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운이 동학론을 완성하고 칼노래를 부른 은적암터에서 두 동학인이 춤을 추고 있다.
1. 동학미학을 발표하다
지난 6월 13일 '동학미학' 발표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있었다. 발표자는 광주광역시 소재 인문학교육연구소 소장 양진호였다. 그의 동학미학은 동학사상과 수운의 행장에 대한 '자유 연상'이라지만 상상의 폭과 깊이는 컸다.
양진호는 수운의 칼노래 '검결'을 역사의 구비마다 새날의 열망을 담은 노래들인 구지가, 헌화가, 서동요, 임을 위한 행진곡, 김남주 시인의 '노래'(일명 죽창가)까지 이어서 상상하고 이를 '노래프로젝트'라고 했는데 필자는 "노래거사(擧事)"를 하자는 말로 들렸다.
한 곡의 노래가 두툼한 사상서나 선동보다도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법이다. 수운이 남원 은적암에서 부른 '칼노래'는 반역가로 조선왕조의 지목을 크게 받아서 은미하게 민중들 사이에서 전파되고, 동학농민혁명 시기에는 집회장마다 칼춤과 함께 불려졌을 터이다. 양진호는 동학군들이 들었다는 죽창을 대나무 피리로 연상하고 이로부터 신라의 만파식적과 율려음악론을 펼쳤다.
'동학미학'이라는 말부터가 참신했다. 그간 김지하의 글, 박홍규의 동학 판화나 그림, 동학 관련 소설과 시, 연극 등의 동학 예술이 있었지만 명시적으로 '동학미학'을 미학공론장에 제출한 것이 이 날 발표의 의미였다.
김남주 시인의 '노래'(일명 '죽창가')나 '임을 위한 행진곡', 또는 오월가, 노동가 등이 1980년대의 동학 칼노래였다면 지금은 새 칼노래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나는 양진호의 주장을 이해했다. 이는 1980년대의 민족, 민중예술의 성과를 계승하되, 그 한계를 뛰어넘는 문명전환의 미학&;예술론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필자는 해석했다. 그게 어찌 노래만이겠는가? 노래가 곧 시고 소설이고 그림이고 영화인 것이다.
"죽창이 어찌 살인 무기이랴. 죽창은 피리다. 율려의 만파식적, 살리는 노래"라는 발표자의 미학은 황토현공원에 세워진 죽창 들고 돌진하는 봉기 군상의 허전함을 채우고 있었다.
1980년대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 민주에 대한 열망이 생기면서 가슴에 결의가 돋았다. 60이 넘은 지금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 회한이 더 커지고 새 열망이 돋지는 않는다. 수운의 칼노래는 동학혁명의 열망,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혁명의 열망을 일으켰다. 두 노래 다 가슴 깊은 곳에서 수심정기(守心正氣)하는 노래이지만 때는 다 그 때가 있으니 새 칼노래가 필요하다. "민주 이후에 개벽이다."(이병한) 개벽 열망의 새 노래 거사가 필요하다. 시, 소설, 영화, 음악, 연극, 소리, 미술, 건축 등 모든 분야에 개벽 거사가 필요하다. 이 개벽 거사를 위해서는 신선하고 대중적인 열망이 이는 언어가 요청된다. 철학, 문학, 예술이 해야 할 일이다

광주광역시 소재 인문학교육연구소 양진호 소장이 '동학미학'을 발표하고 있다.
2. 김지하의 동학은 미쳤는가?
요새 '동학열풍'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동학열풍이 맞나 하고 의심해 본다. 열풍이라면 동학문화가 대중적으로 퍼져야 하는 것이지 동학도서가 좀 읽힌다고 열풍이라고 할 수는 없다. 동학혁명사와 동학사상은 있지만 동학문화는 없다. '근대민주'를 여전히 칭송하면서 동학의 핵심 사유인 '개벽'을 하자고 하면 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사태다. 수운의 말을 쓰면 그럴 듯 하나 그렇지 않다. '기연이사연'(其然而似然)이다.
동학을 광학(狂學)으로 복승(김지하의 複勝은 숨은 차원에서 문득 솟아오르는 근원적 우주 생명의 '솟음'을 말한다)한 이는 김지하다. 광학 - 미친 학이라니? 광학은 필자가 한 말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김지하 저 혼자 그렇게 세인들이 알 수도 없는 '음개벽', '화엄대개벽', '천부역', '등탑역', '수왕개벽' 등을 씨부렁거릴 수 없는 것이다. 도대체 이 말들이 남북통일, 반제반자본투쟁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생명해방이라니? 근대 이성으로는 김지하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수운의 『용담유사 』중「도수사」에는 수운의 고독이 여실하게 나타나 있다. 김지하 또한 그랬을 것이다. 득도한 수운이 미쳤다는 말을 들었을 뿐 아니라 고루한 영남유생의 지목을 받아 남원까지 오지 않았던가? 김지하도 "미쳤다"는 말을 들었다. 이는 김지하를 민주, 민족, 민중 투사로만 읽었던 오독이지 않을까 한다.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을 (김지하 황톳길 부분) 임동확 시인은 "생명(숭어)과 죽음(가마니 속)의 일원론적 생성의 사유"라고 하였다. '숭어-생명'의 일원론적 생성의 사유는 민족, 민중, 독립, 투쟁을 담되(포접) 뛰어넘은 다시개벽의 생명미학이다. 이 미학을 민족, 민중, 투쟁에만 가둔 이들야말로 부박한 사회주의리얼리즘, 반제민족, 반자본민중에만 갇힌 것이다. 사회주의, 반제민족, 반자본민중은 생명서사의 한 관문이지 도달점은 아닌 것이다. 김지하의 문학이 80년대 이후에 변했다고 하는 분들은 그의 문학을 오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지하는 처음부터 생명이었다.
