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연교수의 전북문화재이야기]장수 타루비

“장수삼절중 한 사람인 아전 백씨의 충절이 새겨진 타루비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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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군 천천면 장판리에는 눈물을 흘린다는 비석 타루비(墮淚碑, 전라북도기념물 제83호) 가 있다. 이는 순의리(殉義吏) 백(白)씨의 충절을 기리는 비로, 많은 사연을 담고 있으며 이후 조성된 여러 비석과 현판, 조각상들이 타루공원을 이루고 있다.

‘타루(墮淚)’란 눈물을 흘린다는 뜻으로, 중국의 양양 사람들이 양호(羊祜)를 생각하면서 비석을 바라보면, 반드시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고사성어에서 인용하였는데, 일설에는 나라에 위기가 닥치거나 애환이 있을 때 비석에서 눈물이 흘린다고 전해지고 있다.

장수 타루비는 1802년(순조 2)에 높이가 62cm, 폭이37cm, 두께 12cm로 건립되었다. 비문의 문장은 당시 장수현감이였던 최수형(崔壽亨)이 지었으나 글씨를 쓴 사람은 미상이다. 전면에는 ‘墮淚碑’ 라고 해서로 새겨져 있고, 작은 글씨로 ‘嘉慶七年 八月 日 立’이라고 새겨져 있어서 건립시기를 알게 한다. 후면에는 비의 내력이 해서로 새겨져 있다.

비문의 내용에 의하면 1678년(숙종 4) 당시 현감이였던 조종면(趙宗冕)이 현의 서쪽 천천면으로 민정시찰을 나섰는데 장척애의 길을 지나다가 풀숲의 꿩이 소리치며 날아오르는 소리에 말이 놀라 벼랑 밑의 깊은 추(湫)의 물결 속으로 말과 함께 떨어져 빠져 죽었다. 이 때 현감을 뒤따르던 통인이 이 광경을 보고는 자신의 잘못으로 현감이 죽게 되었다고 통곡하며 “나는 내가 모시는 현감을 배행했고, 또한 그 현감을 잃었다. 내가 무슨 낯으로 되돌아 가리오” 라고 하면서 그의 손가락을 깨물어 벼랑 위에 꿩과 말의 그림을 그리고 ‘타루(墮淚)’라는 두 글자를 쓴 후 스스로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고 한다.

이후 이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져서 1726년 장수 현감 정주석이 주논개(朱論介)·정경손(丁敬孫)과 더불어 세 사람을 삼강행실도에 추천하는 장계를 올려 모두 삼강행실도에 올려지면서 장수삼절로 받들어져 지금까지 추앙되고 있으며, 1802년(순조 2)에 장수현감으로 부임해온 최수형이 이 사연을 전해 듣고, 주인을 따라 죽은 그 충성스런 의리를 널리 알리고자 비를 세워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같이 타루각(墮淚閣)에 보호되고 있는 장수리순의비(長水吏殉義碑)는 타루비 건립후 80년이 지난 1881년(고종18)에 세워졌는데, 전면에는 북위해서풍의 힘찬 필획의 해서로 ‘長水吏殉義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그 내력을 후면에 해서로 새겨놓았다. 비각 안에 모셔둔 이 비는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구조이며, 비몸의 윗변 양 모서리를 비스듬히 잘라 다듬었다. 두 개의 비는 타루각 안에 같이 모셔져 있다. 타루각의 현판은 1985년 안종묵(安鍾&;)이 행서로 썼다.

이 타루각 옆에는 또 하나의 비각이 있는데 그 안에는 순의리백씨타루추모비(殉義吏白氏墮淚追慕碑)가 보호되고 있다.

이외에 암각서가 많이 남아 있는데 비각 옆 바위 윗면에는 백씨와 같은 날 생을 마친 조종면 현감을 기리며 새긴 ‘불망비(不忘碑)’, 백씨가 죽은 절벽에 새겨진 '타루애(墮淚崖)', 그리고 벽 한켠에는 만민공생(萬民共生)이라고 쓴 대자 예서와 ‘檀紀 四二八二年 春 林鍾吉 書’라고 간지와 서자가 새겨져 있어서 1949년 임종길이 암벽에다 새긴 것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고 있는 말과 꿩의 형상을 양각으로 새긴 조각상이 있다.

이름도 밝혀지지 않는 낮은 벼슬을 지낸 아전의 충절이 이렇게 오래도록 절절하게 내려오는 사연은 바로 타루비의 기적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비를 세우자 세상 사람들은 또 다시 기적을 발견하게 되는데 나라의 위기가 닥칠 때가 되면 비각속에 들어있는 비석에서 물방울이 흘러 내린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비석이 눈물을 흘린다고 하고, 비석이 눈물을 흘림은 필경 순의리의 영혼이 신통력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백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매년 음력 3월 22일 제를 지내며 추앙한다고 한다.

국내에는 타루비라는 명칭의 문화재가 또 있는데 이는 바로 여수 진남관에 세워진 ‘타루비’( 보물)이다. 이는 이순신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로, 1603년에 건립되었는데 비문에 의하면 “영하의 수졸들이 통제사 이공순신을 위하여 짧은 비를 세우니 이름하여 타루라 말하니라. 대개 중국 진나라의 양양(襄陽) 사람들은 양호를 생각하며 그 비를 바라보면서 반드시 눈물을 흘린다는 고사를 취한 것이니라. 만력 31년 가을에 세우다.”라고 쓰여 있다.

국내에 있는 단 두 개의 타루비 문화재중 더욱 절절한 사연을 담고 있는 장수 타루비를 비롯한 타루공원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여 가슴속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스토리 텔링의 관광명소가 될 것을 기대한다.

/이승연(전북 문화재전문위원,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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