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체는 사물이 아니라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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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체란 무엇인가(지은이 토머스 네일, 옮긴이 김효진, 펴낸 곳 갈무리)'는 객체의 행위성과 이동성에 중점을 두고서 과학과 기술에 관한 새로운 체계적 과정철학을 서술했다.

객체는 흔히 수동적이이고 정적인 어떤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생각에 맞서 이 책은 양자론, 범주론, 혼돈이론, 신유물론, 사변적 실재론 등에 대한 세밀한 독해를 통해 객체가 이산적인 사물이 아니라 준안정한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객체들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역사 전체에 걸쳐서 객체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었지만, 지식을 생산하는 데 객체가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된 적은 거의 없다. 토머스 네일은 객체 자체가 지식의 행위주체가 되는 매우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객체론에 역사적으로 접근한다. 이 책은 객체의 행위성과 이동성을 중시하는 서구 과학과 기술의 역사를 최초로 이야기한다. 흔히 객체를 수동적이고 정적인 어떤 것으로 간주하는 생각에 맞서 토머스 네일은, 양자론, 범주론, 혼돈이론, 신유물론, 사변적 실재론 등에 대한 세밀한 독해를 통해 객체가 이산적인 사물이 아니라 준안정한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토머스 네일에 따르면 이 책의 목표는 ‘운동적 과정 객체론’을 제시한다.

현대 과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과학적 관찰이 언제나 그 대상에 영향을 미쳤다면 그것은 객체성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어떻게 바꾸는가? 한 객체가 다른 객체들과 주체들에 의해 끊임없이 수정되거나 변환된다면 객체란 무엇인가? 저자에 따르면 '객체란 무엇인가'의 주요 동기는 이런 관찰자-의존성을 진지하게 여기고서 객체들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데 관여하는 감춰진 과정들과 수행들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의 과정철학이다.

우리는 기후위기, 생태위기, 경제위기, 정치위기, 사회위기 등 다양한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현재 우리의 시대는 ‘탄소자본주의’에 역사적 기반을 둔 인간 활동에서 비롯된 극심한 기후변화로 특징지어지는 시대, 이른바 ‘인류세’ 시대로 일컬어진다. 현재의 국면에서 이 시대는 인간 문명의 종말과 생물의 대멸종으로 귀결될 소지가 다분하다. ‘인간의 시대’를 지칭하는 인류세라는 용어는 인간을 중대한 지질학적 행위자로 자리매김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실제로 드러나는 현실은 비인간 자연이 독자적인 역능과 행위성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들어 이런 현대적 위기들의 근원이 위계적이고 인간중심주의적인 이원론에 기반을 둔 서양 근대성에 자리하고 있다는 반성적 성찰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브뤼노 라투르가 강조한 대로, 서양 근대성은 인간 정신과 비인간 물질, 인간 문화와 비인간 자연, 또는 인간 주체와 비인간 객체 사이, 즉 통칭하여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구분이라는 이분법적 구상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게다가 서양 근대성은 비인간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전제함으로써 ‘비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위계적이고 인간중심주의적인 심성 구조와 태도를 낳게 되었다. 우리 인간이 세계를 단지 ‘우리에-대한-세계’로서만 파악함으로써 비인간들의 존재 자체를 도외시하게 된 이런 경향은 데카르트 이래로 칸트를 거쳐 20세기의 문화적 비판 이론에 이르기까지 지속하는 인간중심주의적인 ‘인식론적 헤게모니’를 뒷받침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현대 사회들이 직면하는 중요한 위기들에 대처하지 못하는 사상적·정치적·사회적 곤경에 처하게 됐다.

바로 이같은 역사적·이론적 이중 교착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즉 비-인간중심적인 비근대적 구상을 정립하기 위해 최근에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위계를 제거하고 비인간 존재자들의 ‘물질성’과 그 ‘행위성’을 부각하는 철학적 운동이 ‘신유물론’이라는 기치 아래 전개되고 있다. 신유물론자들은, 물질 자체가 수동적이고 활성이 없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것으로 구상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개진한다. 신유물론자들은 문화와 자연, 정신과 물질,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분열을 비롯한 서양 근대 사상의 중추적인 이원론들을 재구상할 것을 제안한다. 물질의 활력과 역동성에 대한 신유물론자들의 강조는 자연, 여성, 식민지를 지배와 수탈의 대상으로 삼는 온갖 차별주의적 실천들과 연관된 불변의 영원한 형상/본성 개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또한 신유물론자들은 자연과학의 발전을 수용하거나 또는 심지어 그 발전에 기반을 두는 경향이 있다.

