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은 두 쪽으로 갈라져 진행되었다. 역사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역사 혼돈에 마주하고 있다. 소위 뉴라이트의 등장으로 대한민국 역사가 왜곡되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일제 강점기 쌀 수탈을 수출로 거침없이 발언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자괴감을 느끼게 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라고 한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노역을 부정한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기를 포기한 사람일 것이다. 문제는 뉴라이트 세력이 당당히 주장한다는 점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한 역사학자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현재 모습은 매우 비정상적이다. 역사의 퇴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안군에 윤치호 관련 비 2기가 부귀면 대창정미소 부근에 세워져 있다. ‘윤치호 시혜불망비’ ‘윤치호 흥학불망비’가 그것이다. ‘윤치호 시혜불망비’에는 이곳에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윤치호가 소작료를 경감해 주고 부귀초등학교 부지를 희사한 사실을 기리기 위해 1929년 소작인에 의해 세워졌다. 그리고 ‘윤치호 흥학불망비’는 역시 학교 터를 희사한 사실을 기리기 위해 1931년에 부귀면 초대 면장이 건립하였다.
윤치호는 한말 개화파로 당시 보기 드문 해외 유학파이다. 독립협회에 참가하여 서재필을 뒤이어 독립협회 2대 회장을 역임했다. 독립신문 사장과 주필을 겸했다. 지방관을 전전했다. 그러면서 대한자강회 회장, 대성학교 교장에 취임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신민회에 참여하여 105인 사건으로 징역형을 받기도 했다. 이런 면모만 본다면 윤치호는 독립운동가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모습은 확연히 달라졌다. 창씨개명에 앞장섰다. 친일에 앞장서서 조선지원병 후원회장, 국민 총력조선연맹이사, 조선 임전보국단 고문, 대화동맹 위원장 등 수많은 친일 단체 수장을 맡았다.
윤치호는 “천황 폐하의 일시동인이라 하신 성의를 봉대하여 내선일체를 주장하시는 미나미 총독은 우리의 아버지라고, 우리 민족의 경애를 받고 계십니다. 곡괭이를 메고 나서라거든 곡괭이를 메고 나섭시다. 일언이 폐지하고 우리 반도 민중도 내지 동포와 같이 나라를 위하여 살고 나라를 위하여 죽자고 각오합시다.” <1941년 9월 임전대책대연설회 강연 중> 이뿐만이 아니다. ‘징병제도 실시의 감격’ ‘반도 청년에게 바란다’ ‘총 출진하라’ ‘학병을 보내는 명사의 말- 장하다, 그대들 용단, 오직 순충봉공에 몸을 바치라’ 등 강연과 글을 통해 친일에 앞장섰다. 특히 조선의 청년들에게 일제 전쟁에 내몬 인물이다. 그리고 당시 윤치호의 재력은 대단한 것으로 평가된다. 공식적으로 일본에 기부한 내력도 정확하게 전하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7월에는 조선교화단체연합회에서 주최한 시국대응강연회에 연사로 참여했고 황군 위문금(1,000원)과 국방 현금(4,000원)을 냈다. 이 무렵 ‘애국경기호’ 구입비 500원도 헌납했다. 1938년 5월에는 일본군의 쉬저우 함락을 기념해 조선군사령부에 1만 원의 국방헌금을 기탁했다. 1942년 2월 국방비 5,000원을 종로 경찰서에 헌납했다. 일제 강점기 후반 5,000원, 1만원은 큰 금액이다. 1만원을 지금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수천만에서 억대에 이른다고 한다. 친일파의 재력은 상상이다. 윤치호는 일제 강점기에 친일하면서 쌓은 재력을 이렇게 일본군에 내면서 친일파로 지위를 확고히 한 친일파 중 친일파이다. 친일파들은 전국에 수많은 토지에 소유하였다. 윤치호도 수없이 많이 일궈온 재력 중 하나로 진안군 부귀면에 넓은 토지를 소유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토지를 윤치호는 1920년 후반 지역에 희사함으로써 학교를 세우고 소작인의 소작료를 감면해 주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지역민이 윤치호 불망비를 세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윤치호의 친일 행적으로 불망비는 철거되었다가 다시 설치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친일 잔재를 철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윤치호 불망비에는 후손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윤치호의 친일 행적 안내판을 설치해 놓았다. 제79회 광복절은 뉴라이트의 역사 왜곡으로 매우 불편할 뿐 아니라 분노를 치밀게 한 날로 기억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역사는 발전한다는 신념으로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도 함께한 광복절이었다.
* 『친일인명사전』 2권 697~702쪽에 윤치호의 헤아릴 수 없는 친일 행적이 빼곡히 담겨있다. 박시백의 『친일파 열전』에도 잘 정리되어 있다.
/이상훈(진안문화원 부원장·전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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