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창]금산사를 밝혀야 후백제가 보인다

후백제의 정신적 중심지로서의 금산사, 학술대회 통해 재정립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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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덕규(김제시 학예연구사)



간간이 필자는 전라북도를 이끌어 온 정신문화가 무엇인지, 혹은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정신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논의하며 토론도 하곤 한다.

사실상 문화라는 것이 크게 눈에 보여지는 유형의 문화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문화가 있으며, 무형의 문화라 할지라도 개인이나 단체가 실연할 수 있는 것들은 무형유산(무형문화재)으로 지정되어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정신문화라 한다면 그 뜻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더욱이 전라북도의 정신문화라 한다면 전라북도의 역사 속에서 면면이 이어져오는 정신적 흐름이어야 할 것이기에 이를 특정하기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주장하는 자에 따라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정신문화는 ‘선비정신’이라고도 하고, ‘풍류정신’이라고도 하며, ‘개척정신’이라고도 하는 등 나름대로의 근거를 두고 말하고 있으나 필자는 고대로부터 현대에까지 전라북도의 역사와 함께해 온 정신문화는 미륵사상이라 보고 있다.

혹자들은 미륵사상의 종교적인 측면만을 바라보며 평가절하하는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륵사상이라는 정신문화는 이미 전라북도의 역사와 함께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반영되어 이어져 왔으며, 전라북도 민중들의 삶 속에 녹아 들어가 현재까지 면면이 이어져 왔기에 전라북도의 대표적 정신문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김제 금산사는 전라북도 정신문화의 핵심적인 공간이다. 진표율사가 금산사를 미륵사상의 성지로 중창한 이후 나라 잃은 백제 유민들이 미래의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으며, 이후 신라타도를 표방한 후백제의 견훤은 미륵을 자처하며 금산사를 원찰로 삼았으며, 미륵사상과 백제 유민의식을 간직했던 전북권을 바탕으로 정치적 힘을 얻었다.

미륵사상의 중심이었던 금산사는 고려시대에도 혜덕왕사가 금산사의 주지로 취임하는 등 최대융성기를 맞이하였으며, 조선시대 이후에는 그야말로 민중들의 각박한 삶 속에서 미륵사상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갈 희망으로 작용함에 따라 정여립의 대동사상, 동학농민혁명, 근대 민족종교 성립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와 같이 국가적 위기에 있어서는 의병운동과 독립운동에도 정신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전라북도의 유구한 역사를 꿰뚫고 있는 미륵사상과 금산사를 재조명하는 일은 특히 전라북도가 우리 역사의 중심이었던 후백제에 있어서 정체성을 밝히기 위한 중요한 열쇠로 작용된다.

이에 김제시에서는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HK사업단과의 공동으로 전국의 석학들을 모시고 11월 24일부터 25일까지 학술대회를 펼칠예정이다. 이로서 김제 금산사에 산재해 있는 나말여초기의 석조유물, 후백제 견훤이 후원한 고승들, 후백제 불상과 불교미술, 금산사 일원의 성터와 매장유적에 대한 진실이 밝혀질 것이며, 이를 통해 후백제 정신적 중심지로서의 김제시의 위치가 재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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