토머스 네일(Thomas Nail, 1979~ )은 현대 과학의 발견 결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활용하는 신유물론 사상가이다. 네일은 미국 오리건 대학교에서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과타리의 작업에 나타난 정치 혁명과 멕시코 치아빠스의 사빠띠스따 봉기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것은 네일의 첫 번째 저서로서 『혁명으로의 귀환: 들뢰즈, 과타리, 그리고 사빠띠스모』(Returning to Revolution: Deleuze, Guattari, and Zapatismo)라는 제목으로 2012년에 출간되었다.

토머스 네일의 독특한 점은, 운동을 어떤 부동의 것에서 파생된 것으로 간주해온 서양 전통에 맞서, 정지 상태에 대한 운동의 수위성을 방법론적 출발점으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토머스 네일은 자신의 철학을 ‘움직임의 철학’으로 명명한다. 물질의 흐름과 과정을 강조하는 ‘움직임의 철학’에 따르면 세계는 ‘비결정적’ 과정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과정들의 준안정한 반복들이 우리 주변의 현상들을 생성한다. 사물들은 비결정적 운동의 창발적인 준안정한 패턴들이다. 그리하여 네일의 ‘움직임의 철학’을 특징짓는 세 가지 주요 개념은 ‘흐름,’ ‘주름,’ 그리고 순환 ‘장’이다. 그의 철학에서 세계는 물질적 흐름, 주름, 순환 장의 재귀적 운동의 준안정한 구성체로 간주된다. 네일의 ‘움직임의 철학’은 들뢰즈와 화이트헤드와 유물론의 통찰을 참조한 일종의 ‘운동유물론’으로 간주될 수 있다.

지금까지 토머스 네일은 두 개의 시리즈(총서)라는 구상 속에서 저서 집필 작업을 해왔다. 첫 번째 총서는 ‘움직임의 철학’의 핵심 개념들과 운동 패턴들을 방법론적 틀로 사용하여 인간 지식의 다섯 가지 주요 차원(정치, 존재론, 미학, 과학, 지구)을 다루는 여섯 권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번째 총서는 ‘움직임의 철학’의 역사적 선구자들(루크레티우스, 맑스, 울프)에 관한 다섯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총서의 세 번째 책 '존재와 운동 : 움직임에 대한 철학의 역사'는 2021년에 한국어로 번역이 되었고, 이 책에서 네일은 운동에 관한 독창적인 역사적 존재론을 전개한다. 이번에 도서출판 갈무리에서 출간된 '객체란 무엇인가 : 운동적 과정 객체론'(2024)은 첫 번째 총서의 다섯 번째 책으로, 이 책에서는 객체들과 객체들을 연구하는 과학에 관한 운동적 과정 이론이 전개된다.

네일의 세계상에 따르면, 이 세상은 마치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 속에서 잠깐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다양한 소용돌이의 회집체와 같다. 감각되고 감각하는 이산적인 객체는 “소용돌이처럼 비교적 안정한 패턴 또는 사이클로 ‘접힌’ 물질의 흐름”이다. 각각의 객체는 운동 중인 물질의 순환적 흐름에 의해 재귀적으로 생산되는 운동적 주름이다. 물질은 끊임없이 흐르기에 객체들은 연속적으로 생산된다. 이런 물질의 흐름들은 쉼 없이 반복적으로 접혀서 준안정한 객체들의 순환 장을 생산하고 재생산한다. 그러므로 세계의 존재자들은 물질적 과정을 통한 상호의존성과 공-생산의 관계들 속에서 함께 엮인다. 다시 말해서, 세계는 자체적으로 내부작용하고 객체들은 서로 조명한다.