그런데 김지하를 광학(狂學)이라고 한 내 의도는 따로 있다. 복승의 물결은 미치지 않고서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기성의 사유로부터 철저히 탈주하여 오지의 황무지에서 외치는 미친 소리가 되지 않고서는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 - 그늘이 우주를 바꾼다. 정역의 논산 사람 김일부가 스승 연담 이운규로부터 받은 화두) 할 수가 없다. 김지하의 흰그늘, 천부역, 등탑역, 화엄개벽, 수왕사, 아우라지 미학 등의 이야기를 많은 경우 세인들은 뻥구라 취급했고, 공론장에서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뻥구라 등이 역사를 뒤집은 예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만유인력이 아니라 행성의 운동과 질량이 시공간을 휘게 만들어서 행성간 운동이 있다는 것이 상대성이론이다. 양자역학은 빛은 입자이면서 파동이라고 하고 측정에 따라 변한다고 하여 다중우주론까지 제출된 상태다. 과학계 공식 입장은 순수한 '만유인력'은 없다고 한다.
3. 동학문화를 일으켜 개벽 거사를 하자
수운동학을 자신만의 관점에서 말해 신동학으로 복승한 이는 유일하게 김지하밖에는 없다고 본다. 수운풀이, 해월풀이, 동경대전 풀이가 아닌 것이다. 동학은 광학이라고 말한 의도는 단지 고독해도 자신만의 소리를 내라는 뜻만은 아니다.
미칠 광狂은 &;(개사슴록변 견) + 王(임금 왕)의 결합이다. 개는 빼고 사슴과 왕의 결합이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는가? 사슴이 왕이 되든, 왕이 사슴이 되든 말이다. '사슴 +왕'은 김지하의 흰 + 그늘(원조는 신재효지만), 이운규의 영동천심월의 그림자 영 + 하늘 천의 결합과 같은 말이 아닐 수 없다. 미칠 '광狂'을 직접 풀지는 않았지만 탁월한 풀이는 아무래도 김종길일 것이다. 그는 임금 왕王을 '뚫어 솟난 이'로 풀었는데 그의 왕은 세종대왕이나 영조대왕이 아니라 한겨레의 '얼빛'이 '말숨'이 가득한 사람이다. 사슴 뿔이 뜛어 솟지 않는가. 미칠 광은 사슴 뿔이 뚫어 솟는 일일 테고, 이 일은 기성에 대한 개벽인 것이다.
동학열풍이 있다면 그건 김지하 때문이다. 그는 1991년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가 무너지기 전부터 신동학 - 생명사상을 해왔다. 하여튼 기성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한국에는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이 일었다. 그런데 그게 한국 풍토에 맞을 수가 없는 일이다. 좌충우돌 속에서 포기, 우로 전향 등이 속출했다. 신마르크스주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답을 못 찾은 이들이 동학을 찾은 것이다. 까칠하게 말하면 시장이 생겼고 동학풀이 장사가 편승한 것이다. 내용이 있을 리 만무여서 수운풀이 해월풀이에 그친 것이다. 혹자는 수운동학을 대칭송하는데 내용을 살펴 보면 수운동학이 개신노자, 개신주자, 잘해야 유학의 민중화여서 칭송한 것일 뿐이다
수운동학을 복승하는 것은 광학이 아니고서는 어렵다. 주요섭이 "초월적 돌파"라고 말했는데 미친다는 것은 "초월적 돌파", 건너뛰는 것이다. 동학한다는 것은 근대의 축조물인 개인, 대중, 국민, 인민, 다중, 민족, 국민국가, 생태, 보수, 진보, 좌우(다 서학이다)를 '초월적 돌파'해야 한다. 헌 집 주고 새집 지어야 하는 일이다.
김종길의 '숨', '말숨', '얼빛', 김남수의 '수왕', '홀본', '~역', 양진호의 '신낳다', '노래프로젝트' 등은 사슴과 왕의 결합처럼 미쳐야 되는 일이다. 사슴+왕의 미칠 광狂은 사물(사건과 물物)과 개념이 기성과 전혀 다른 의외의 차원에서 결합하는 것이고, '개벽'에 미치는(도달하다, 닿다) 일이다.
빛은 밝음에서 오는 게 아니고 어둠에서 온다. /강주영(건축시공기술사·목수·전 교육부 대표 시민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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