'이라고들 하지만 그 말은 호남을 깔보는 말들이다. 너희는 세상에 뜻을 두거나 정치 같은 것은 하지 말고 술이나 먹고 그림이나 그리라는 소리다. (물론 그림이나는 아니다.) 백제 유민의 한이 금산사에 서려 있고, 그 백제 유민의 저항이 전주백제, 진훤백제로 부활하였으나, 또 다시 고려에 복속됐다. 그 이후로 호남은 번번이 국가로부터 버림 받았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훈요십조에서 차령이남을 버렸고, 정철이 특검이 되어 진행한 기축옥사는 호남 일대를 통곡과 절망의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호남은 늘 민란의 주역이었고 이러한 저항의 숨결이 다시 한번 솟구친 것이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이었다. 1907년의 정미 의병도 호남이 주역이었다. 목포에서 부산으로 가는 국도 2호선은 일제가 폭도도로라 불렀는데 이 도로는 피체된 호남의병들이 쇠사슬을 차고 만든 도로다. 괴뢰만주국을 세운 일본이 가장 많이 이주시킨 사람들도 농사를 잘 짓는 호남 사람들이다. 한국전쟁 때는 또 어떠했는가? 이른바 빨치산이니 뭐니 하는 일도 호남이 주역 아니던가? 제주 4&;3항쟁, 여순항쟁, 5&;18항쟁, 호남 그 이름을 들으면 나는 눈물이 나는 것이다. 이것은 옹졸하고 편협한 지역 감정 따위가 아니다. 누구처럼 '전라디언'이라는 자조도 아니다. 호남 땅에 스민 역사의 내력이고 '한'인 것이다. 한은 恨이 아니다. 크고 깊고 웅숭한 때로는 미륵이었다가 때로는 하늘님이었다가 하는 한HAN 인 것이다. 그 한을 가진 것이 시천侍天이다. 시천한 님들이다. 줄여서 한님이다.



3. 지구한길Earth Han Road을 생각한다



한님들은 이제 지구한길Earth Han Road을 들여다 보고, 숲은 검고, 길바닥에 비단이 깔리는 문명개벽의 남조선 뱃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남이 남南이겠는가? 나머지 남이다. 동학인과 서학인이 처형된 초록바위는 지구한길Earth Han Road을 새기기에 적합하다. 동서를 교학상장(敎學相長)한다. 옛과 오늘이 공존하는 전주 풍경, 고금소통의 풍경! 초록바위는 곤지산(坤止山)의 동쪽 끝자락이다. 조선지문학(朝鮮地文學)인 풍수(風水,조선지리학도 바른 정명이 아니다. 풍수는 지리만 논하지 않고 문사철(文思哲)이 있다.)에서는 이 산을 갈마음수봉(渴馬飮水峰), 즉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형국의 산이라 한다. 물을 마시는 곳은 전주천이다. 목마른 말들인 동학인(東學人)과 서학인(西學人)들이 이곳에서 순교하였으니 풍수가 그르지 않다.



심국보의 글이 초록바위에 안성맞춤이다.



“조선은 가톨릭 역사상에서 최악의 선교 현장의 한 곳이었다. 조선에서 왜 1만이나 되는 순박한 백성들이 순교했는가. 한마디로 제국주의적 선교방식을 고수한 로마교황청의 잘못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조상제사금령을 내려 문화적 마찰로 이 땅에서 순교한 1만여 명의 무고한 생령을 순교자니 성인이니 하며 추앙하는 것 자체가 죽은 이들을 두 번 죽이는 행위이거니와, 교황청은 아직도 자신들이 저지른 조상제사금령의 잘못에 대해 한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 심국보, 「 어리숙한 한울님」, 241쪽, 모시는 사람들 -



초록바위는 동과 서가 대립하고 살육한 곳이다. 조선 왕조국가의 지배기구인 전라감영과 동학혁명의 관민상화 집강소가 있었다. 동서고금이 맺힌 곳에서 이제는 동서고금이 회통하는 다시개벽시대를 사유해본다. 동서고금을 기억하는 초록바위에서 스마트폰을 켜고 이병한의 동서고금을 회통한 글을 읽는다. 솔깃하니 새롭다.

“동학과 서학이 서로 대립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동서양의 선비들이 인문을 교류하고 사색하였다. 동학의 발화를 보는 관점도 특별하다......나(이병한)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중국에 천주교를 전한) 마테오리치의 무덤 앞에서 절을 드린 조선인 선비들이 있었다. 담헌 홍대용을 비롯한 이른바 '북학파'들이다. 연행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서학 서적을 맹렬하게 수집하고 학습했다......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천주실의>를 읽은 흔적이 여러 곳 등장한다. 서학 공부에 몰입하다가 서교에도 입신했던 다산 정약용도 빼놓을 수 없겠다. 즉 유라시아의 동쪽 끝 조선에서도 서학은 19세기 이후에나 밀려온 낯선 학문이 아니었다. 17세기 이래 이미 서학과 유학의 대화가 깊이 이루어지고 있던 것이다. 그 200년의 소화가 있었기에 19세기 말 천하대란 속에 솟아난 동학에서는 '시천주'(侍天主)라는 신조어까지 고안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고로 동학 또한 서학의 반대말만은 아니라고 하겠다.” -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프레시안 2017. 5.19 프레시안 -



&; 다가사후의 활소리가 들린다. 전주 사람 진동규 시인의 시 「파랑새 울음 웁니다」를 떠 올리며 시대를 가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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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어도 휘어도 꺾일 수 없는 활, 하루에도 몇 번씩 시위를 당깁니다. 수렁에 빠져도 사는 그 억척의 물소뿔을 휘어 쑤꾸욱 쑤쑤꾹 억겁의 세월 날고 풀어 시위를 당깁니다.



진안 곰티재 아기바투 목구멍에 쏘아 박고 만수산 드렁칡을 당기어 정몽주 뒤통수에 날린 살, 단풍보다 더 붉게 다가산을 덮어 흐르던 동학의 꽃 붉은 함성, 타는 보리 모가지에 또 한 대 살을 날립니다.



금강 섬진강 만경강 황토땅 흐르던 파랑새 울음을 시위는 울어줍니다. 맨발의 견훤대왕 등창에 박히어 울던 살, 오늘은 그대 가슴의 찬 바위에 쏘아 박을 한 대 살을 재어봅니다. 시위를 당깁니다.” - 진동규 「파랑새 울음 웁니다」

/강주영(건축시공기술사·목수·전 교육부 대표 시민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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