요컨대, 운동적 과정 객체론에 따르면, 내부작용하는 객체들의 생성과 존속은 물질적·운동적 삼중 과정에 의해 조건 지어진다. 첫째, 운동 중인 물질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 세계가 정적인 것이라면 생성은 불가능하고, 그리하여 생성은 운동을 전제로 한다. 둘째, 물질의 흐름이 접혀서 주름을 형성하지 않고 그냥 흘러가기만 한다면 국소적이고 이산적인 객체의 생성과 잠정적인 존속은 불가능할 것이다. 셋째, 세계 속에서 객체들이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려면 물질의 흐름과 주름 들이 공-변환과 공-생산의 관계들을 맺고 있는 객체들 사이에서 순환하는 장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객체들의 세계는 물질적 흐름과 주름과 순환 장의 재귀적 운동의 준안정한 구성체이다. 객체들의 외관상 개별성은 객체들을 생산하는 연속적인 물질적 과정들에 의해 형성된 주름들의 국소적이고 잠정적인 준안정성에서 비롯된다. 이는 객체성의 토대가 형이상학적이고 보편적인 실체가 아니라 역사적이고 물질적인 과정임을 뜻한다. 그리하여 특정한 종류의 객체는 특정한 유형의 역사적 운동 패턴에서 생겨난다.

이 책의 핵심 특징 중 하나는 운동유물론적 견지에서 과학에 관한 새로운 과정철학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네일은 과학과 철학 사이의 위계를 구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역사, 철학, 그리고 과학을 가로질러 서로 관련지음으로써 각각의 분과학문이 대개 독자적으로 제시하는 것보다 더 큰 그림을 추구하고자” 하며, 그리하여 과학을 통해서 만들어지게 되는 객체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네일은 “운동 중인 객체들의 창출과 분배로서의 과학과 지식에 관한 과정 이론”을 전개한다. 다시 말해서 네일은 “ ‘과학’을 상당히 광범위하게 양(量)으로서의 객체들의 창출과 정렬”로 정의한다.

네일은 객체들과 그 관계들이 물질의 흐름들로부터 직조된다는 운동유물론적 관점을 바탕으로, 개별적인 과학적 지식과 객체들이 상이한 운동 패턴들에서 나타난다는 점을 역사적 실례들을 통해서 예증한다. 과학적 지식은 “복잡한 한 점의 자수 작품처럼 객체들과 그 관계들의 반복적인 조율”이다. 그리하여 과학적 지식은 “세계를 재현하지 않고 오히려 세계의 일부”이다. 그것은 “세계가 자신을 직조하고 정렬하는 방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과 세계는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재귀적으로 서로 공-생산하는 되먹임 고리를 형성한다. 또한, 과학은 예술 및 철학과 다르다. “좋든 나쁘든 간에 과학은 객체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하고 배열하기 위해 사물들의 양적 차원에 집중하는 인간의 실천이다. 예술은 사물들의 질적 차원에 강렬히 집중함으로써 유사한 작업을 수행하는 경향이 있고, 정치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적 차원에 집중함으로써 유사한 작업을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까지 토머스 네일은 여러 권의 저서에서, 현대 이전의 서양 역사에서 순차적으로 나타난 네 가지 지배적인 운동 패턴에 의거하여 서양사를 구분했다. 그 네 가지 지배적인 운동 패턴이란 구심적 운동, 원심적 운동, 장력적 운동, 탄성적 운동이다. 네일은 이 네 패턴이 역사 속에서 각각 선사 시대, 고대 시대, 중세 시대, 근대 시대에 나타났다고 보고, 이러한 역사 구분을 토대로 정치, 존재론, 예술, 과학, 그리고 지구의 지배적인 양식들과 그 역사적·물질적 조건들을 탐구했다.

요컨대, 이 책은 “인간이 번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인간이 소멸하는 데 이바지할 수도 있”는 과학과 그 객체들에 대하여 운동유물론적 움직임의 철학에 기반을 둔 해석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기에 물질적 역동성을 강조하는 ‘신유물론’적 사유의 한 갈래와 “다양한 객체와 순환 패턴”을 창출하는 실천으로서의 과학론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할 만하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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