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흐(J.S.Bach)와 주샤오메이(Zhu Xiao-Mei)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를 가슴 깊이 동경했던 화가 지망생 네로의 이야기를 살펴보니 음악의 아버지 바흐를 마치 신앙처럼 추앙했던 한 여인이 떠오른다. 일찍이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음악영재의 길을 걷지만 곧 휘몰아친 현대사의 깊은 굴곡속에서 힘든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중국의 피아니스트 주샤오메이(Zhu Xiao-Mei)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49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머니의 열성적인 교육과 타고난 천재성으로 일찍이 주목을 받으며 11살에 베이징 중국 음악학원에 입학해 영재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1966년 중국 전역을 휩쓸었던 문화대혁명의 광기 속에 모든 전통적인 가치와 부르주아적인 것이 숙청되며 대륙은 암흑의 시대로 접어들어 주샤오메이의 예술혼 또한 사그러들 위기에 처해진다. 그 시기 중국에서 서양음악은 부르주아의 상징으로 치부되며 악보는 모두 태워지고 연주는 전면 금지되었고 연주자들은 마오쩌둥 사상을 강요받았다. 그녀는 ‘피아노를 소유한 부르주아’의 죄명으로 투옥되어 최변방 내몽골지역의 노동 교화 수용소에 수감되기에 이른다.
낮에는 동토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밤에는 간수와 수용소 동료에 앞에서 자아비판을 하는 참혹한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간수의 각별한 배려 덕분으로 수용소 내 버려진 피아노로나마 밤마다 몰래 연습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그녀가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기간은 무려 5년이었다. 수용소를 나온 뒤, 베이징 무용학교의 연습 반주자로 지냈고, 언젠가 다시 무대에 설 날을 꿈꾸며 음악, 영어 공부로 자신을 갈고 닦는다. 하늘이 도왔을까, 베이징을 방문한 미국의 대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스턴의 눈에 띄어 미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떠나는 딸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돌아오지 말아라. 여기는 정의가 없는 땅이다.”
미국에서의 삶은 고닮픔의 연속이었다. 생계를 위해 홍등가에서 고된 주방일과 청소일을 했는데 일을 마친 매일 밤 “나의 바흐 악보에 간장 냄새가 배어든다.”며 눈물을 지어야 했다.
그 뒤 보스턴으로 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좌석 안내원으로 일하던 중 악단의 플륫 주자를 알게 되었고 그의 집 청소일을 해주게 되는데 그녀가 바란 대가는 그 집의 피아노를 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마침내 그녀는 다시금 피아노와 마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피아노의 조율이 흐트러질까봐 방에 난방도 하지 않고 지낼 정도로 절실하게 꿈을 키워간다. 굴곡진 삶을 거쳐온 주샤오메이의 연주모습이 이렇게 맑고 평온해보이는 건 아마도 오래 전부터 그녀의 영혼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숭고한 바흐 음악에의 끝없는 동경 덕분 아닐까.

냉혹한 현실 속에서 피아노를 포기하지 않고 버텨낸 주샤오메이가 피아니스트로 유럽 무대에 정식 데뷔한 나이는 46세였다. 파리에 정착해 연주활동을 하던 그녀는 파리의 청중들에게 점차 인정받았고 세계적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는 연주에 깊은 감명을 받아 스스로 그녀를 위한 공연기획자가 되었다. 이후, 주샤오메이의 연주는 더욱 찬사를 받으며 마침내 파리음악원의 교수가 되었다.
그녀의 이 파란만장한 일생은 ‘마오와 나의 피아노’라는 책으로 출판되었고 책의 부제는 ‘마오쩌둥에서 바흐로’이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산 주샤오메이. 보통 사람이라며 몇 번이고 삶을 포기했을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그녀가 의지했던 것은 피아노였고 바흐의 음악이었다. 만년의 바흐가 일했고 제단 앞에 그의 시신이 묻혀있는 독일 라이프치히(Leipzig)의 토마스 교회(Thomaskirche)에서 2014년 그녀는 그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을 연주한다. 그녀는 이 곡을 만난 후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으며 그 후 이곡은 자신의 존재를 온통 가득 채우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찬사를 받으며 세계 최고의 무대에 서는 그녀이지만 모든 영광을 바흐에게 돌리는 그녀. 질곡의 세월을 담은 굵은 주름이 가득한 손으로 담담히 건반을 누르며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는 한 TV방송 인터뷰에서 그녀가 남긴 이야기만큼 깊은 울림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먼 훗날, 당신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까?”
“...넌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았지. 이리 오렴, 내 너에게 바흐를 소개해 주마...”
굴곡진 삶을 거쳐온 주샤오메이의 연주모습이 이렇게 맑고 평온해보이는 건 아마도 오래 전부터 그녀의 영혼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숭고한 바흐 음악에의 끝없는 동경 덕분 아닐까.

/이주용 전주대학교 음악학과 교수

https://www.youtube.com/watch?v=Dw4ZW6AYx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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