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은 봉건 악습 철폐와 외세를 물리치고자 하는 민중 항쟁으로서 수십만 명의 농민이 목숨을 바쳐 투쟁한 우리의 역사다. 삼례봉기는 1892년 11월 동학교도 수천 명이 교조신원운동을 시작해 1894년 9월 일본군에 맞서 10만 여명의 농민이 삼례 뜰에 집결해 일으킨 최초의 혁명(2차봉기)이다.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는 일반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대규모 민중항쟁으로 민주 시민의식과 자주적 근대화의 노력이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또, 삼례봉기정신은 지역의 대표 시대정신으로 계승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대둔산 삼선바위 부근 표지판 하나는 이곳이 동학농민군의 투쟁지임을 알린다. 동학농민군 1.000명이 3개월간 항쟁했다. 1895년 2월 18일 25명이 전사했다. 안내문은 동학접주 김석순이 150m 절벽에서 뛰어내렸다고 기록한다. 동학 최후의 항전지와 관련된 기록이다.
전북도의회 권요안 의원(완주2ㆍ더불어민주당)이 제405회 정례회 제2차 본회의 5분 발언을 통해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리우며 동학혁명 최후항전지인 대둔산이 전북도와 완주군의 무관심으로 외면받고 있다고 했다. 대둔산 동학농민혁명 최후항전지는 대둔산 마천대 부근 바위 위에서 근거지를 마련하고 일본군과 관군의 공격에 맞서 끝까지 저항했던 곳이며, 2015년 12월 전라북도기념물 제131호로 지정됐다. 동학농민혁명 최후항전지는 농민군이 우금치 전투 패배 이후 대둔산의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일본군에 끝까지 항전했던 곳이었던 만큼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이 깃든 대둔산 동학농민혁명 최후항전지가 방치되고 있는 만큼 전망대와 안내표지판 설치가 필요하다. 대둔산 동학농민혁명 최후항전지에서 끝까지 저항했던 동학농민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알리기 위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항일을 기치로 10만 여 명이 참여한 삼례 2차 봉기와 대둔산에서 동학의 접주급 이상의 간부들이 최후항전을 했던 곳이 있는 완주의 역사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동학농민혁명 2차봉기 참여자에 대한 서훈문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는 문제 등을 동학기념재단과 동학단체들이 합심해 이뤄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올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등재된 만큼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도 세계사적 위상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기념 사업을 추진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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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동학의 정신 이어가야
완주 삼례봉기·대둔산 투쟁 역사적 의의 동학농민혁명 최후 항전지 방치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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