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현(고원공간정보 부회장·전 무주부군수)
지난 10월 초 홍준표 대구시장이 국민의힘 지도부가 자신과 이준석 전 대표의 대사면을 의결한 것과 관련해 “과하지욕(跨下之辱)의 수모는 잊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이 영원한 줄 알지만 메뚜기 한철인 줄 모른다”며 “하루살이는 내일이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당 지도부를 향해 쏘아 붇혔다.
여기서 홍준표 시장이 말한 ‘과하지욕(袴下之辱)’은 중국 한(漢)나라의 개국공신인 명장 한신(韓信)과 관련된 고사성어이다.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참는다’는 뜻으로, ‘큰 뜻을 지닌 사람은 쓸데없는 일로 남들과 다투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과하지욕은 사마천의 사기(史記) ‘회음후 열전’에 나온다.
한신은 중국 한나라의 최고의 명장이자 대장군이었던 유방(劉邦)의 부하로 들어갔다. 유방을 도우며 초나라 항우(項羽)를 이기는 등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해 중국을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렇지만 한신은 평생 수많은 고난과 시달림을 겪어야 했다. 그는 좌절을 겪을수록 더욱 용감해졌고 불굴의 정신으로 후세의 본보기가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겼다.
백정 출신이었던 한신의 가족은 밥을 빌어먹을 정도로 가난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치를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별다른 재주도 없었고 항상 다른 사람에게 빌붙어 살아서 주변 사람들이 그를 싫어했다. 여기에 품행 또한 단정치 않아 관리도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장사에도 소질이 없어 젊었을 때 밥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한신은 오랫동안 남창에 있는 촌장 집에 묵은 적이 있다. 촌장은 한신이 일반인과 다른 면모가 있음을 알아내고 일을 시키지 않았고 그냥 묵게 했다. 그러나 촌장의 아내는 매일매일 빈둥거리며 밥만 축내는 한신을 몹시 싫어했다. 촌장의 아내는 어느 날부터 한신의 밥을 챙겨주지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촌장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한신은 배고픔을 참아 내며 강가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강가에서 빨래하던 아낙 중에 한 노파가 있었는데 한신이 굶주린 것을 보고는 불쌍히 여겨 늘 자신의 밥을 나눠 주었다. 아울러 한신을 격려하면서 “대장부라면 마땅히 뜻을 세워야지 온종일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선 안 되네. 자네도 뭔가 큰 뜻을 세워보게나!”라고 말했다. 한신은 이 말에 진정으로 자신의 앞길을 개척하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한신은 각고의 노력으로 많은 책을 읽었으며 아울러 자신이 병법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는 혼란한 천하를 안정시키려는 포부를 품고 병법 분야에 큰 뜻을 세웠다. 이후 크나큰 공적을 세운 뒤 한신은 이 노파를 찾아가 금 천 냥을 드리며 은혜를 갚았다.
한신이 무예에 푹 빠져 연마하기 위해 늘 큰 칼을 차고 다녔을 때의 일이다. 한신의 모습을 본 마을의 무뢰한들은 항시 그를 비웃었다. 어느 날 무뢰한 중에 한 사람이 나서서 “네가 비록 장대하고 칼 차기를 좋아하나 속은 겁쟁이일 뿐이다. 네가 진정 용기가 있으면 내 머리를 베어 보거라”며 놀려댔다.
한신은 속으로 생각했다. ‘네 머리를 베어서는 뭘 하겠는가? 그러면 나도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한신이 화를 내지 않고 머뭇거리자, 무뢰한은 더욱 기고만장하며 놀려댔다. “나를 찌를 용기가 없으면 내 가랑이 밑으로 지나가거라!”라고 힐난했다.
당시 한신이 남들에게 겁쟁이로 보였을 그 한순간 치욕을 참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한신은 이 함정에 빠져 그의 포부도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다. 한신은 굴욕을 견디며 묵묵히 때를 기다린 덕분에 훗날 자기 뜻을 이룰 수 있었다. 훗날 저자거리에서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는 치욕을 준 무뢰한에게는 치안을 담당하는 관리로 임명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천하의 명장 한신이 남의 가랑이 밑을 기어갔다’는 일화를 후세에 남겼다. 이는 역사상 크게 참는 마음, 즉 ‘대인지심(大忍之心)’의 표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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